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콩코드 지하철역 근처 벽면의 돌판에 새겨진 글귀다. 이곳에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마들렌, 장끌로드 같은 평범한 프랑스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석판 열댓 개가 늘어서 있다.
사회는 추구하는 가치가 담긴 죽음을 일상 속에 전시하고, 개인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얻는다. 그래서일까. 자기중심적이고 자유분방한 프랑스인들이지만, 결정적 순간에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데 소극적이지 않다고 한다. 프랑스 사회가 지탱되는 근간에는 선순환하는 기억의 힘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안치범 님 같은 분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침몰하는 배에서 끝까지 학생들을 챙겼던 고 박지영, 정현선, 김기웅 씨, 해병대 캠프에서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고 대신 목숨을 잃은 고 이준형 씨, 업무 중 순직하는 소방관, 군·경은 물론이고, 탄탄한 미래 대신 내부고발의 가시밭길을 선택한 공익제보자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의로운 가치를 지키며 스러져간 무수한 보통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숨쉬고 호흡하는 일상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살아 숨쉬게 할 수는 없을까. 작정하고 찾아가야 하는 도심 외곽의 추모 공원이나 기념비도 좋지만 출퇴근길에, 외출하는 길에, 가족끼리 산책을 나가는 길에 그들과 그들이 체현해낸 가치를 떠올리고, 기리고, 얘기하고, 꽃을 놓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도심 곳곳에 마련돼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서울 시청역에 곧 마련된다는 <의인 명예의 전당> 같은 장소가 수백, 수천 곳 더 생겨야 하지 않을까. 각자도생과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말춤 조형물이나 전직 대통령 동상 따위 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의로운 희생을 기리는 일상 속의 작은 명판들이 절실한 것은 아닐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와 그 가치를 실천한 이들에 대한 기억들 말이다.
"이런 게 큰 뉴스가 안 되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선 끈질긴 기억과 이를 위한 사회적 의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고인과 유족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자, 남은 자들의 의무일 것이다.
"2016년 9월 20일, 성우를 꿈꾸던 義人 안치범, 남을 돕고 서울에서 죽다."
고 안치범님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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