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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요즘 시위 풍속도② - '불법집회'와 '전문 시위꾼'을 넘어

[취재파일] 요즘 시위 풍속도② - '불법집회'와 '전문 시위꾼'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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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어지는 대통령 하야촉구 시위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일부 좌파단체’ 혹은 ‘전문 시위꾼’과 무관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 '혼참러'까지 등장…달라지는 한국의 시위문화

앞의 글에서 밝혔듯 ‘순수한 개인’과 ‘불순한 조직’ 단위 참가자를 대비시키는 건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습니다. “외부세력이 개입했다, 폭력 불법집회다”라는 프레임은 시위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불법집회’와 ‘전문시위꾼’을 강조하는 시각이 의도적이라고 해도 실제로 그러한 인식이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시위 당사자 내부에서도 굳이 분란의 여지를 주지 말고, 효과적인 시위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 청와대 행진보다 번화가 행진으로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시위대가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기보다 서울 도심 곳곳으로 흩어져서 행진하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기존의 집회는 밤 시간대에 청계천과 시청에서 집회를 한 뒤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해왔습니다.

홍 교수에 따르면 경찰이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가는 방향을 막는 데에는 도가 텄기 때문에 시위대가 행진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겁니다. 경찰이 청와대 앞까지 안전하게 안내해 시민의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게 맞는 방향이지만 현실적으로 청와대 근처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따라서 홍성수 교수는 낮 시간대에 강남과 신촌 등 서울 도심을 행진하면서 더 많은 시민들의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시위가 TV를 통해서 보는 것과 실제로 눈앞에서 보고 참여해보는 건 다른 느낌이므로 시민들의 생활공간이나 주거지 쪽을 돌자는 겁니다.
권역별 행진지도
홍 교수의 제안을 인용해 의경 출신 대학생이 행진 방향 지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학생은 서울을 권역별로 나눠 연세대, 이대 등은 신촌으로 성균관대, 고려대 등은 대학로로 서울대, 중앙대 등은 강남으로 행진하는 등 서울 번화가로 행진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를 통해 1987년 6월 항쟁처럼 직장인들도 동참하고 집에 있는 사람들도 시위를 목격하고 손을 흔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겁니다.

● 시위의 방식과 목표를 명확히 해야

'전쟁 없는 세상'의 활동가 오리 씨는 기고문( 기고문 보기▶ 안 가면 애매하고 가면 씁쓸한-성공적인 대규모 거리시위를 위한 생각들)을 통해 대규모 거리시위를 효과적이고 많은 참여를 유도하도록 조직하기 위해서는 시위 형태의 쓰임새를 정확히 파악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민중총궐기를 매일, 매주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앉아서 잘 들리지도 않은 연설을 들으며 앉아있어야 하는지 문제제기를 합니다. 많은 집회를 가보면 연단에서 연설을 하고 맨 앞의 몇 줄은 열렬히 동조합니다.

하지만 대규모 집회의 경우 줄이 늘어서 뒤쪽에는 연설하는 사람도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경우가 대 부분입니다. 보통 뒤쪽에 참여한 시민들은 한 두 시간 이어지는 행사를 하는 동안 함께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추워서 집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경찰 차벽 및 의경이 막고 있는 장면
오리 씨는 ‘의사전달형 시위’와 ‘구체적인 직접행동’을 구분해서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몇 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나와 행진을 하는 민중총궐기의 경우 ‘의사전달형 시위’라고 규정했습니다. ‘구체적인 직접행동’은 노조가 파업을 해 공장을 멈추고 직접 사용자에 충격을 준다거나 활동가들이 박람회장의 출구를 점거해 박람회의 정상정인 진행을 방해하는 등의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의사전달형 시위’는 직접행동처럼 실제로 수치화할 수 있는 타격을 주는 방법이 아닙니다. 따라서 민중총궐기와 같은 시위는 청와대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많은 시민들을 참여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하므로 꼭 청와대로 행진하거나 한 곳에 앉아 연설을 들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 11월12일 민중총궐기는 청와대를 향할까

민주노총은 어제(8일) 오는 토요일 2016민중총궐기 때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겠다는 신고서를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청와대 100m 이내를 집회 금지구역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민주노총은 청와대로부터 200m 가까이 떨어져있는 청운동 주민센터까지 평화 행진을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전까지 집회에서 경찰은 청와대 근처까지 행진할 경우 사고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광화문 부근에 차벽을 세워 행진을 막아왔습니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도 차벽을 넘어 행진하려는 시민과 막으려는 경찰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사고가 났습니다.

시민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지 않고,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떨어뜨리거나 차벽으로 막아서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위 참가자 내부에서도 위험한 충돌을 해서 ‘불법집회’ 프레임에 스스로 얽혀들 필요가 있느냐, 청와대 앞까지 가면 얻는 실익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11월 12일 오후에 예정된 2016 민중총궐기에는 수십만의 시민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십만의 시위대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좀처럼 모이기 힘든 분노와 에너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지에 대한 토론과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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