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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진성여왕만도 못한 박근혜 대통령

[취재파일] 진성여왕만도 못한 박근혜 대통령
동아시아에서는 최고의 군주를 ‘성군’(聖君)으로 불렀습니다. 중국의 전설적인 군주 요임금과 순임금이 이른바 ‘성군’의 아이콘이지요.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단연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첫 손가락에 꼽힙니다. ‘성군’의 반대는 ‘폭군’(暴君)입니다. 중국에서는 하나라 걸왕, 상나라 주왕이 바로 그들이고, 우리 역사에서는 조선시대 연산군이 ‘폭군’의 대명사로 평가됩니다.

‘성군’ 바로 다음 단계가 ‘명군’(明君)입니다. 사리에 밝은 임금이란 뜻으로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명군’의 반대 개념이 ‘혼군’(昏君) 또는 ‘암군’(暗君)입니다. ‘이치에 어두운 어리석은 군주’라는 뜻입니다.

2년 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을 ‘혼군’이라 평가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유시민 전 장관의 언급에 대해 긍정과 부정이 엇갈렸습니다. 하지만 최근 온 나라를 흔든 ‘최순실 게이트’를 고려하면 유시민 전 장관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과 대한민국 모두에게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힘들게 한 ‘혼군’은 이루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중국에서는 진시황의 열여덟 번째 아들로 뒤를 이은 ‘호해’가 무능하고 멍청한 황제의 대명사로 꼽힙니다. 당시 실세였던 환관 조고가 ‘지록위마’ 즉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농락할 정도였으니 그가 얼마나 한심한 인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 뒤 조고가 자결을 권하자 황제 체면도 살피지 않고 살려달라며 애걸복걸하다 끝내 수용이 안 되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용렬한 군주였습니다.

5천년 한민족의 역사에서도 못난 임금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조선의 제25대 국왕인 철종은 ‘혼군’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강화도령’으로 불리며 강화도에서 은둔하며 살다가 본의 아니게 일국의 군주가 된 그는 안동김씨 세도정치 아래에서 임금다운 노릇을 제대로 한번 펼치지도 못하고 일찌감치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적 능력과 판단력 부족은 물론 자신의 세력마저 없어 ‘허수아비’ 노릇만 하다 33살로 요절했습니다. 전정’ ‘군정’ ‘환곡’ 등 이른바 ‘3정’의 문란이 가장 극심해 백성들이 지옥같은 세월을 보낸 게 바로 철종 때였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여자 지도자가 딱 3명 있었습니다. 신라시대 때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 가운데 진성여왕은 1천년 역사의 신라를 무너뜨린 주범으로 지목됩니다. 자신의 숙부인 각간 위홍과 ‘사통’(私通)을 한 것도 모자라 위홍이 사망한 뒤에는 아름다운 소년 2-3명과 향락을 즐겼습니다. 2012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나온 ‘역주 삼국사기’의 해당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성여왕은 젊은 미남자 2, 3명을 몰래 끌어들여 음란한 짓을 하고 그들에게 중요한 관직을 주어서 나라의 정치를 맡겼다. 이로 말미암아 아첨하여 임금의 총애를 받게 된 사람들이 뜻을 마음대로 펴게 되어 뇌물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상과 벌이 공정하지 못하여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느슨해졌다.”

삼국유사에는 유모인 부호부인과 그녀의 남편인 위홍 등 서너 명의 총신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국정을 어지럽혀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고 돼 있습니다. 진성여왕의 잘못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신라 왕실과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며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데도 심한 낭비와 사치로 국고를 텅텅 비게 했습니다. 그러자 각 지방 호족들을 겁박해 세금 납세를 독촉했고 이는 호족의 반란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빈곤에 시달리던 민심도 점차 흉흉해져 여기저기서 민란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신라의 분열이 극에 이르자 진성여왕은 최치원을 아찬으로 임명해 그의 조언에 따라 조정을 일신하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막다른 궁지에 몰린 진성여왕은 자신의 오빠인 헌강왕의 서자(庶子) 요를 왕태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자진해 ‘하야’를 한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여러모로 신라 말과 비슷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도 진성여왕과 닮은 데가 많습니다. 그래도 진성여왕은 국민들이 모르는 ‘비선 실세’를 쓰지는 않았습니다. 각간 위홍을 비롯해 총신들이 전횡을 일삼았지만 이들은 대부분 국가로부터 공직 임명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국민 몰래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해 구속 수감된 최순실 씨와 그의 조카 장시호 씨와는 경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가장 다른 점은 진성여왕이 최고 권좌에서 자진해 물러났다는 것입니다. 이는 1천119년 전 왕조시대에도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군주는 설 자리가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물며 지금은 21세기 민주공화국 시대입니다. 지지율 고작 4%에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에 의해 피의자로 낙인까지 찍힌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200만 촛불’에도 더 이상 버틴다면 후세 사가들이 진성여왕만도 못한 대통령으로 기록할 것은 명약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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