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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생명 다한 '국정 역사교과서'…버티는 교육부 장관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어제(24일) 오후 세종으로 달려왔습니다. 교육부 근처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시도교육감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울, 부산, 제주 등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가운데 대구와 경북을 제외한 15명의 교육감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교육감협의회는 두 달에 한 번씩 열립니다. 성격은 11월 정기회의였지만 관심과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오는 28일 예정된 교육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 공개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당초 교육감들은 성과 중심 인사제도 및 성과급제 폐지 등 6개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및 폐기가 긴급 안건으로 상정됐습니다. 회장을 맡고 있는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긴급 안건을 제의했고 반대 없이 곧바로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시도교육감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촉구
김승환 전북 교육감이 첫 말문을 열었습니다. 김 교육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더러운 샤머니즘 정권에서 비롯됐고, 박근혜 대통령 입맛에 맞는 교과서”라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정면으로 침해한 이 자체가 헌법위반이며 탄핵 사유”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조희연 서울 교육감은 “정권이 붕괴하고 있는 데에는 국정교과서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며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진지하게 검토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장만채 전남교육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성명서 채택에 찬성한다”며 “교육부가  강행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건지 대안을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광주, 세종, 울산, 충북, 충남, 경남, 강원 교육감의 발언이 잇따랐고 국정화 중단 성명서 채택 찬성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다만 울산 김복만 교육감은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김 교육감은 “28일 현장 검토본이 나오고 난 뒤 내용이 좋으면 어떡할 건가”라며 “국정화 추진 중단 및 폐지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성명서 채택을 유보하자”고 말했습니다. 부산, 대전, 인천, 제주 등 교육감 4명은 침묵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성명서 발표에 함께 참석해 국정화 중단 촉구에 뜻을 모았습니다.

울산을 제외한 14명의 시도 교육감들은 성명서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국가가 지정한 단일한 역사관만을 주입하겠다는 특정한 정치 목적을 드러낸 것으로 시대착오적인 역사교육의 퇴행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며 “대통령과 측근들에 의해 자행된 국정 농단, 교육 농단의 정황이 낱낱이 밝혀지는 현 상황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추진한 국정교과서는 국민의 신뢰조차 상실한 사망선고가 내려진 정책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국정화 중단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어떠한 협조도 거부할 것이라며 교육부를 압박했습니다. 즉, 교육부가 28일 현장 검토본을 공개한 뒤 한 달가량 공개토론회를 열어 역사교사들의 의견을 들을 예정인데 이 절차에 참여하지 않고, 전면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시도교육감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촉구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몸통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운동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전국 102개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국정교과서 중단을 촉구했고, 전국역사교사 모임과 480여 개 교육,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한국사 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국정화 강행 책임을 물어 교육부 장관 퇴진 요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국정교과서에 찬성을 했던 한국교원단체총연합도 최근 반대로 돌아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 중단 및 폐기 촉구 결의안’을 공동 발의했습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도 국정화 반대가 60.4%, 찬성은 19.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년 전에 비해 찬성이 22.9% 포인트나 줄었습니다.  

초·중등학교 교과서를 국정으로 할지, 검·인정으로 할지에 관한 책임은 교육부장관에게 있습니다. 국정은 국가에서 저작권을 가지고 편찬하는 단일 교과서이고, 검정은 출판사들이 다양하게 만든 교과서에 대해 교육부가 심사를 해 합격, 불합격을 판정해주는 제도입니다. 검·인정을 통과한 책이 교과서로 채택되는 것입니다. 역사교과서의 경우 지난2천14년 교학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 논란 당시 교육부가 한국사 8개 교과서의 오류와 서술 내용을 수정해 검정 승인을 해줬습니다. 그 뒤 교육부는 지난해10월1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구분고시에 관한 행정예고를 하고, 11월 3일 국정화 확정고시를 하며 완전히 상반된 입장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요구에 대해 일관되게 “현장 검토본의 내용을 보고 평가해 달라, 이념 편향성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며 국정화 중단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이 장관은 그동안 역사교과서 편찬과정과 내용을 보고받아 왔습니다. 집필진과 이 장관을 포함 교육부 관료 일부 외에는 아무도 국정 역사교과서에 어떠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교육부는 그동안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개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집필진 47명, 편찬위원 16명의 명단은 물론 집필 기준조차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공개토론회와 역사교사 등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문제될 만한 오류가 없다는 듯 한 태도는 오만한 자세입니다.  

이런 교육부의 태도는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24일 나왔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조영선 변호사가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을 공개하라”며 교육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정보 공개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원고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준식 교육부장관
이준식 교육부 장관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 부친다 한들 국정교과서의 생명은 이미 끝났습니다. 교사와 학생, 그리고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교과서가 서 있을 곳은 없습니다. 출판과 동시에 폐지 신세로 전락할 뿐입니다. 공직자는 국민의 마음을 바라보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믿음과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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