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없이 박근혜 정부 임기를 일년 앞둔 시점에 개헌 논의가 급부상했습니다. 청와대가 "개헌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오히려 정치권 개헌 목소리는 사그러들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이 “개헌논의는 블랙홀”(1월) “경제는 언제 살리나요?”(4월) 라는 말로 개헌 논의에 불씨를 꺼보려 했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잘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여당 내 친박-비박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대선 후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친박계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밀고 있는데, 반 총장이 친박계 등에 올라탈지, 대선에 나서더라도 완주가 가능할지 확신이 없습니다. 반기문 대항마를 못 찾고 있는 비박계로선 어정쩡한 개헌찬성 입장입니다. 야당에 정권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권력을 나눠 갖는 게 낫다는 계산입니다. ‘독일식 내각제’(정진석 원내대표) ‘국민주도 개헌’(이정현 대표) ‘대통령 직선 의원내각제’(정종섭 의원). 새누리당 내 개헌주의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이름은 달라도 내용은 비슷합니다. 강력한 대선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권력을 분산하는 내각제 개헌입니다. 둘째, 야당 내부의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입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는 개헌에 반대입장입니다. 그런데, 문재인은 지지층도 탄탄하지만 안티도 만만찮습니다. ‘문재인 밖에 없는데,, 문재인에게 권력을 몰아주고 5년을 마음 졸이기가 부담된다’는 의견이 야당 내부에 존재합니다. 김종인 전 대표는 내각제로 위험을 분산하는 길 만이 5년 단임제의 정치적 도박으로부터 국민을 해방시키는 탈출구라고 역설합니다. 야당 내부에서 먹히는 논리입니다. 여당이 반기문에 대한 확신이 없듯, 야당은 문재인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가능한 얘기입니다. 셋째, 5년 단임 대통령제의 권력집중에 대한 국민적 혐오입니다.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은 30년 세월을 거치며 희석된 반면, 권력집중에 대한 식상함과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게 여야 개헌주의자들의 논리적 근거입니다.
다시 앞서 언급한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 정치권 인사로 돌아갑니다. “개헌 논의가 물거품이 되고 임기 후 복기해보니,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당선 직후 임기 초반에 개헌을 추진했다면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혹은 대통령 임기를 줄여 국회의원 임기와 맞췄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둘 다 대통령으로선 선택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루하루 할 일이 태산인데 임기 초반부터 개헌을 추진하기도 어렵고, 더구나 임기를 스스로 단축한다? 불가능하더군요”
개헌 논의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 예단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는 유감입니다.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이를 결정하는 최종 주체는 국민입니다. 불행히도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큽니다. 권력 집중에 대한 피곤함 못지 않게 무능한 국회에 대한 질타가 심합니다. 결국 국민은 최종 결정적 순간에 이 질문을 할겁니다. “헌법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질까?” 1987년 직선제 개헌 당시 국민이 했던 질문과 답변입니다. 그때는 분명 ‘YES’ 라는 답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잠재적 대선후보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개헌 반대 의사를 밝히며 한 발언이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개헌 논의는 여야 기득권이 권력을 더 효율적으로 확보하려는 방법론 싸움일 뿐입니다” 국민이 정치인을 불신하는데 헌법 바꾼다고 더 나은 세상 온다고 믿어줄까요? 개헌을 주장하는 분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