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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에서 이웃들 구하고 떠난 '서교동 화재 의인'

유족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자랑스럽다"…구청과 협의해 의사자 신청키로

"처음엔 아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어요. 불이 난 데를 왜 다시 들어갔냐고…. 그런데 임종 때 아들에게 내가 그랬어요. 아들아 잘했다, 엄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9호실에 차려진 '서교동 화재 의인' 안치범(28)씨의 빈소는 다소 썰렁했다.

간간이 찾아오는 조문객을 맞이하던 안광명(54)·정혜경(59)씨 부부가 영정 사진을 바라보면서 기자의 손을 꼭 잡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충혈된 이들의 눈은 아들 이야기를 하니 금세 촉촉해졌다.

성우를 꿈꾸던 영정 사진 속 아들 안씨는 보조개를 드러낸 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안씨는 9일 자신이 살던 마포구 서교동의 한 원룸 건물에서 불이 나자 먼저 대피해 신고를 한 뒤 다시 건물에 들어가 초인종을 누르고 소리를 질러 이웃들을 대피시켰다.

이렇게 이웃들을 화마에서 구해낸 안씨 자신은 정작 연기에 질식, 병원으로 옮겨져 사경을 헤매다 10여 일만인 20일 새벽 끝내 숨을 거뒀다.

안씨는 평소 집에서 과묵하고 말이 없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안씨는 성우 시험 준비에 매진하기 위해 화재 발생 불과 두 달 전 집에서 멀지 않은 같은 마포구에 원룸을 구해 따로 지내왔다.

그는 집안에서는 말수가 적었지만, 바깥에 나가서는 장애인 봉사활동을 하는 등 활발히 선행을 해왔다고 한다.

정씨는 "아들이 워낙 말이 없어 잘 몰랐는데 병원에 찾아온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같이 봉사활동을 했다고 말해줘서 비로소 알았다"고 했다.

정씨는 불이 나기 며칠 전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들에게 "위급한 상황엔 너도 빨리 대피하라"고 말하자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정색하던 안씨가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씨의 매형(34)도 "처음에는 솔직히 빨리 화재 신고를 한 것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다시 건물에 들어간 처남이 원망스러웠다"면서 "너무 안타깝고 슬프지만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떠난 처남이 지금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씨는 "많은 시민분이 함께 슬퍼해 줘 힘이 난다. 아들이 이웃들을 살리고 떠났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면서 아들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을 꼭 쥐고는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안씨 가족은 이웃들을 살리고 떠난 고인을 기려 당초 장기기증을 하려고 했지만, 안씨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안씨의 발인은 22일 오전 6시30분이다.

안씨 가족은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마포구청과 협의해 의사자 신청을 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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