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헛말에 그친 박 대통령의 ‘무신불립’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정치인 가운데 손꼽히는 ‘중국통’으로 평가됩니다. 독학으로 익힌 중국어 실력이 수준급이고 20세기 중국의 대표적 철학자인 펑여우란의 명저 <중국철학사>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 말할 정도입니다. 박 대통령의 좌우명이라 할 수 있는 격언도 <논어>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입니다. 신뢰가 없으면 설 수 없다, 즉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일본 총리 특사단과 만난 박근혜 대통령 (2013년 1월)
2013년 1월 4일,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박 대통령은 청와대 근처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당선인 집무실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특사단과 만났습니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사실상 첫 공식 일정이어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이 “일본에서 선거의 여신(女神)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거마다 이기는 비결이 무엇인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무신불립이라 했습니다. 국민과의 관계도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일관성을 갖고 꾸준히 하면 선택해줍니다”라고 자신이 ‘선거의 여왕’에 등극한 원동력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로부터 2년 뒤인 2015년 6월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는 주한 일본대사관이 주최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이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은 축사를 통해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처럼 양국 국민 간의 신뢰와 우의를 쌓아가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 국민의 신의가 보다 깊어질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양국이 취해 나갔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무신불립’은 지난 4월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다시 강조됐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먼저 지난 2월 5일 이뤄진 한·중 정상 간 통화를 언급하면서 “얼마 전 우리가 상호 관심사에 대해 대화함으로써 상호 이해를 증진시켰다”고 평가하자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주석님과 오찬을 함께했을 때의 무신불립이라는 문구가 기억이 난다. 양국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이끌어 가는 기본정신은 상호존중과 신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양국 정상 간 단독오찬의 메뉴판에는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사진과 함께 ‘이심전심 무신불립’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무신불립’은 공자의 유명한 말로 지난 2천5백 년 동안 동북아의 정치가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금언이었습니다. <논어> ‘안연편’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인 자공과의 문답이 나옵니다.

자공: 선생님 정치가 무엇입니까?
공자: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것, 병력을 넉넉하게 하는 것,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셋 중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 군대를 버린다.
자공: 어쩔 수 없이 또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 식량을 버린다. 예로부터 사람은 모두 죽는다. 하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국가는 존립하지 못한다.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공자는 분명히 식량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국가나 지도자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존립할 수도 없고 나아가 존재할 필요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민에게 고작 1분 30초 동안, 그것도 녹화방송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사과의 형식을 떠나 더 큰 문제는 내용입니다. 박 대통령은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습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국민은 거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그토록 강조했던 ‘무신불립’의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기 바랍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이른바 <워터게이트> 파문에 휩싸여 1974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가 치욕적으로 하야할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 원인은 ‘거짓말’이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