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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대통령 한 마디에 급조·표절?…'정부 디자인' 수난사

[리포트+] 대통령 한 마디에 급조·표절?…'정부 디자인' 수난사
‘디자이너를 괴롭히는 방법’이란 게시물이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한 적 있죠.

발표 자료를 만들 때 무지개 빛깔, 총천연색을 거침없이 쓴다거나 그림이나 글씨체를 어울리지 않게 가져다 쓰는 사례들이죠. 미적 감수성을 깡그리 무시한 결과물을 디자이너가 참기 어려워한다는 우스갯소리입니다.
‘디자이너를 괴롭히는 방법’이란 게시물이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한 적 있죠.
하지만, 현실에서 디자이너를 진짜 괴롭히는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진부한 얘기지만 디자인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숱한 아이디어 회의를 거쳐 개념을 잡고 창의성을 더한 끝에 하나의 온전한 디자인을 완성해 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윗선’이 등장해서 “그거 말고, 저렇게 해!”라고 방향을 뒤엎으면 디자이너들은 큰 고통의 늪에 빠집니다. 더군다나 마감이 임박한 상황이라면 야근과 밤샘까지 각오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결과는 어떨까요? 윗선의 말 한마디로 오락가락한 디자인은 윗선의 마음에 들지 모르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부의 디자인이 딱 그런 것 같습니다.

■ '개가 될 뻔한'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
'개가 될 뻔한'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
'개가 될 뻔한'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
'개가 될 뻔한'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
'개가 될 뻔한'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
2018년 2월 열릴 평창올림픽의 마스코트 동물은 흰 호랑이, 백호입니다. 지난 6월 초 ‘수호랑’이라는 이름과 함께 대중에 첫선을 보였죠.

수호랑이 세상에 나오기는 했지만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디자인 진행 도중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이 마스코트를 진돗개로 바꾸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마감 기한까지 겨우 마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이유로 반대했으나, 문체부는 대통령이 무서워서 계속 밀어붙였습니다. 두 기관의 줄다리기는 지난가을부터 6개월 동안 계속됐고, 마침내 IOC 위원장까지 나서서 개를 거부했죠.

우리 정부는 부랴부랴 다시 백호 마스코트 개발에 나섰고, 마감 시한이었던 6월 초 간신히 IOC 승인을 얻었습니다.

워낙 급하게 만들다 보니 발표 10일 전까지 마스코트 이름은 없었고, 실물과 애니메이션은 2달 사이에 초고속으로 제작했죠. 마스코트를 활용한 각종 수익 사업은 준비할 틈이 없어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크리에이티브 코리아

수호랑 마스코트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됐다가 큰 충격을 안겨준 디자인도 있습니다.

지난 7월 초 문체부가 선보인 새 국가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죠. 공개되자마자 디자인의 문구와 색채가 프랑스의 국가산업 슬로건과 흡사해 표절 논란에 휩싸였죠.
새 국가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는 공개되자마자 디자인의 문구와 색채가 프랑스의 국가산업 슬로건과 흡사해 표절 논란에 휩싸였죠.
디자인 개발 당시 문체부는 공감을 얻겠다며 국민 공모를 통해 한국다움을 담은 키워드 약 4만 건을 모았었죠. ‘한글’, ‘열정’, ‘화합’이 인기 키워드로 꼽혔지만, 15위권에도 들지 못한 ‘크리에이티브’로 낙점됐습니다.

집단지성이 배제된 채 소수의 의사 결정을 통해 ‘엉뚱한’(?) 키워드가 결정된 것이죠. 새 국가브랜드 디자인 일감은 현 정부 비선 실세 하나인 차은택 씨의 관련 회사에 몰렸다는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창의성은커녕, 국민 공감을 얻는데도 실패한 디자인을 개발하는데 들어간 국민 세금은 무려 35억 원이나 됐습니다.

■ 민간 공모는 왜 했나?…정부 통합상징 사업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디자인 사업은 이외에도 더 있습니다.

지난 3월 선보인 대한민국 정부 통합 상징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제각각인 정부 기관들의 로고나 상징을 일관성 있게 통일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존 태극무늬를 살짝 변형하는 수준에 머무르다 보니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태극 문양은 이미 옛 도가(道家) 경전에서 많이 나온 형태인데다, 색상도 오방색 내에서 결정된 거죠.

개발하는데 5억 원가량이 들었습니다.
기존 태극무늬를 살짝 변형하는 수준에 머무르다 보니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개발하는데 5억 원가량이 들었습니다.
도안 선정 과정도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차은택 씨 은사인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취임 이후 시작한 이 사업은 처음에 민간 공모로 시작해 1년여간 보완 작업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청와대가 최종결정한 시안은 민간 공모를 거쳐 다듬은 디자인과 전혀 별개인 지금의 태극 문양이었죠. 앞으로 새 정부 상징으로 교체하는 예산만 6~70억 원이 들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정부의 디자인 수난사는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요?

(기획·구성: 임태우, 송희/ 디자인: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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