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무대 위로 올라온 연쇄살인범' 로베르토 주코

국립극단이 올린 연극 ‘로베르토 쥬코(Roberto Zucco)’가 공연 중입니다. 범죄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 극은 시종일관 폭력과 광기, 고통과 절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장 랑베르 빌드(Jean Lambert-wild)와 로랑조 말라게라(Lorenzo Malaguerra), 각각 프랑스와 스위스 출신인 두 연출가는 섬뜩한 이야기를 상징적이고 기하학적인 무대 위에 풀어놓습니다.

극의 원작자는 프랑스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ès, 1948~1989)인데, 그는 1980년대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로베르토 주코(Roberto Succo,1962~1988)를 주인공으로 이 문제작을 썼습니다. 길지 않은 삶을 통해 중독과 자살 충동, 질병 등과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야 했던 콜테스는 에이즈 합병증으로 요절했고, ‘로베르토 쥬코’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습니다.

무대 위 콜테스의 극을 보고 있자면 실제 주코가 어떤 인물인지, 왜 이런 끔찍한 범죄들을 저질렀는지 누구라도 궁금해질 겁니다. 프랑스 언론인 파스칼 프로망(Pascale froment)은 1991년 ‘로베르토 주코’란 제목의 책을 통해 그의 실화를 다뤘고, 이 내용은 2010년 세드릭 칸(Cédric Kahn)이란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주코의 삶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이는 콜테스만은 아니었습니다.

로베르토 쥬코

로베르토 주코에 대해 알려진 건 대충 이렇습니다. 1962년 이탈리아 베니스 인근 메스트레란 곳에서 경찰관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코는 학창시절부터 갑자기 화를 내거나 다른 학생을 때리고 동물을 학대하는 등 병적 심리상태를 종종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길한 기운을 풍기던 소년의 광기는 그가 19살이 되던 해 부모를 살해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살인의 이유는 자동차 열쇠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그는 어머니를 수 차례 칼로 찌른 뒤 퇴근해 돌아온 아버지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습니다. 그리고는 시신을 라임즙을 탄 욕조 물에 담가두고 달아났습니다.

이튿날 고속도로에서 체포된 주코는 10년형을 선고 받고 정신질환자를 위한 감옥에 수감됩니다.어머니를 자유롭게 해주려 살해했으며 아버지는 아내의 죽음으로 고통 받지 않게 하려고 살해했다는 증언을 한 주코에게 정신과 의사는 심각한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5년 만에 주코는 병동을 탈출했고, 이후 신분을 위조해 기차를 타고 프랑스의 남부 항구 도시 뚤롱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 곳 빈민가에서 2년 동안 주코는 10대 소녀 2명을 성폭행한 뒤 살해하고 의사 1명과 그를 잡으려던 경찰 2명을 더 죽였습니다. 다수의 절도와 폭력, 납치사건도 일으켰습니다.

사건을 수사하던 프랑스 경찰은 범인이 로베르토 주코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탈리아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고, 주코는 1988년 고향집 근처에서 체포됩니다. 경찰이 정체를 묻자 “살인자!”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그를 한층 더 유명하게 만든 건 체포 36시간 만에 벌인 탈출 소동인데, 이 과정은 당시 뉴스를 통해 방송됐고 그 영상은 지금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감옥 지붕에 오른 주코는 속옷 차림으로 경찰과 기자들을 조롱하고 자신의 머리 위를 날아가는 헬기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합니다. 줄에 거꾸로 매달려 탈출을 시도하다 지붕 위로 떨어지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습니다.

이 광기 가득한 살인범은 결국 다시 수감됐지만, 수감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더 확실한 방법으로 감옥을 벗어납니다. 자신의 감방에서 자살을 한 겁니다.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가스를 주입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런 방식의 자살이 어떻게 감방에서 가능한 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26살의 연쇄살인범은 이렇게 최후를 맞습니다.

그는 대체 왜 이런 끔찍한 범죄들을 저질렀을까요? 로베르토 주코를 괴물로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정신질환을 앓았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광기의 원인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그 원인을 알 수 없기에 사람들은 더욱더 그를 두려워했고 그의 이야기를 파고 들었는지도 모르죠. 

콜테스 역시 주코를 사로잡은 광기의 원인에 대해 혹은 그가 저지른 범죄의 동기에 대해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코의 광기가 드러나는 공간, 즉 그가 속한 사회의 단면들을 무대 위에 그려내는데, 절묘한 것은 그 공간의 광기가 주코의 미친 머릿속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은 ‘로베르토 쥬코’를 소개하는 글에서 “이 작품은 출간 당시 부조리적인 구성, 순환적 구조, 동기의 부재와 같은 특징으로 인해 사실주의적인 작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3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불행의 만연’이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사실주의적 작품보다 더욱 실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콜테스의 극에서 오늘날 우리의 불행이 겹쳐 보인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 Roberto Zucco 혹은 Roberto Succo는 한글맞춤법상 ‘로베르토 주코’로 표기하는 게 적절하지만, 국립극단이 이번 연극 제목을 ‘로베르토 주코’로 하였기에 공연명에 한해서는 ‘로베르토 쥬코’로 적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