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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메모리' vs '비메모리'…불붙은 반도체 전쟁

[취재파일] '메모리' vs '비메모리'…불붙은 반도체 전쟁
‘반도체 최강국’, 우리나라 반도체 사업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제로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임원들은 스스로 ‘세계 넘버 원!’이라고 말하는 데 거침이 없습니다. 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건 실적이 입증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DS)는 연간 15조 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올리며, 세계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여기에 ‘신흥 강자’로 불리는 SK하이닉스까지 더하면,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강국’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각론으로 들여가 보면, 이런 대단한 성과는 절반만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는 크게 정보 저장을 담당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연산을 맡는 ‘비메모리 반도체’로 나뉘는데, 이 중 우리나라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에서만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선 세계 시장 점유율 50%를 넘기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시장 점유율이 5%에도 못 미치며 고전하고 있는 겁니다.
 
● 반도체 사업 대세는 ‘비메모리 반도체’

하지만, 안타깝게도 반도체 시장의 대세는 ‘비메모리 반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와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반도체 시장규모는 3,473억 달러, 우리 돈으로 390조 8천여억 원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3%인 807억 달러, 90조 원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300조 원가량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입니다. 결국, 8대 2 비율로 ‘비메모리’ 시장이 ‘메모리 시장’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들은 왜 유독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는 힘을 쓰지 못할까요? 빠른 속도로 ‘세계 1위’로 올라선 메모리 반도체와는 무엇이 다를까요? 전문가들은 사업 초기에 투자 적기를 놓친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합니다.

제조공정이 정형화돼 있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비메모리 반도체’는 활용 분야별로 특성도 다 제각각입니다. 이미지, 센서, 마이크로컴포넌트 등 비메모리 반도체는 활용 분야가 다양한데, 그에 따라 생산과 제조공정도 모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들은 ‘정형화’된 반도체 공정을 관리하는 데 특별한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당시,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다양한 ‘비메모리 반도체’ 대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일종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쓴 겁니다.

당시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실제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큰 성과를 거뒀지만, 어쩔 수 없이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투자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게티 이미지/이매진스)
● 빠르게 앞서 간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들

우리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하는 동안, 인텔과 퀄컴 등 선진국 반도체 업체들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견고한 성벽을 쌓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기술이 발전하는 반도체 사업 특성상, 십여 년 늦게 출발해선 그 격차를 따라잡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비메모리 반도체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크로컴포넌트 반도체 시장은 인텔의 아성이 매우 높고 견고합니다. 우리 기업들 ‘D램 반도체’의 압도적 점유율 덕분에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선진국 업체들에 밀려 ‘비메모리 부문’은 엄청난 시장이라 걸 알면서도 쉽사리 공략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비메모리 반도체’

앞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비메모리 반도체’는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됩니다. 컴퓨터의 두뇌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를 구성하는 마이크로컴포넌트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아날로그 반도체, 이미지센서 등 여러 형태의 비메모리가 반도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역마다 ‘강자’들도 각기 나뉘어 있습니다. 가령, 컴퓨터 CPU는 인텔이 최강자이고, 모바일기기 AP 칩은 퀄컴이 가장 앞서 가는 식입니다.
 
이처럼 인텔이나 퀄컴 등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독주할 수 있었던 건 이 회사들이 만든 ‘비메모리 반도체’가 시장에서 ‘표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인텔은 CPU를 만들며 컴퓨터 시스템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컴퓨터나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부속물이나 메모리 반도체, 센서 반도체 등을 ‘인텔 CPU’에 연동해 작동하게 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인텔을 대신해 CPU 시장에 진출하려면, 수많은 컴퓨터 부속물들의 표준을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엄청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이동통신 칩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퀄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동통신의 표준과 시스템을 주관하며 ‘표준 역할’ 하고 있기 때문에 퀄컴을 대신해 통신 칩 시장에 뛰어들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겁니다.

● 본격화하는 ‘반도체 전쟁’

이처럼 삼성전자와 인텔, 퀄컴 등 각 기업은 각각 메모리 혹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 우물을 깊이 파며 자신들의 확고한 입지를 구축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이런 ‘한 우물 파기’ 현상이 깨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인텔은 ‘메모리 시장’에 뛰어들며 서로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나선 겁니다.
 
‘비메모리 반도체 최강자’ 인텔은 ‘3D 크로스포인트’라는 무기를 앞세워 ‘메모리 반도체’ 재진출을 선언했습니다. ‘3D 크로스포인트’는 기존 D램보다 10배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고, 낸드플래시에 비해서는 1,000배의 속도와 내구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중국 다롄 공장에 6조 원을 투자해 새로운 메모리 생산설비로 구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맞서 ‘메모리 반도체 절대 고수’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연구개발센터를 2배 확장하고, 비메모리 반도체 관련 전문 인력 채용에 나서며 칼을 갈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갤럭시의 판매 호조 속에 공급 중인 자체 모바일 AP 부문도 사업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삼성전자와 인텔이 서로의 영역을 벗어나 정면 승부를 벌이게 되는 건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섭니다.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 미래 먹을거리 핵심이 모두 ‘반도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반도체가 미래산업의 ‘핵심’이 된 이상, 메모리 혹은 비메모리 반도체 하나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판단한 겁니다. 여기에 중국도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국가 핵심사업으로 지정하고, 매년 수십조 원을 투자하며 무서운 속도로 따라오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무림의 최고수들이 ‘진검승부’를 펼치게 된 겁니다.
 
● "정상은 두 명을 취하지 않는다."

고대 라틴어엔 “Summa sedes non capit duos(정상은 두 명을 취하지 않는다.)”란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 반도체 산업이 그렇습니다. 말 그대로, 두 명이 정상에 함께 오를 수 없는 구조로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미래 먹을거리를 두고 펼쳐지는 치열한 전쟁에서, 마지막에 웃는 이는 누구일까요? 우리 기업들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 취재과정에서 박재근 한양대 나노반도체공학과 교수, 이정 유진투자증권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 삼성전자·SK하이닉스 부문 임직원들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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