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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대 졸업생 기자가 만난 이대 비리 교수들

[취재파일] 이대 졸업생 기자가 만난 이대 비리 교수들
● ‘원리원칙’이 자랑이었던 학교

2012년 6월 기자가 됐다. 그 해 8월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이대는 매 학기 그러니까 총 8학기 채플을 들어야만 졸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 학기 채플을 이수하지 못해 당시 졸업을 못 할 뻔했다. 수습기자 생활 때문에 도저히 보충 채플에 나갈 수 없다고 학교에 통 사정도 해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했다. ‘원칙을 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회사에 사정을 해 보충 채플을 들었고, 경찰서에서 20장이 넘는 채플 보고서를 꾸역꾸역 써서 제출했다. 나에게 ‘이대’라는 공간은 그렇게 원리 원칙적인 곳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달 사이 이대에서 일어난 일들은 나의 눈과 귀를 의심케 했다. 원칙은 없고 특정인을 위한 반칙만 난무했던 학교. 그 반칙에는 그토록 내게 ‘원칙’을 강조했던 스승들이 대거 참여했다. 실제 재학시절 수업을 들었던 교수도 포함되어있다.

교육부 출입기자인 나는 ‘정유라 사태’를 취재하면서 반칙의 중심에 서있던 교수들을 직접 만났다. 며칠 씩 그 교수 연구실 앞에서 기다리고,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직접 찾아가기도 해서 만났다.

● 특혜입학의 중심, 입학처장 남궁 모 교수

10월 19일. 정유라에 대한 각종 특혜 의혹을 결국 해명하지 못한 채 최경희 전 총장이 전격 사임했다. 그리고 며칠 뒤 입학처장인 남궁 교수를 만났다. 그가 강의하고 있는 과목이 끝날 5시쯤, 강의실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입학처장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직접 강의를 듣지는 않았지만 올 초 이대 입학 정시 모집과 관련해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남궁 처장은 본인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정유라를 특정해서 뽑으라고 했던 것이 아니다. 인천아시안게임이 4년에 한 번씩만 열리는 데 여기서 메달을 딴 건 인정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다른 특기자 지원자들 중에서도 아시안게임 단복을 입고 온 사람이 있었다. 정유라는 면접에 참여하면서 케이스에 금메달을 떡하니 넣어서 책상위에 올려놨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걸 아예 걸고 들어갔다더라” 라고 얘기했다.

또 “내가 정유라라는 학생이 이번에 지원했다고 총장에게 보고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총장은 공정하게 뽑으라고 지시 했다.” 라고 말했다. 그는 생각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말했다.

하지만, 정유라와 같이 특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다른 인천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들의 증언은 남궁처장의 주장과 전혀 달랐다. 일단 정유라를 제외한 다른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들은 메달을 면접에 지참하지도 않았고, 아시안게임 관련해서 질문을 받지도 않았다. 다른 지원자들의 인천 아시안게임 성적도 반영이 됐다는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정유라의 금메달만 인정됐다는 SBS보도 이후 억울하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면서 내게 너무한 것 아니냐며 SBS 기자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표현했다. 그때까지 만해도 그의 말이 일정부분 사실은 아닐까 생각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교육부 감사 결과를 듣고 뒤통수는 오히려 내가 맞은 듯 했다. 교육부는 남궁처장이 직접 “금메달을 가지고 온 사람을 뽑아라”라고 면접위원들에게 지시했기 때문에 정유라 특혜입학의 핵심인물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검찰은 남궁 처장을 출국금지 명단에 포함시키고, 그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 또 다른 입학비리의 중심 체육과학부 박 모 교수

정유라는 서류합격자 22명 중 9등이었다. 면접 점수를 합산 한 뒤 6명을 뽑는 특기자 전형에 6등으로 턱걸이 합격했다. 정유라 보다 점수가 높았던 3명 중 한 명은 결시했고, 두 명은 아주 낮은 면접 점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점수가 앞선 2명의 종목이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없다며 점수를 낮게 주자고 주장한 교수가 있었다. 체육과학부 박 모 교수다.
이대 면접 채점표
이대 면접 채점표
이대 체육특기자 면접 채점표를 입수하고 나서 면접 위원들을 찾아 나섰다. 정유라에게 이렇게 ‘몰아주기’점수를 준 사람들은 누구일까. 입수한 채점표에는 채점위원의 이름은 지워져 있었지만, 희미하게 이름이 보이는 교수가 있었다. 체육학과 박 교수였다.

남궁 처장을 만났을 때처럼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찾아가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2016년 2학기부터 연구 년이었다. 당연히 미국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전에는 학교에 가끔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며칠 아침을 그의 연구실 앞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번번이 놓치기 일쑤였다. 4일째 되던 날 그날도 역시 허탈하게 돌아서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학교에 온 김에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체육학과 교수라도 찾아가 보자하는 마음에 그의 연구실에 들렀다. 그는 체육학과 교수로는 유일하게 비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통성명을 하고, 졸업생인 것을 소개하고 혹시 학과에 새로운 얘기는 없냐고 이야기를 막 띄우는 찰나. 꿈에 그리던 얼굴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 교수였다. 학교에 들렀다가 동료 교수의 방에 찾아온 것이다.

“박 00교수님이시죠?” 라는 내 질문에 누구냐는 듯한 표정만 돌아왔다. 사진으로만 얼굴을 봤기 때문에 그가 맞다는 대답이 필요했다. 재차 질문을 하자 그는 그제서야 맞다고 대답을 해줬다. SBS 노유진 기자라고 소개를 한 뒤, 정유라 면접에 들어갔던 교수님들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정유라만 금메달을 가지고 들어갔고, 면접위원들이 다른 인천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들에게는 메달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혹시 들으신 얘기가 있냐고 물어봤다. 채점표에 박 교수의 이름이 희미하게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가 주도적으로 점수를 낮게 준 교수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만약 그가 공평하게 점수를 심사한 사람이라면 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제 그런 건 교육부 감사나 검찰에서 밝혀낼 일이죠” “기자들 요즘 기사 막 쓰잖아요.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기사 어떻게 쓸 줄 알고 얘기를 해요?” 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동료교수에게 당시 면접에 들어갔던 교수가 누군지 아냐고 물어볼때 조차 본인이 면접에 들어갔던 사람이라고 절대 밝히지 않았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내가 이미 그가 면접에 들어갔던 면접위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그때 당시에는 그가 주도적으로 다른 교수들에게 다른 면접자들에게 점수를 낮게 줘야 한다고 말한 교수들 중 한 명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관련 사실을 따져 묻지 못했다. 다만 짧은 순간 그가 내게 보여준 태도에서 정유라가 치룬 면접이 특혜로 가득 찼었다는 걸 짐작하게 해줬다.

● 대리시험지까지 제출하게 해준 융합콘텐츠학과 류 모 교수

K-mooc 영화스토리텔링의 이해. 정유라가 수강했던 온라인 과목이다. 온라인 과목이다 보니 다른 과목에 비해 기자들의 관심도가 적었다. 하지만 이 과목은 오프라인 특강을 한 번 나와야 하고, 오프라인으로 기말고사 시험을 반드시 봐야한다. 온라인 강의 수강과 오프라인 특강 참여, 중간·기말고사 점수를 총 합쳐서 70점을 넘어야 패스할 수 있는 과목이다.

그런데 정유라의 점수는 기말고사까지 합해도 60점이었다. 이 과목의 담당교수는 아무 이유도 없이 오프라인 특강에 참여하지 않았던 정유라에게 출석 가산점 10점을 줘 70점을 만들어 과목을 패스시켜줬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말고사다. 기말고사의 시험날짜는 6월 11일. 출입국 관리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정유라는 국내에 없었는데, 시험지는 버젓이 존재했다.
정유라가 6월 11일 제출한 것으로 되어있는 기말고사 시험지
정유라가 6월 11일 제출한 것으로 되어있는 기말고사 시험지
교육부 감사 발표가 있기 전, 이런 정황들을 확인하기 위해 류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았던 여러 교수들과 달리 류 교수는 전화를 바로 받았다. 류 교수에게 신원을 밝히면서 혹시 나를 기억하는지 묻자 그는 기억한다고 했다.

정유라가 들었던 영화 스토리텔링의 이해 과목을 나 역시 들었는데, 당시 단편 소설 2편을 써서 냈고 교수에게 일일이 피드백을 받아야 했다. 출석도 정유라 보다 당연히 많이 했고, 중간 기말 고사도 다 봤지만 성적은 B+이었다.

워낙 과제가 빡셌던(?) 탓에 수강인원 자체가 적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교수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히 이뤄졌다. 어쨌든 그때는 오프라인 과목강의라 시험 날만 갑자기 다른 사람이 와서 시험을 보는 대리시험은 불가능했다.

교수는 일단 갑자기 가산점 10점을 준 것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준 것은 맞지만 정유라만 준 것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가산점을 줬다고 했다. K-mooc라는 온라인 강의가 새로 생겼는데 오프라인 강의처럼 시험을 어렵게 내다보니 여러 학생들이 70점에 미치지 못했고, 사유서를 내면 가산점을 줬다는 것이다.

물론 정유라는 사유서를 내지 않았지만 체육특기자라 10점을 줬다는 취지로 말을 이어나갔다. 노동계 '미르재단'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청년희망재단에 초대 이사를 맡았던 것도 그냥 봉사차원에서 한 것일 뿐이라며 펄쩍 뛰었다. 또 덧붙여 지금당장이라도 괴로워서 명예퇴직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이것마저 기사가 나갈까봐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 괴로워서일까? 아니면 도피하고 싶은 것일까. 청년희망재단 말고도 류 교수는 문체부가 게임업계에게 돈을 걷어 만들어낸 게임문화재단에서도 여러 차례 이사를 지내는 등 문체부와 여기저기 관련된 게 많은 인물이다.

● 검찰로 공을 넘긴 교육부=꼬리자르기

왜 교수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한 학생에게 특혜를 몰아줬는지 교육부는 밝혀내지 못했다. 교육부 감사는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들만 겉핥기 식 으로 확인하고 공을 검찰로 넘겼다. 입시 비리에 연루된 교수들을 검찰에 고발하고 감사를 끝내버린 것이다.

이런 기자들의 지적에 교육부는 ‘행정감사의 한계’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라는 말로 일관했다. 얼핏 들어보면 맞는 말인 것 같긴 하지만 사실 어이없는 변명이다. 교육부는 대학의 입학정원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고, 대학에 지원하는 예산만 매해 수 천 억 원이다.

교육부가 부르기만 하면 대학 처장들이 줄줄이 세종시로 내려가 어떻게든 예산을 따내려고 한다. 그런데도 행정감사의 한계를 운운했다는 건 그냥 의지가 없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빨리 꼬리를 잘라내야 자신들이 대학 감시를 소홀히 했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 나라를 구한 이대생, 검찰에 줄줄이 불려가는 스승들

‘나라를 구한 이대생’ 기사 리플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장이다.

국정농단 최순실 게이트가 이렇게까지 알려진 데는 이대생들의 역할이 컸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교육부의 미래라이프대학 문제 때문에 이화여대 재학생들의 본관점거 농성이 시작됐는데, 파다보니 ‘정유라’의 입시비리가 나왔다.

그리고 이후에는 그를 둘러싼 의혹들이 줄줄이 나와 최순실 게이트에 이르렀다. 이를 두고 한 후배는 ‘고구마를 캐려고 땅을 파기 시작했는데, 지구 내핵까지 나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이대생들의 활약과 달리 스승들은 줄줄이 검찰에 불려나가고 있다.

그동안 그들은 정유라 입시 비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학교에서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고 대답했다. 총장직을 사퇴하면서 까지 특혜는 없었다고 말한 최경희 전 총장. 검찰에서는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내게 억울하다며 뒤통수 맞았다고 했던 교수님들도 뭐라고 본인을 변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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