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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땅콩회항 계기로 반성?'…대한항공 오너 일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취재파일] '땅콩회항 계기로 반성?'…대한항공 오너 일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땅 짚고 헤엄친 조 씨 삼남매…공정위, 한진 일감 몰아주기 고발

'최순실 게이트'가 국가적으로 워낙 큰 뉴스다 보니 평소 같으면 더 주목 받아야 할 소식들이 축소돼 다뤄지거나 덜 알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보도 가운데 공정위가 총수 자녀 회사에 일감을 일방적으로 몰아준 대한항공에 제재를 가한 소식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 공정위, '한진가' 일감 몰아준 대한항공 과징금…검찰 고발

공정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의 아들 조원태, 딸 조현아 조현민 씨가 각각 33.3%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싸이버스카이와 용역 계약을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체결했습니다. 싸이버스카이는 우리가 비행기 타면 기내 면세품 사는 예약사이트 운영을 맡았는데, 대한항공이 인터넷 광고도 만들고, 기내 승무원들이 동원돼 관련 상품 홍보책자도 돌리는 등 홍보까지 해주고 그 수익은 전액 싸이버스카이가 가져가게 했습니다. 대한항공이 받아야 할 15% 수수료도 기꺼이 받지 않고 이익을 늘려줬고, 판촉물도 이 회사를 통해 구입해서 마진율을 4.3%에서 12.3%로 세배 가까이 올려줬습니다.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이 통상 용역 계약을 맺으면서 절대 하지 않을 이런 일들을 왜 했을까? 답은 간단합니다. 이런 일방적 지원으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한항공이 매년 수천 억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도 조 회장 삼남매가 소유한 싸이버스카이는 매년 수억 원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렸습니다. 70%에 달하는 매출을 한진그룹 계열사에서 올렸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조 회장과 삼남매가 공동으로 소유한 가족회사 유니컨버스에 대해서도 혜택이 집중됐는데, 2009년 대한항공은 콜센터 경험이 없는 유니컨버스 측에 콜센터 업무를 위탁했습니다. 유니컨버스에 여러 비용을 실제보다 더 보태서 지불해 부당한 이익을 올려줬습니다. 유니컨버스 매출 중 한진그룹 의존 비중은 지난해 기준 74%에 달하고, 유니컨버스 역시 대한항공의 적자 행진 와중에도 2014년 20억 원, 지난해 1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습니다. 공정위는 과거에도 있었던 행위를 고려하면 실제 부당 이익 규모는 이보다 몇 배는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심사를 맡은 공정위 위원들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과 시선이 따가운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기도 쉽지 않다”고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도 전해집니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한항공 비행기 사진
'땅콩회항' 사건의 파장이 재벌에 대한 부정적 여론뿐만 아니라 ‘갑질’ 논란으로 일파만파 확산됐을 때 조양호 회장을 비롯해 조현아 부사장은 ‘죄송하다’ ‘반성한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지만 그건 그 때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대한항공을 주주들의 회사가 아니라 오너 일가의 회사로 여기고 본인들이 지분을 가진 회사에 이익을 몰아주는 행태는 계속됐습니다. 땅콩 때문에 기장을 내리게 한 게 유감일 뿐 기업 경영은 역시 본인들 마음대로였습니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조원태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는데, 조현아 씨를 고발 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 금지규정이 지난해 2월부터 효력이 발휘됐는데 조현아 씨는 땅콩회항 사건으로 2014년 말에 사임을 했기 때문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2006년 대한항공 상무보, 2009년 전무에 올랐던 조현아 씨는 2014년 1월부터 대한항공 총괄부사장으로 재직하며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 등 계열사와의 계약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실제 10년 동안 기내 면세품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삼남매 회사에 이익을 몰아주는 구조를 당시 책임자 관여 없이 만들어졌다고 믿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반쪽 짜리 제재, 봐주기’ 논란이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조양호 회장 일가가 한진해운 사태를 해결하는 데 이 조그만 회사들 돌보는 성의의 절반만 기울였었더라도 결과는 달랐을 수 있습니다. 법정관리 전 올 초부터 이어진 채권단과의 협상에 한진은 불성실하게 임했습니다. 지난 4월에도 “은행 빚을 연장해줄 테니 외상값은 직접 갚으라”는 채권단의 요구에 한진해운 측은 “여기까지가 할 수 있는 게 전부”라며 자율협약 신청서에 부족 자금(5천억 원가량 추정)에 대한 자체 조달 방안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진해운은 해외에 연체된 빚이 6천 억 원 이상 있는 상태라서 채권단이 유동성을 지원해 봤자 해외 채권자에게 돌아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채권단 입장에선 추가 지원을 위한 근거로 삼을 강한 자구책이 필요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충분치 못했습니다.

중요한 시점에 이동걸 산은 회장이 이 문제를 논의하자며 조양호 회장과 만남을 요청했지만 조 회장은 IOC 일 때문에 스위스로 출국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사재 출연 역시 당시 신청서엔 언급돼 있지 않았고 나중에 법정관리 결정 후 사태가 악화되자 뒤늦게 성의를 표했다고 왜 알아주지 않냐고 항변했습니다.

한진해운은 현재 ‘최순실 게이트’로 억울하게 피해를 본 게 아니냐는 기이한 동정 여론까지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의혹이 만일 사실이라면 밝혀져야겠지만, 적어도 오너 일가가 경영자로서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 그리고 그 피해는 임직원과 연관 산업들이 보고 있다는 기본 팩트는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진은 지난해 11월 한국 기업 지배 구조원이 20대 그룹 대상으로 실시한 지배 구조 평가에서 꼴찌를 차지했습니다. 한진가는 세 자녀를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나이에 모두 임원에 올려 재벌 3세 중에서도 초고속 승진으로 유명합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직함에 걸맞은 책임 경영, 상도의를 어기지 않는 경영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미숙한 자녀들을 대거 전면에 등장시키는 데서 온 불안한 지배 구조라는 오명을 쉽게 떼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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