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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운흥사 종, 네즈 미술관으로 간 까닭은?

'산속 절집의 종(鐘)이란 게 다 그게 그거 아냐?'
나도 이렇게 생각했다. 경남 고성군 운흥사 범종을 취재하기 전까지는….

운흥사는 스님 세 분이 생활하는 작은 사찰이다. 하지만 역사는 깊어서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천년고찰이다. 재밌는 건 이렇게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운흥사엔 여느 사찰에 다 있는 범종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3년 전까지는…. 지금은 3년 전 새로 조성한 현대식 범종을 사용하고 있다.
운흥사 종
범종 소리는 사찰의 하루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대개 새벽과 저녁 두차례 타종하는데, 무릇 중생들이 번민의 끈을 끊고 지혜(반야)를 얻을 수 있도록 소망하는 구도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범종 없는 절'은 마치 '십자가 없는 교회' 같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운흥사 범종은 원래부터 없었을까? 아니다. 운흥사엔 조선 숙종 때 만든 동종이 있었다. 그것도 보통 종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주종장 김애립이라는 장인이 만든 작품이었다. 이게 일제강점기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안타깝게도 현재 운흥사에는 범종 반출에 대한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사고파는 물건도 아니고, 무게도 500근(300kg)이나 나간다는 절집 범종이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일본 도쿄 미나미아오야마. 오모테산도 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사설 미술관이 하나 있다. 네즈 미술관. 우리는 여기서 운흥사 범종을 만날 수 있었다. 운흥사 범종은 다른 전시물들과는 달리 미술관 후원으로 통하는 계단 밑 후미진 구석에서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월의 두께를 말해주는 파린 구리녹, 육중한 구리덩어리였지만 마치 '왜 이제 왔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성현 서령 와룡산 운흥사 대종' 높이 1m 25cm 종의 표면에는 이 종의 원래 주인이 누군지, 제대로 있어야 할 곳은 어딘지 명확하게 음각돼 있었다.
운흥사 종
용 두 마리를 이어서 만든 종뉴(종의 고리)는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이고, 산스크리트어로 '옴마니반메훔'을 새겨넣은 상단부는 선이 유난히 곱고 날씬했다. 몸통에 그려넣은 관음보살은 수려하고, 그 옆으로 '주상전하수만세'라는 전패를 새겼다. 하단부엔 거친 음각이긴 하지만 김애립의 이름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그 옆으로 시주자들의 이름이 일일이 열거돼 있다. 조선시대 종은 이렇게 소재지 소유주 제작연대 제작자 시주자까지 주종기를 남겼다.

김애립의 혼과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함께 간 운흥사 주지 경담 스님은 구석구석 휴대전화 불빛까지 비춰가며 종을 눈에 담았다.

"감정이 북받쳐 오릅니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일일이 한 자 한 자 종에 새겨진 문자 문구를 더 보려고요. 일본인 관계자가 없었다면 종을 붙들고 울고싶은 심정입니다."  

조상의 혼이 담긴 우리 문화재. 당장이라도 제자리를 찾아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법반출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무작정 반환요구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적절하다. 운흥사 측은 고심 끝에 문화재 복원의 한 수단인 정밀복제를 네즈 미술관 측에 요청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관계자 면담을 요청했고, 지난달 9일 면담이 성사됐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몇가지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흥사 범종은 적어도 1940년 네즈 미술관 설립 이전에 일본으로 반출됐다는 것, 반출 경위를 알 수 있는 네즈 미술관의 범종 입수기록이 해방되던 1945년 3월 미국의 도쿄 대공습 때 불에 타 더이상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 등이었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해 태평양전쟁으로 확전하면서 군수품 생산을 위해 금속 공출령을 내렸다. 취재도중 확인한 전북 김제 [금산사지(金山寺誌)]에는 '시국(時局)에 응(應)하여 범종 등을 공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운흥사 종
조직적인 문화재 반출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진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쿄와 오사카를 번걸아가며 열렸던 조선공예전람회는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라 사고팔 수 있는 조선 문화재 장터였다. 총독 미나미 지로는 내선일체라는 휘호까지 써주며 이 전람회를 공식 후원했다. 1934년부터 1941년까지 8년동안 7회에 걸쳐 국보 보물급 문화재 등 14,000여점이 이렇게 반출됐다. 입수한 조선공예전람회 도록에는 한눈에도 가치 있는 문화재들이 수두록하게 실려 있었다.   
 
운흥사 범종을 만든 김애립의 종은 현재 국내에 두 개가 전해지고 있다. 여수 흥국사와 고성 능가사 범종. 두 개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운흥사 종이 돌아올 수만 있다면 영락없이 보물로 지정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복제 요청을 한지 한 달이 지났다. 네즈 미술관 측은 아직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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