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담요를 덮어 놓고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이제 13살인 이 학생이 프랑스 최고 음대에 학칙도 바꿔놨습니다.
13살 피아노 영재인 김두민 군의 입학 여부를 놓고 프랑스 최고 음대에서 긴급회의가 열렸습니다. 학칙 개정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는데, 이틀간의 회의 끝에 18살 이상만 입학 가능한 학칙을 바꿔서 두민 군을 입학시키기로 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하고 싶다는 두민 군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 세계적인 교수들을 깜짝 놀라게 한 피아노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사실, 두민 군에겐 아픔이 많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백내장 때문에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술도 여러 번 해봤지만,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오른쪽 시력도 좋지 않아서 한 옥타브 건반 정도만 보여 피아노를 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피아노에 담요를 덮은 채 마음의 눈으로 연습, 또 연습을 했습니다.
눈은 안 보이지만 다른 감각들이 더 살아났고,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 끝에 치기 힘든 곡들도 모두 연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피아노를 배운지 3년 만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최연소로 프랑스 최고 음대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두민 군은 한국에 남아야 하는 부모님께 그저 죄송하기만 했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두민이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면서 아들을 응원했습니다.
혼자서 곡도 만들고 연주, 지휘도 하면서 감동을 전하고 싶다는 두민 군, 한쪽 눈으로 남들은 보지 못하는 희망까지 보는 두민 군의 앞으로의 미래가 너무 기대됩니다.
▶ 프랑스 대학 학칙을 바꾸게 한 한국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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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어려운 형편 속에 학교에 다니지 못해 한글도 배우지 못했던 서부덕 할머니, 다른 사람들이 글씨 쓰는 게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평생 한이었습니다.
할머니는 25살 때부터 김밥과 비단을 파는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전국을 돌았습니다. 한때는 여관비가 없어 지푸라기 위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점심 먹을 돈이 아까워서 끼니를 거르는 날도 많았습니다.
사흘 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날도 있었다고요, 그렇게 힘들게 장사를 해서 71살이 돼 그만둘 때까지 할머니는 8천만 원을 모았습니다. 노후자금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자기처럼 못 배워서 속상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면서 평생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했습니다.
할머니는 2년 전에 허리를 다쳐 장사를 그만뒀고, 요즘엔 도서관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 이름 정도만 쓸 수 있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가난을 탓하지 않고 남들과 나누는 삶을 선택한 서부덕 할머니,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 참 멋지고 대단하시죠.
▶ 할머니가 8천만 원을 모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