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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개 경주장에서 뮤지컬극장으로 ②

[월드리포트] 개 경주장에서 뮤지컬극장으로 ②
현재 중국 뮤지컬 관객은 어떤 사람들일까, 혹시 통계 자료 같은 게 있는지 물어봤더니, 정부 차원의 통계는 보통 큰 극장의 관객 조사 결과를 모아놓은 것이라 편차가 있다 한다. 워낙 큰 나라라서 전국적인 통계를 정확하게 내기는 어렵지만, 극장 자체적으로 한 조사는 비교적 신뢰할 만하다 했다. 자체 조사 결과는 영업 비밀 같은 거라 밝히기 어렵다고 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때 조사한 결과를 보면, 중국의 뮤지컬 관객 평균 연령은 34세다. 비교적 고소득이고 소비 성향이 높은 30대 관객이 중심이라는 얘기다. 여성 관객이 전체 관객의 72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 인터넷 매표를 많이 한다. 입장료가 500위앤 이상(100위앤을 한화 1,700원으로 환산하면 8만 5천원 정도)일 때 구매를 망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층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했다.

“뮤지컬 시장은 여성 관객이 주류입니다. 남성 관객 28퍼센트도 부인이나 여자친구에 이끌려온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재미있는 건 온라인 매표만 보면 남녀 성비가 1:1이라는 거예요.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남성은 핸드폰을 갖고 놀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게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는데, 여성은 더 신중하고 성실한 관객이라 공연 정보를 많이 찾아보다가 공연장에 직접 와서 사는 등 다른 경로로 사는 경향이 많다는 걸 발견했어요. (또 여자친구나 부인과 동반 관람할 때 남성이 표를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았다.)”
상하이문화광장 내부
상하이 문화광장에는 유료 회원제도가 있다. 나는 상하이 문화광장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인터넷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이는 무료다. 유료 회원은 1년에 30위앤, 한화 5천원 좀 넘는 돈을 낸다. 유료 회원에게는 공연 캘린더 등 공연 정보와 홍보물을 발송해주고 관람료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현재 공연 정보와 매표 정보, 회원 정보를 통합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유료 회원 3,000명이라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아직은 초창기라 그럴 것 같다.

혹시 후원 회원제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 한다. 중국은 공연장을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전통은 없지만, 기업 후원은 종종 있다며 중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과 최근 5년간의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고 소개했다. 기업명 上海汽车, 즉 上汽가 앞에 붙어 공식 공연장 명칭이 上汽 上海文化广场으로 되었다. 대신 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가 다른 곳에도 있느냐 했더니, 상하이 대극원 중극장은 역시 자동차 기업인 뷰익이 네이밍 스폰서라 한다.

중국 뮤지컬 시장의 미래에 대해 전망해달라고 했더니 긴 대답이 이어졌다. 신중하고 현실적인 견해였다.

“10년 전에 중국과 한국 뮤지컬 산업 격차가 10년이라고 했었어요.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뮤지컬 산업 수준에 이르지 못했죠. 정치와 제도상의 차이,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 문화 소비 습관 같은 사회 문화적 차이를 간과한 견해였던 거예요. 중국에서 뮤지컬 관람 습관이 형성되려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우리 극장이 겨냥하는 관객들은 상하이에서도 외국 문화에 익숙하고 소비 수준이 높은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요. (올해 공연 예정인 뮤지컬 ‘모차르트’의 티켓 가격은 80위앤에서 1280위앤이다. 최고 22만원 정도 되는 가격이니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뮤지컬을 안다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죠. 공연은 경제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중국에 돈이 많다고는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지출할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아요. 지금의 경제 구조에서는 젊은 층의 스트레스가 큽니다. 집 값 비싸고, 부모 봉양도 해야 하고, 의료비 교육비 지출이 너무 많죠.

문화소비 습관도 외국과는 달라요. 외국에서는 그저 여가가 생겼으니 공연 보러 간다는 식으로 습관이 형성되어 있지만, 중국에서는 공연 한 번 보려면 고려할 조건이 너무 많아요. 저희 극장은 다른 극장에 비해서는 표가 잘 팔리는 편이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해요. 천천히 성장하고 있는 셈이죠. 앞으로의 성장도 경제 발전 상황에 큰 영향을 받을 겁니다.”

그는 특히 뮤지컬 산업이 필요로 하는 장기 공연은 탄탄한 중산층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문화 소비 습관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처럼 1년 이상 장기 공연하는 공연이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은 한국에서도 1년 이상 장기 공연하는 경우는 드물다. 라이온 킹이 1년간 공연됐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물론 중국보다 훨씬 오래 공연되는 뮤지컬이 많다는 건 맞다. 상하이 문화광장에서 최장기 공연된 뮤지컬은 ‘오페라의 유령’이지만 두 달 정도에 그쳤다.

“시장에만 의지하고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죠. 우리의 큰 임무는 해외의 우수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지만, 중국 창작 뮤지컬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체 제작으로 상업적 성공까지 거두는 작품을 계속 내놔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다 성공적으로 해내야죠.”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워 호스’ 관람 때 봤던 레이저 포인터가 생각나 물어봤다. 객석에서 전화를 사용하거나 사진을 찍으려 하는 관객들이 있을 때 공연장 직원들이 레이저 포인터로 광선을 쏴서 저지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레이저 포인터를 언제부터 이런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궁금했다. (▶ 블로그 관련 글 참조)

“하하. 언제부터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저도 몰라요. 제가 상하이 대극원 있을 때도 레이저 포인터를 썼었어요. 이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죠. 소음은 차단할 수 있을지 몰라도 광선이 시각적으로 다른 사람을 방해하니까요. 요즘은 관람 분위기가 많이 정숙해진 편인데, 단체 구매나 초대권으로 온 관객이 많을 때 좀 더 어수선한 경향이 있어요.”

내가 살고 있는 칭다오에서는 뮤지컬이 거의 공연되지 않는다. 베이징 상하이 급은 아니라도 번듯한 대도시이고 큰 공연장도 몇 곳 있지만, 뮤지컬 관람 경험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중국에서 뮤지컬은 아직 생소한 장르인 것이다. 상하이는 훨씬 상황이 낫지만 리차드는 중국 뮤지컬 시장의 성장에 대해 ‘시간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견해를 보였다. 아직 발전 초기 단계이고, 섣불리 미래를 점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뮤지컬 시장의 발전 잠재력은 크고, 성장 과정에서 대표적 뮤지컬 전문극장인 상하이 문화광장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상하이 방문 계획이 있다면, 공연에 관심이 있다면 상하이 문화광장에도 한 번 들러보시길. 개 경주장에서 정치 집회 장소, 그리고 증권시장과 꽃 시장을 거쳐 뮤지컬 전문극장이 된 이 곳에서 중국의 오늘을 만나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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