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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꼬리 잘라와야 수당 준다'…지자체 야생동물 퇴치 엽기행정

'귀·꼬리 잘라와야 수당 준다'…지자체 야생동물 퇴치 엽기행정
충북 단양군은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멧돼지와 고라니를 퇴치하기 위해 1마리당 2만 원의 포획수당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허가된 엽사(사냥꾼)에게 주는 일종의 수고비입니다.

군은 최근까지 3만 원씩 수당을 줬습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예상보다 많은 1천267마리의 멧돼지·고라니가 붙잡히는 바람에 3천900만 원의 예산이 바닥을 드러내자 부랴부랴 금액을 낮췄습니다.

수당 지급 방식도 깐깐해졌습니다.

종전에는 식별 숫자가 표시된 포획 동물의 사진을 제출받았지만, 부정 청구를 막는다면서 꼬리를 잘라오게 하고 있습니다.

군 관계자는 "사체 훼손이 흉측하다는 여론이 있지만, 부정 청구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옥천군도 멧돼지는 꼬리와 귀를 자르고, 고라니는 사체를 통째로 가져와야만 3만 원씩 수당을 주고 있습니다.

군 관계자는 "덩치가 큰 멧돼지는 운반 자체가 어렵고, 자체 소비되는 경우가 많아 사체 일부만 받는다"며 "지난해까지는 귀를 받았지만, 일부에서 겨울철 수렵한 멧돼지 귀를 수당 청구용으로 보관한다는 얘기가 들려 올해부터 꼬리까지 추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올해 멧돼지 164마리와 고라니 1천647마리가 붙잡혔습니다.

멧돼지 귀 328개와 그의 절반에 해당하는 꼬리가 수당 청구용으로 군청에 제출됐다는 얘기입니다.

음성군은 고라니 꼬리를 제출하면 2만∼3만 원을 주고, 비둘기·까치 등 조류는 두 다리를 가져왔을 때 5천 원의 수당을 줍니다.

군은 매월 1차례씩 날짜를 정해 포획 수당 신청을 받는데, 그때마다 읍·면사무소 등에서는 잘린 동물 사체를 풀어놓고 수를 헤아리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한 여성 공무원은 "맡은 업무라서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지만, 잘린 동물 사체를 확인하는 일이 끔찍할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동물 사체 일부를 제출하는 수당 청구 방식에 대해 엽사들마저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옥천군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으로 활동 중인 엽사 A 씨는 "아무리 죽은 동물이라지만, 귀와 꼬리를 자를 때면 두 번 살생하는 기분이 든다"며 "혐오스러운 수당지급 방식은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동료 엽사 B 씨도 "산에서 귀와 꼬리가 잘린 채 버려진 멧돼지 사체를 본 적도 있다"며 "수당보다는 엽사들에게 활동비를 지급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당국은 유해 야생동물 퇴치효과를 높이는 데는 수당이 최선이라고 항변합니다.

멧돼지와 고라니 때문에 고통받는 농민 신고가 매일 수 십 건씩 들어오는 상황이다 보니 한 마리라도 더 신속하게 붙잡아 피해를 줄이는 게 급하다는 설명입니다.

옥천군 관계자는 "수당 대신 활동비를 주는 지자체의 포획 실적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행정기관 입장에서도 내키지는 않지만 퇴치성과를 높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동물보호단체도 "동물을 학대하는 엽기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동물자유연대 김영환 선임 간사는 "동물의 사체를 훼손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동물복지를 외면한 반생태적 행정으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유해 야생동물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확한 서식지와 밀도 조사가 선행된 뒤 인간과 공생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며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고민이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야생생물관리협회 김철훈 부회장도 "포획한 유해 야생동물은 지자체가 사체 전부를 수매해 매립하는 게 맞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희소성 없는 고라니 사체는 자연에 그대로 방치돼 또 다른 환경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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