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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능 아랍어는 죄가 없다

제2외국어 아랍어 이상 열풍

[취재파일] 수능 아랍어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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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랍어가 인기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을 타고 건설사와 무역 회사들이 속속 아랍에 진출하면서 아랍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특별 대접을 받던 시절입니다. 아랍어과가 설치된 대학에는 우수한 인재가 몰렸습니다.

그러던 것이 중동 경기의 부침과 함께 아랍어의 인기도 부침을 거듭했습니다. 베트남어도 비슷한 경로를 겪었습니다. 이렇듯 특수 언어로 취급받던 아랍어가 중동에 대한 관심과 무관하게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최고 인기 제 2외국어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올해 수능 시험에서 제 2외국어로 아랍어를 선택한 학생은 6만 5천여 명. 제 2외국어 응시생의 69%가 아랍어를 선택한 것입니다.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아랍어를 선택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아랍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전국에 5곳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학생들은 학원 수강이나 인터넷 강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랍어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
제 2외국어 과목으로 수능 아랍어가 인기를 끄는 것은 역시 높은 등급을 받기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아랍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실력이 대체로 높지 않아 점수 따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많이 가르치는 중국어나 일본어의 경우 1등급을 받으려면 50점 만점에 47점 이상을 받아야 합니다.

1.2개 이상 틀리면 1등급을 놓치지만 아랍어는 지난해 경우 23점 이상만 받으면 1등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 정도만 맞춰도 1등급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3분의 1정도만 맞추면 2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게 현실입니다. 외고생들과 경쟁을 피해가는 효과도 있습니다.

상위권 대학들은 수능 최저 등급으로 2등급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탐구 과목 대체 과목으로도 인기입니다. 사회탐구 과목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아랍어가 수능 등급을 높여주는 안전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능 아랍어
이러니 학생들로서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아랍어는 학생들이 비슷한 수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랍어 쏠림 현상에 학생들을 탓할 수도 없는 겁니다. 아랍어도 죄가 없습니다.

아랍어가 공부하기에 결코 쉬운 언어는 아닙니다. 꼬불꼬불한 철자를 익히고 기본 문법을 익히느라 공부 초기에는 무척 힘들다고 학생들은 호소합니다. 수능 아랍어 도입 초창기만 해도 피라미드 사진을 같이 보여주고 방문한 나라가 어느 나라냐고 묻는 식으로 아랍어를 몰라도 맞출 수 있는 문제가 출제돼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랍어가 제 2외국어 과목으로 채택된 2004년 만해도 아랍어 응시자는 50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수험생의 0.4%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2008년에는 29.4%로 일본어를 제치고 최고 인기 제 2외국어 과목으로 떠오르더니 2012년까지 줄곧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제 2외국어 과목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부터 2014년 2년 간은 잠시 베트남어에 밀리는가 했더니 다시 지난해에는 절반이 넘는 수험생의 선택을 받아 다시 최고 인기 과목으로 재등장했습니다. 수험생들은 혹시라도 올해 아랍어가 어렵게 출제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험생간의 상대평가로 등급을 매기기 때문에 다른 외국어보다 유리한 건 현실입니다.

때아닌 아랍어 열풍에는 학생도 아랍어도 죄가 없습니다. 가르치는 학교도 없는데 수능 시험 과목에 포함시켜놓고 수수방관하는 교육 당국이 문제입니다. 교육 당국은 제 2외국어를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꿀까도 검토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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