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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7년 보존수와 110V…지진은 일본을 어떻게 바꿔놓았나?

[월드리포트] 7년 보존수와 110V…지진은 일본을 어떻게 바꿔놓았나?
솔직히 지진은 일본만의 재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M9.0 최대진도7/한국 기준 진도10이상) 발생 사흘 뒤 피해 지역에 들어갔습니다. 2주간의 취재기간동안 일본 전역에서 진도5 이상(한국 진도 7~8) 여진이 11번 발생했습니다. 올 4월 구마모토 지진(M7.3 최대진도 6강/한국 진도9) 때도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진도5 이상의 여진이 17번 일어났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진도 분류단계가 다릅니다. 차이는 아래와 같습니다.(위 일본 기상청, 아래 한국 미국의 메르칼리 분류)
한일 진도단계 비교표
사람들은 지진을 많이 경험하면 익숙해진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로 지진 공포증이 새로 생겼습니다. 특히 지진으로 10초 안팎 흔들릴 때 주변에서 나는 '찌그덕 찌그덕' 소리가 무섭습니다.  [월드리포트] 구마모토 지진 취재기 ① : 8일간 사진 일기로 보는 재해 취재 

지난 12일 발생한 경주 지진은 M5.8에 최대진도5(본진 기준/일본 진도3)을 기록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경주급 지진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올해 들어서만 일본 기준 진도3 이상 지진이 99회 발생했습니다. 분포를 보면 아래 그림처럼 전국에서 발생했습니다.
올해 일본 진도3 이상 지진 분포
지진은 일본 사회 곳곳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분야입니다. 일단 오래된 집은 99% 집값이 쌉니다. 우리나라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집값이 올라가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일부 집중개발 지역 제외) 오래된 집은 겉으론 멀쩡해도 수년간 크고 작은 지진을 겪은만큼 이른바 ' 유레쓰가레'(흔들림 피로)가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건축기본법에 따라 오래된 집들도 지진에 버티는 내진 보강이 의무화돼 있습니다. 그래도, 신경을 쓰는 겁니다. 월세정보업체 웹사이트에서 집을 검색할 때는 
'건축연한', '목조', '철골' 등을 주요 검색조건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일본 월세 사이트 검색조건
신규 아파트나 건물들의 경우 얼마나 좋은 내진 설계를 갖췄는지가 중요합니다. 일본의 의무적인 내진 설계 기준은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중지진(진도5 이하) 때는 '건물이 흔들린 뒤 원상태로 돌아오면서 경미한 갈라짐만 남는다.' 대지진(진도6,7) 때는 '건물이 원상태로 완전히 돌아오지 않더라도 붕괴되지 않는다' 입니다. 진도8 이상은 불가항력으로 보는 듯합니다.
일본 건축물 내진기준
일본의 한 은행원 분과 식사를 하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일본 부유층들은 집을 살 때 예전 도쿄 고지도를 참고한다. 고지도를 통해 예전부터 지반이 단단한 지역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 지역 부동산에 투자를 한다. 도쿄도는 수세기에 걸쳐 인구가 급증하면서 그만큼 땅을 넓혀왔다. 해안지대와 저수지, 습지 등을 매립하는 방식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오다이바'이다. 하지만, 지진이 자주 일어나면 결국 땅 아래가 젤리처럼 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지도 속에서 원래부터 단단한 지역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 일본 부동산 컨설턴트는 도쿄 고지도 위에 주요 고급 맨션들의 위치를 표시해두기도 했습니다.(아래 사진)
http://blogs.yahoo.co.jp/nash9bridges/33638930.html
지진 관련 필수품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 가정의 빨래걸이만큼이나 일본 가정에 많은 것이 바로 '씃빠리봉'(틈새고정봉)입니다. 책장이 넘어지지 않도록 천장과 책장 사이에 설치합니다.
이밖에도 가구가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수많은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시가현 오츠시 홈페이지에 올라온 '가구 넘어짐 방지대책의 사례'라는 그림입니다. 2004년 니이가타현 대지진(M6.8) 당시 부상자의 40%가 넘어진 가구 때문에 다쳤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재난 시 비상용품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아래는 냉장고에 넣지 않고도 상온에서 7년간 보존할 수 있는 물입니다. 온라인 쇼핑몰인 일본 아마존에서 500ml 24통을 3200엔(3만5000원)에 파는군요. 품질 보증서도 있습니다. 이런 일명 '보존수'가 한두 종류가 아닙니다.
7년 보존수
보존수 성분시험 성적표
일본에서 하이브리드(hybrid) 자동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lugin-hybrid) 자동차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대지진과 관련이 있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차에서 생활을 했는데요. 당시 주유소가 문을 닫으면서 기름이 떨어진 차량에서 고생을 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후 기름과 전기배터리를 함께 쓰는 고연비 하이브리드 차량들이 큰 인기를 끌었죠. 최근엔 주변 콘센트에 전기플러그를 꽂아 충전할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차량 충전배터리의 전력을 전자렌지, 전기밥솥 등에 연결해 쓸 수 있습니다.
플러그 하이브리드 전력을 가전에 연결 (출처: 토요타 Gazoo)
가전제품 양판점에서는 자체 충전 라디오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손잡이를 빙빙 돌리면 충전이 됩니다. 아래 제품은 대기업 소니가 직접 만들었네요. 앞쪽에 불을 비추는 라이트도 달려 있습니다. 일본 아마존에서 7920엔(8만7000원).
소니의 비상용 라디오
아래 사진은 제가 사는 도쿄 미나토구 일대 전봇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전선을 지하에 매설하는 지중화 작업이 한창이죠.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전봇대 천지입니다.
도쿄 거리의 전봇대 행렬
지진관련 점검 복구 등에 용이
지진 발생 시 단전이나 누전 부분을 쉽게 찾아낼 수 있고, 복구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들기 때문입니다. 수시로 일어나는 작은 지진 때 점검하기도 쉽습니다. 이밖에, 일본은 220V를 쓰는 우리나라와 달리 110V를 쓰고 있습니다.

110V는 송배전 시 전력 손실이 많지만, 220V보다 사고 때 덜 위험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처럼 110V를 썼지만,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220V로의 승압을 결정했죠. 일본은 일본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각자의 사정에 맞게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일본 사회의 지진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번 경주 지진에 놀라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처럼 지진 공포증이 생긴 분도 계시겠죠. 하지만, 무서워만 할 것이 아니라 조금씩 지진 대비에 나서야 합니다. 준비한 만큼 안전하고, 걱정도 줄어듭니다. 당장 일본만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지진을 계기로 정부도, 시민도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주변 시스템 전반을 한 번 더 체크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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