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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세먼지 악취, 더는 못 참아!

참여 행정 실천으로 시 당국 각성 분발 유도

[취재파일] 미세먼지 악취, 더는 못 참아!
● "땅으로 스며들고…이걸 우리가 섭취해야 한다는 게 끔찍해요!"

배추 상추 시금치 파. 시민 밥상에 오를 채소가 비닐하우스에서 잘도 자란다. ‘농민’의 수고로움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은 잠시뿐이었다. 비닐하우스 빼곡한 도시 주변 들판을 돌아보며 시민들은 쯧쯧 혀를 찼다. 아무렇게나 둘둘 말아 내팽개친 비닐 더미, 길가에 나뒹구는 모종판, 스티로폼 조각, 비닐 온실 덮은 뒤 걷어낸 부직포 뭉치 따위가 널브러져있다. 채 삭지 않은 가축분뇨 퇴비가 길가에 둔덕처럼 쌓여 악취를 풍긴다.

한숨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땅바닥에 시커멓게 쌓인 쓰레기 태운 잿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음료수 페트병, 우윳곽, 종이컵, 담배꽁초, 폐지...심지어 음식찌꺼기에 농약병과 비닐 비료포대까지.. 잿더미 위에는 새롭게 쓰레기가 쌓였다. 연중 계속 태워 버린다는 증거다. 아예 소각용 드럼통을 놓고 태우기도 하고, 구덩이를 파고 불 지르는 곳도 있다. 소각재는 밭과 주위 곳곳에서 보인다. 더러운 땅에서 나온 작물, 먹어도 좋은지 의심스럽다고 시민들은 낯을 찡그렸다. 
쓰레기 불법 소각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쓰레기 소각 연기, 더 두고 볼 수 없다고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인구 100만을 돌파했다고 자랑하는 경기도 고양시, 갓난아기부터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3,40대 남녀 시민들이다.

미세먼지 문제 대책을 촉구하는 온라인 카페(약칭 미대촉, 네이버)의 지역 모임 회원들이다. 신생 환경감시단체와 지역 발전을 모색하는 취지의 시민모임이 힘을 보탰다. SNS(카카오톡) 대화방을 열어 10월 초부터 두 주 동안 정보를 공유했다. 멀거나 가깝거나 연기가 보이면 스마트폰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담고 지도 앱으로 위치를 저장했다.

소각 광경을 발견할 때마다 행정자치부 생활불편신고 앱을 통하거나 시청, 구청에 전화를 걸어 알렸다. 네 네 알겠습니다, 건성 답변이거나 거기가 어디냐 장소를 잘 알려줘야 나갈 게 아니냐, 되레 면박을 받기 일쑤였다. 행정을 믿기 어렵다, 실망과 불신이 쌓여갔다.

직접 실태를 조사해서 근본 대책을 당국에 촉구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메모장과 카메라, 지도를 들고 의심 지역을 돌며 면밀하게 살피고 기록했다. '시민들이 직접 만든 고양시 쓰레기 불법소각 지도(제1편)'는 이렇게 나왔다.
쓰레기 방치 소각 집중 지역
지역에서 불법소각 실상이 얼마나 심한지 금세 알 수 있다. 구역별 위성사진 13장에 소각 지점을 빨간 점으로 표시하고 번호를 매겼다. 지점마다 상세한 위치, 주소와 상황을 뒷부분에 3쪽으로 기록해 묶었다. 검은 연기 솟는 길가 조경업체로 차를 몰고 달려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으면서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어서 끄세요!’ 목청을 돋우기도 했다.

미세먼지에 시달리며 애태우다 보니 분노가 솟았다. 두 살 바기 아들을 둔 30대 주부가 용감하게 나선 까닭이다. 기자도 시민들의 제보 연락을 받고 달려가곤 했다. 덕분에 쓰레기 소각 현장을 여러 건 영상으로 담을 수 있었다. 늘 잿빛이던 하늘이 모처럼 푸른 날 쓰레기를 더미로 쌓아 놓고 불붙이는 사람은 대체 어떤 심보일까?

죄의식은 커녕 아무런 책임감도 없었다. 멀리서도 연기와 탄내를 알 수 있을 정도인데 노상 태웠다면, 대체 지자체 청소, 환경 행정은 다 뭐란 말인가?
 
단순 실태 고발에 그쳐선 안 될 일이다. 고양시가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실효 있는 대책을 내놓도록 물어야 한다. 행정을 책임진 시장이 직접 문제 현장을 보고 시민들 질문에 답변하도록 제안했다. 지자체와 시장의 개인 이미지 관리에 껄끄럽다고 여겼는지 실무 공무원을 보낸다는 둥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지역 축제나 시설 개관식 축사자리뿐 아니라 고질적인 문제 현장에도 나와 실상을 파악한 뒤 개선 방안을 밝혀야 성실한 공직자의 이미지를 쌓을 수 있는 법이다. 우여곡절 끝에 최 성 고양시장은 10월 17일(월) 오후 2시 반 청소 환경부서 공무원들과 함께 시민들이 기다리는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쓰레기 불법소각지도에 따라 상태가 심한 곳을 짚어나갔다. 때마침 매캐하게 코를 찌르는 탄내가 풍겨왔다. 농산물 가공업체였다. 양파 마늘 배추 무 같은 채소류를 다듬고 나온 생 쓰레기가 여러 포대에 가득 담긴 채 썩어가고 있었다. 시커먼 물이 배어나와 바닥에 고일 정도였다.

따로 수북하게 쌓아놓고 다른 생활쓰레기와 함께 불을 질러 공기를 더럽히고 있었다. 한 두 해 묵은 게 아니었다. 행정의 구멍을 직접 보고 시장과 공무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시장이 둘러본 현장은 시민들이 만들어 낸 지도 13장 가운데 석 장에 표기한 22곳의 일부 4곳에 불과했다. 시 농정부서의 지원을 받는 곳임을 알리는 표지판도 버젓이 걸린 온실재배업자 농원 앞엔 쓰레기 소각 드럼통이 놓였고 주위로 온갖 생활쓰레기를 봉투째 쌓아놓았다.

종량제 봉투가 아님은 물론이다. 입구부터 어른 키 높이 가까이 쌓인 기다란 더미엔 온통 환삼덩굴에 덮였다. 얼핏 울타리인 듯 보였다. 지역 환경감시단체 대표가 삽으로 걷어내자 빈 페트병을 비롯해 여러 해 묵었음직한 생활쓰레기 자루가 켜켜이 드러났다. 땅과 물, 공기를 더럽히며 자기 잇속 챙기는 사람들까지도 농민이라고 부르기 민망하다.
최성 경기도 고양시장
쓰레기 소각 연기와 재로 오염된 들판에서 시장은 인터뷰 카메라 앞에 섰다. 시의 행정력을 동원해 실태를 조사하고 시민들의 뜻을 받들어 청결한 도시를 이루는 데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초)미세먼지 측정소도 늘리고 지역의 대기 질 연구 조사 용역도 내겠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하는 모임의 주부 회원 2명이 시장에게 쓰레기 불법소각지도를 시장에게 전했다. 7살 바기 딸을 키우며 다음 달 둘째 출산 예정인 만삭의 여성은 미세먼지로 불안한 심정을 호소하다 목이 메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최 성 시장은 손수건을 건넸다.
 
▶ 하늘 덮은 쓰레기 연기…참다못해 나선 시민들 10월 18일(화) 8시뉴스 보도에 댓글이 2백 개 넘게 달렸다. 예상한 대로 쓰레기와 농사 잔재물 소각은 전국적인 문제다. 불로 태우면 깨끗하게 처리하는 것 아닌가 하겠지만, 맨바닥에서 태우기에 타는 온도가 높지 않아서 이른 바 ‘불완전 연소’ 일 뿐이다.

이때 나오는 연기, 검댕이 모두 미세먼지요 유해물질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11%가 이런 소각으로 생겨난다고 경기연구원의 김동영 선임연구위원은 말한다. 특히 비닐이나 플라스틱 같은 것이 섞이면 맹독성 다이옥신, PAH((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s, 다환방향족탄화수소)같은 발암성 물질이 발생해서 인체 건강과 환경에 큰 피해를 준다.

특히 농촌에서 콩대나 깻대 같은 농사잔재물이나 논밭두렁 태우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데 엄연히 위법이다. 오래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면 농민, 시민의 인식전환과 적극적인 행정 대응이 필요하다. 태우지 말고 연료로 가공하거나 퇴비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느슨한 생활쓰레기 분리 수거체계를 바로잡아야 함은 기본이다.

고양시는 시장이 현장을 점검한 직후에 간부 회의를 열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눈물 흘리는 만삭의 여성 시민에게 손수건 건넨 고양시장이다. 맑은 공기 깨끗한 환경을 행정 서비스의 기본으로 삼아주길 시민들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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