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귀사에 입사거부서를 제출합니다."

류란 기자 peacemaker@sbs.co.kr

작성 2016.10.12 10:50 수정 2016.10.12 18:3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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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글은 모두 정흥섭 옮긴이의 말과 출판사 ‘클’이 낸 보도자료, 책 본문을 인용했습니다.
* 글과 이미지의 저작권은 출판사 '클'에 있습니다.


“귀사에서 제안하신 일자리를 거절합니다. 이력서도 동봉하지 않겠습니다.”

프랑스 청년 쥘리앵 프레비외는 자그마치 7년 동안 신문에 채용공고를 낸 회사들에 편지를 썼다. 1천여 통의 편지를 썼으니 프랑스에 있는 상당수의 회사에 편지를 보낸 셈이다. 그는 어느 방송국 인터뷰를 통해 이런 일을 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그는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갔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길을 가는데 죽어있는 고양이를 봤습니다. 슬픔을 느낍니까?" 예비 신입사원의 심리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마련된 간단한 형식의 질문지 앞에서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특이하다고 할 만한 형식의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뭔가 거슬렸다. 그가 지원한 인턴사원의 업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낯선 질문들. 프레비외는 비인격적 대우라고 느꼈다고 한다. '도대체 죽은 고양이가 인턴 업무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두번째 면접시험에서도 면접관들의 짓궂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들의 거만한 태도가 면접시험을 보러 온 청년의 심기를 건드렸다. 회사라는 이름의 집단이 한 개인을 얼마만큼 불편하게 할 수 있는지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경험하게 된 것이다. 프레비외는 이후 채용공고를 내는 회사에 '입사거부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자기소개서' 격인 '지원동기서'의 편지 형식을 빌어 채용공고를 낸 업체를 조롱한 것이다.´입사거부서´ 작가 쥘리앵 프레비외/ 제공:출판사 ´클´담당자님께.

노동시장 신문에 게재된 귀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귀사의 채용공고에서 몇 가지 오류를 발견하였습니다. 귀사는 구직자들에게 “성공적인 삶을 원한다면...”이라고 하시고는 입사 후 6~9개월간 법적 최저임금의 65%를 약속하셨습니다. 성공적인 삶과 박한 임금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성립되어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박한 임금 때문에 당장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을 테니, 안타깝지만 귀사의 글에는 표현상의 오류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류 때문에 귀사를 선택하려는 지원자가 귀사의 경쟁사로 발걸음을 옮길 것 같습니다. 이 명백한 모순을 바로잡아주셨으면 합니다. 따라서 귀사에서 제안한 일자리를 거절하며 추후에는 이런 종류의 큰 실수가 없기를 바랍니다. 답장을 기다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 2004년 3월 14일 쥘리앵 프레비외

담당자님께.
며칠 전에 게재하신 귀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직업 스트레스와 육체적인 질병의 심화 그리고 무기력증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동자 두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업무 과로에 시달리며 세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회사의 무리한 업무 지시로 인해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과도한 업무, 노동자들의 신체 리듬을 고려하지 않은 작업 시간표, 회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교대 근무제나 변동 계약서와 같은 신개념 경영 정책, 불안정한 계약서, 실무적 차원의 이해 부족,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소극적인 경영 방침, 신체 유해 물질, 기업의 불투명한 미래... 이 모든 것이 바로 노동자를 불안하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귀사에서는 지금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의 주야간 시간에 근무할 수 있는 생산 기술직 노동자를 찾고 계십니다. 저는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제약 회사 안에서 번아웃되거나 과로사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개인적인 캠페인 차원에서, 저는 귀사에서 제안하는 일자리를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 2007년 7월 16일 쥘리앵 프레비외

“...귀사에서 제안하신 일자리를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귀사에서 제안하신 일자리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귀사에서 제안하신 일자리가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나 조건이 맞지 않은 관계로 거절할 수 밖에 없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부디 저를 귀하의 회사에 채용하지 말아주십시오.”책 ´입사거부서´ 표지/ 제공: 출판사 ´클´취업시장에서 좌절한 청년의 짓궂은 장난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저 장난이라기엔 양이 많고 꾸준했다. 무려 7년 동안 1천 통 넘는 입사거부서를 썼다.1천여 통의 편지 가운데 돌아온 답장은 고작 50여 통에 불과했다. 약 5퍼센트의 회신율이다. 사실 이정도의 회신율이라면 짓궂은 장난치고는 꽤나 많은 답장을 받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답장은 그가 보낸 메시지에 대한 응답이 아니었다. 편지에는 그가 서류심사에 탈락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통보 형식의 문구만이 적혀 있었을 뿐이다. 이는 서류심사에 탈락한 지원자들에게 회사 측에서 일괄적으로 보내는 전형적인 공문서 형식의 편지였다. … 심지어 어떤 회사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지원동기서와 함께 동봉했어야 할 이력서가 누락되었습니다. 이력서를 다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자신의 방 안에서 수십, 수백 장의 이력서를 쓰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전 세계의 청년들이 있다. 취업의 꿈을 안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들이다. 그들은 취업 전선의 바다 위에 또 하나의 유리병을 띄웠을 것이다.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희망과 함께 누군가가 이 유리병을 발견하고 자신을 구하러 와주길 바라며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바다 위를 가득 메운 수많은 유리병 편지를 보라. 그중 선택받을 수 있는 유리병의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프레비외는 채용공고 35건과 자신의 입사거부서 35통, 회사의 답장 25통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2007년에 책으로 나온 '입사거부서'는 프랑스 사회에서 뜨거운 관심을 일으켰고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 됐다. ‘입사거부서’는 최근 서울 문래예술공장에서 전시된 바 있다. 또한 미국 프로비던스의 RISD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오스트리아 빈의 시립미술관, 독일 베를린의 세계문화의 집에서도 전시되었다. 2014년엔 마르셀 뒤샹 예술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여러 미술학교와 대학교에서 초빙 교수로 일하고 있다.´입사거부서´ 전시회 모습/ 제공: 출판사 ´클´´입사거부서´ 전시회 모습/ 제공: 출판사 ´클´* 덧.
프랑스에서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있었던 이 의외의 행위(혹은 예술)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입사 7년 차가 된 기자 역시, 한창 취업준비생이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 따라 이것저것 하다 보니 떠밀리듯 대학 졸업을 목전에 둔 이십대 중반이 되었고, 수중엔 아무 것도 없는데도 내 삶이, 그리고 나를 지원했던 부모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잠못 이루었다. 취업이 유일한 목표처럼 느껴졌다. 그걸 해내지 못하면 패배자가 될 것 같았다. 수능을 치르던 때만 해도 그 순간이 눈 앞의 마지막 두 갈림길인 줄로만 알았는데, 더 험하고 더 가파른 갈림길이 남아 있었다. 아무도 곁에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고, 앞서 탈출한(=취업한) 친구들이 그렇게나 밉고 원망스러웠다.

시험을 치르며 만난 회사들(내 경우엔 모두 언론사들)은 하나같이 가혹했다. 왜 남들처럼 학점을 잘 얻지 못했느냐고, 왜 남들처럼 어학연수를 다녀오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며 물었다. 그때 그때 난 분명 진심을 다해 살아왔지만, 그들 입을 통해 듣는 결과로서 내 인생의 총합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촌스럽게도 '전 글 쓰는 게 좋습니다', '전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어 뉴스에 내고 싶어요'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거절당하는 기분은 언제나 씁쓸했다.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나, 첫 관문부터 떨어지나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7년 동안 '입사거부서'를 보냈다는 프랑스 청년이 종국엔 여러 미술학교와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지내고 있다는 설명 부분을 읽고는, '그래도 쓸데 없는 짓은 아니었네' 같은 쓴웃음을 지었을 정도로, 그조차도 어려운 청년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 입사거부서란 어쩌면, (작가가 동의할지 모르나) 너무나 입사하고 싶은 청년들의 염원을 담은 한 편의 절절한 연애편지이다. "나 너 싫어! 이젠 니가 뭐라고 한들 뒤돌아보지 않을거야!"라고 말은 하지만, 실은 '날 좀 잡아줘. 난 니가 필요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장 내가 한창 입사 시험을 치르던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나왔던 이야기이지만, 한 개인이 혼자 짊어지기엔 버겁고 버겁다. 그렇지 않아도 열받으니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위로하려면 하지 말랬다. 공허하게 들리겠지만, 청춘들이 마음으로 써내려가는 입사거부서가 더 두껍게 쌓이지 않도록, 사회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이 책의 옮긴이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망망대해를 떠돌던 유리병 편지 하나가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어느 프랑스 청년의 띄운 것으로 추정되는 그 유리병 속의 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 하나가 쓰여 있다.

What shall we do next?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신간 '입사거부서'
클. 정흥섭 옮김. 1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