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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총을 든 반군, 밤엔 붓을 든 '시리아의 뱅크시'

낮엔 총을 든 반군, 밤엔 붓을 든 '시리아의 뱅크시'
▲ 무너진 건물에 말리크 알샤미가 그린 벽화 (사진=시리아 단체 페이스북 캡처/연합뉴스)
 
그림 속 소녀가 해골 더미 위에 발을 딛고서 손을 뻗어 '희망'이란 글자를 씁니다.

2년 전 시리아 다마스쿠스 외곽 지역에서 포격으로 무너져내린 건물 지붕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낮에는 반군 대원으로 싸우고 달밤이 되면 포탄을 피해 전쟁의 참혹함과 시리아인들이 겪는 혼란을 벽화로 그리는 '시리아의 뱅크시'를 영국 BBC 방송이 13일(현지시간) 조명했습니다.

아부 말리크 알샤미(22)는 2014년부터 2년간 다마스쿠스 외곽 다라야에서 수십 점의 벽화를 남겼습니다.

이 그림들이 현지 매체와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에 퍼지면서 알샤미는 정치적 메시지를 품은 깜짝 벽화들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에 빗댄 '시리아의 뱅크시'로 통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2011년 고등학생이었던 알샤미는 반정부 시위에 가담했고 독학으로 공부한 미술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시리아의 대표적 반군 자유시리아군(FSA)에 합류하려 다라야로 건너갔을 때도 그의 손에는 스케치북과 연필이 들려 있었습니다.

다라야에 도착한 첫날, 그는 총 쏘는 법을 배웠고 다음날 바로 전선에 투입됐습니다.

벽화를 시작한 것은 '다라야의 눈'이라는 별명의 화가 마지드를 만난 뒤였습니다.

마지드의 독려로 그는 전장에 나서기 직전 한 군인에게 소녀가 사랑이란 무엇인지 가르치는 첫 벽화를 그렸습니다.

전시의 다라야는 무엇이든 부족했습니다.

마지드와 알샤미는 포격에 무너진 화방 건물에서 잔해를 뒤져 미술용품을 가져가도 좋다는 화방 주인의 허락을 받아 붓과 물감을 구했습니다.

포탄을 피해 작업은 어두울 때 했습니다.

알샤미는 "가장 좋은 때는 동이 틀 때나 해가 질 무렵이었다"며 "밤에는 보름달이 뜰 때 벽화를 그리곤 했고 휴대전화 불빛 아래서 그릴 때도 있었다"고 BBC에 말했습니다.

그의 벽화들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시리아인들을 담고 있습니다.

한 그림에서 그는 함께 자라난 두 친구가 차례로 사라진 자리에 비석과 총만 쓸쓸하게 남은 모습을 그렸습니다.

물감은 점점 떨어졌습니다.

지난해에는 전투 중 부상으로 전투와 벽화 작업을 모두 쉰 적도 있었습니다.

2년간 30점 이상을 그리고 난 올해 1월 친구 마지드가 숨졌습니다.

지난 8월 시리아 정부군은 다라야를 점령했고 알샤미와 다른 대원 수백 명은 반군 지역인 북부의 이들리브로 밀려났습니다.

벽화가 워낙 수명이 짧은 예술이기도 하지만, 정부군이 탈환한 지역에서 반군 알샤미의 작품 수십 점이 얼마나 버티고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들리브에서 알샤미는 거리의 예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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