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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단식' 이정현 vs '버티기' 정세균…누가 이긴 걸까요?

[취재파일] '단식' 이정현 vs '버티기' 정세균…누가 이긴 걸까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7일만에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새누리당은 국감에 복귀했고 국회는 정상화됐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사퇴하지도, 사과나 유감표명도 하지 않은 채 예정대로 호주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개천절 연휴를 거치면서 여야가 조건없이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 결과입니다.

국회가 제 기능을 되찾고 여야가 국감에 전념한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번 따지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정현 대표는 집권 여당 대표로는 헌정사상 초유라는 기록을 세운 단식으로 뭘 얻고 뭘 잃었을까요? 역시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국회의장 형사고발’을 당하면서까지 ‘법대로’를 외치며 버틴 정세균 의장의 정치적 셈은 플러스일까요, 마이너스일까요?
 
먼저 이정현 대표의 7일 단식. 이 대표의 단식 각오는 비장했습니다. “정세균이 사퇴하든 이정현이 굶어 죽든 둘 중 하나입니다.” 너무나 단정적이고 퇴로 없는 외통수였기에 여당 내부에서조차 ‘출구가 없다’는 탄식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사퇴하거나 사과조차 하지 않았기에 단식 중단은 명분이 약했던 게 사실입니다.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병실로 방문한 직후 단식 중단을 선언한 것도 모양새가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중간에 “단식은 내가 할테니 의원들은 국감에 복귀하라”고 말했다가 당내 혼선을 빚은 과정도 전략적 실수로 꼽힙니다. 도대체 이정현 대표는 왜 단식을 했고, 뭘 얻었길래 단식을 중단했냐는 볼멘 목소리가 당내에서 터져 나온 이유입니다.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의 단식은 나름대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다고 봅니다. 우선 이정현 대표는 대통령 지키기에 성공했습니다. 당초 야당이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내고 정세균 의장이 이를 처리하면서 정국은 ‘대통령 대 야당’ 프레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정현 대표가 느닷없이 단식으로 드러누우면서 구도는 순식간에 ‘이정현 대 야당’, ‘이정현 대 정세균’으로 바뀌었습니다. 단식과 국감 보이콧이 진행된 지난 7일 동안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해임안 거부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해임안 거부가 옳냐 그르냐 하는 논란은 사라졌고, 이정현 대표의 단식과 정세균 의장의 버티기가 논란의 핵심이 돼 버렸습니다.

이정현 대표는 당초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야당의 대통령 흔들기’로 규정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단식을 한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명분으로 단식을 ‘독단적’으로 선택했습니다.(새누리당 내부나 청와대에서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누구와도 상의한 바 없다는 사실은 여러 경로로 확인됐습니다) 단식과 국감 보이콧으로 우병우 민정수석과 최순실 미르재단 의혹이 한동안 묻혀 넘어간 것은 자연스레 따라온 부수 효과였습니다. 결국 지난 일주일 동안 야당이 얻은 것 보다는 여당이 얻은 것이 더 많다는 정치적 셈법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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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의장의 이해득실은 어떨까요? 정 의장은 시종 ‘법대로’를 주장했습니다.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헌법이나 국회법을 위반한 것이 없고, 국회의장이라고 정치적 색깔을 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버텼습니다. 이정현 대표가 단식에 나서도 눈도 꿈쩍 안 하고 법대로 하자고 버티는 강단도 과시했습니다.

여소야대 구도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국회의장의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역대 어느 국회의장이 이처럼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한 적이 있을까요? 정 의장의 별명은 ‘미스터 스마일’인데, 그 미소 뒤에 뚝심과 배짱, 그리고 정치적 승부사 기질도 과시했으니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입니다. 더구나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중단하면서 조건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정세균 의장은 사퇴할 필요도, 사과나 유감표명조차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따져보면 꼭 이겼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우선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켰다는 이미지가 부담입니다. 야당 출신 의장이 꼭 기계적 중립을 유지하진 않겠다는 의지는 과시했는데, 이른바 ‘정세균 방지법’, 즉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하는 법안이 발의되도록 빌미를 준 부담이 커졌습니다.

개회사에 이어 이번 해임건의안 처리까지 두 차례에 걸쳐 편파성 시비로 곤욕을 치른 정 의장으로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더 결정적’인 순간에 직권상정이란 카드를 쓰기가 매우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어차피 본 싸움은 내년 대선이고 지금은 전초전격인 기싸움일 뿐인데, 초반에 너무 힘을 썼다는 현실적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조그마한 편파 시비에도 여당이 국회의장을 상대로 더욱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결국 이정현 대표는 단식이라는 극한 방식으로 정세균 의장을 안고 진흙탕으로 굴러 떨어졌고, 붙잡혀 넘어진 정 의장도 몸에 진흙이 묻는 걸 피하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이정현과 정세균. 두 정치인의 싸움은 일단락됐습니다. 일합(개회사 파동)과 이합(해임안 처리)을 나누고 두 사람은 병실에서 악수를 나누고 덕담을 나눴다는 후문입니다. 그리고 국회는 정상화됐습니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입니다. 국감 내내 현안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질 것이고 연말이 다가오면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진짜 힘겨루기가 나올 겁니다.

예산에 영향을 미칠 법안, 그러니까 법인세 인상안 같은 법안은 국회의장이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해 직권상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내년 대선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법안입니다. 여당으로선 정세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죽기살기로’ 막을 겁니다. 정세균 의장 역시 예산부수법안 지정이 진정한 국회의장 존재감을 드러낼 대상입니다. 이런 국회 시간표와 곧 나올 현안을 감안하면, 이번에 벌어진 단식 파동은 말 그대로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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