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굽이굽이 공릉천, 생명을 품다

자연하천의 원형 간직한 파주 공릉천 하류

박수택 기자

작성 2016.11.27 22: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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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천, 자연스런 모습은 굽이굽이 곡선

물은 겸손하고 지혜롭다.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가며 채우고 또 더 낮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바위나 산이 가로막으면 주위를 빙 둘러 계속 몸을 낮춰 지나간다. 물이 지나가며 이룬 물줄기는 구불구불하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S자 모양이다. 뱀이 기어가는 모양 같다고 해서 사행천(蛇行川)이라고도 부른다. 하천, 강은 이렇듯 굽은 모양이 자연스럽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연하천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이 손을 댄 탓이다.

상류 산골부터 중류, 하류 어디나 할 것 없이 큰비로 불어나는 물을 빠르게 빼야 한다면서 돌이나 콘크리트로 물길을 일자형으로 곧게 폈기 때문이다. 홍수 재난을 막는다는 ‘방재(防災)’ 목적으로 하천을 다스린다는 이른바 ‘치수(治水)’ 사업을 내세운 까닭에 우리나라 하천은 거의 다 제 모습을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연스런 물길의 원형을 간직해서 요즘 보기 드문 하천이 수도권 북서쪽에 남아있다. 경기도 양주 북한산 계곡에서 시작해 고양과 파주 들판을 적시면서 흐르다 한강 하류로 흘러드는 공릉천이다. 서울에서 한강을 따라 달리는 자유로를 타고 고양을 지나, 파주 출판단지를 지나쳐 문발IC를 지난 뒤 오른쪽으로 ‘재두루미길’을 찾아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 다양한 새가 모여드는 공릉천, 생태교육과 탐조, 사진촬영 명소

늦가을부터 이맘때 초겨울 공릉천은 미니 순천만이다. 사람 손 타지 않은 넓은 둔치가 온통 황금빛 갈대밭이다. 제방 주변엔 하얀 억새밭이 펼쳐진다. 제방 안쪽 너른 논 들판엔 기러기가 떼로 모였다. 벼 거둘 때 논바닥에 떨어진 낟알이 북쪽 시베리아에서 겨울나러 온 철새들에겐 요긴한 양식이다.

하늘엔 역시 북쪽 몽골 초원에서 온 독수리가 맴돌고, 하천 수면엔 민물가마우지 무리가 혹은 자맥질하고 혹은 물가 바위에 올라앉아 날개 펴고 몸통을 말린다. 키 큰 대백로는 성큼성큼 물 위를 걸으며 먹을 것을 찾고 잿빛 왜가리는 수문 아래 지키고 서서 수면을 응시한다.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 가족은 강물을 헤엄쳐 다니고, 흰죽지, 흰비오리 가족은 잠수 실력을 뽐내는 듯 잇따라 쏙쏙 물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평소에 보기 어려운 노랑부리저어새도 날아든다. 인간이 지켜주지 않으면 지구에서 영영 사라질 운명으로 국가가 멸종위기종(환경부 지정), 천연기념물(문화재청)로 지정했으니 귀하신 몸이다.

주걱 모양 넓적한 부리를 물속에서 휘휘 저으며 먹이를 찾는다. 봄부터 여름, 가을엔 저어새, 도요 물떼새 종류가 공릉천과 주변 논의 주인공이다. 5월 모내기 철에는 머리색 노란 황로와 발이 노란 쇠백로가 써레질하는 트랙터 뒤를 따라가며 작은 물고기나 벌레를 쪼느라 여념이 없다. 새와 인간이 공존하는 흐뭇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노랑부리저어새● 공릉천은 한강하구 습지 생태계의 핵심 거점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어요.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만날 수 있고, 새들도 많이 만날 수 있어서요.” 어린이 생태교육 강사로 봉사하며 고양 파주 지역 ‘시민탐조클럽’ 회원이기도 한 황정희 씨가 공릉천을 찾는 이유다.

공릉천 근처 헤이리 예술마을 주민인 박관순 한길 책 박물관 관장은 남편인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이웃들과 함께 이틀마다 새벽 6시 반부터 1시간 반 동안 공릉천과 주변 들판을 걷는다. 건강도 챙기고 공릉천 풍광과 다양한 야생 조류 모습을 감상하며 걷는 것이 즐거워서다.

“걷다가 평소에 없던 깃발이나 푯말이라도 보이면 가슴이 철렁하죠, 무슨 개발 명목으로 공릉천이 훼손되지나 않을까 걱정되거든요. 이따금 둑길에 생활쓰레기나 건축 폐기물 버려진 걸 볼 때도 있는데요, 안타깝죠. 우리는 다들 ‘공릉천 지킴이’가 돼야 한다고 봐요.” 공릉천은 풍광과 철새 덕분에 산책과 탐조, 생태교육, 사진촬영의 명소로 자리를 굳혔다.

● 철새와 논 생태 위해 볏짚 남겨둬야…정부 예산 지원 절실

“공릉천은 서해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곳이거든요, 하루에 두 차례씩 밀물과 썰물이 오가면서 물길 갯벌이 살아있죠.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뒤섞이는 곳을 기수(汽水)지역이라고 하는데, 해양과 육상 생태계의 중간 지역이면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양쪽 생태계의 생물종이 모두 살아가는 곳이라서 더욱더 소중합니다.”

지난 15년 동안 공릉천에서 자연 관찰과 조사를 해 온 한국DMZ생태연구소의 김승호 소장(고양 중산고 교사)은 공릉천이 생태적으로 뛰어난 이유를 설명한다. 15년 전과 비교해서 공릉천 생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었더니 김 소장은 한숨을 내쉰다.

“공릉천 주변과 한강 합류부 일대에 재두루미가 수십 마리, 개리는 수백 마리가 모여서 월동했는데, 갈수록 줄어서 지금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재두루미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요.” 개발로 인한 자연 훼손 탓이란다. 공릉천 제방에서 북쪽을 보면 산기슭에 대기업 쇼핑몰(아울렛)과 함께 주변에 높고 낮은 아파트 단지가 촘촘히 들어섰다.

논엔 비닐하우스와 창고가 늘고 있다. 볏짚을 꽁꽁 말아 흰색 또는 검정색 비닐필름으로 감아놓은 덩어리도 즐비하다. 소 사료로 내다 팔기 위해서인데, 쌀 소비가 줄고 쌀값은 떨어져 수입이 줄었으니 농민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다. 초겨울에 벌써 논을 갈아엎거나 돼지분뇨 액비를 뿌리기도 한다.

낟알조차 땅속에 묻히거나 오염되고 만다. 기러기, 개리, 재두루미는 쉴 자리 먹을 자리를 잃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생물다양성(bio-diversity)협약 당사국총회(제12차, 2014년 10월 강원 평창)'까지 개최한 대한민국이다. 진정 생물다양성을 소중히 여긴다면 농민들이 논바닥에 볏짚을 남겨두도록 지원해야 마땅하다.공릉천 가로지르는 제2외곽순환고속도로공릉천엔 또 다른 강력한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 제2외곽순환고속도로가 수년 안에 공릉천을 가로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김포에서 한강을 건너오는 새 고속도로는 파주시에서는 교하읍 신천리와 법원읍 삼방리를 잇게 된다.

한국도로공사는 정확한 구간 지도 제공 요청을 회피했다. 파주시 도로부서와 여러 관계자들에게 물은 결과 고속도로는 공릉천 하류 지역 남쪽 농경지를 관통할 것으로 보인다. 한강과 공릉천, 주변 논 습지 생태계를 크게 훼손할 것은 분명하다. 자연스런 물굽이를 유지해서 생태 경관 가치 높은 공릉천,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 것인가?

“공릉천 생태계가 우수함을 관계 기관, 정부와 지자체가 인식하고 정책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처방을 내야 합니다, 굉장히 시급합니다!” 김승호 DMZ생태연구소장은 강조한다. 개발과 보전 사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이른바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을 국가가 마련해야 한다.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수다. 올겨울 파주 공릉천 둑길을 걸어보시길 권한다. 

▶ 진귀한 철새의 쉼터…생명 품는 파주 공릉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