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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감정은폐' 유니폼을 입고 "웃어라, 노동자여!"

얼마 전 머리를 하러 들른 미용실에서 온 몸이 움찔움찔하는, 말 그대로 '좌불안석'의 경험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바로 옆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손님)와, 그녀 뒤에 송장처럼 굳은 채 서 있는 직원의 대화 때문이었다.

"아니,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니고. 내가 말한 거랑 느낌이 다른데."
"약간 끝을 말아달라고 하셔서."
"아니, 말아달라고 한 건 맞는데 내가 말한 건 좀 더 두껍게 한 두 컬만 들어가게 해달란 거였잖아. 다른 거 본거야?"
"네, 맞는데요. 잡지처럼 이런 컬은 드라이를 해야만 나오는 거고요. 펌만으로는 안돼요. 지금 이 정도로 하시면, 아침마다 드라이로 약간 안으로 말아준다는 느낌으로."
"아니라니까, 내 친구는 펌만 했는데도 되던데. 무슨 약이 새로 나왔다고, 그걸 바르면 된대. 뭐야, 응? 내 말을 못 알아먹은 거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두 여성 -손님과 직원-의 대화는 한 쪽의 일방적 존대, 그리고 하대, '완벽한' 비대칭으로 이뤄졌다. 손님은 애써 참는 것처럼, 직원을 토닥여 설득하려는 것처럼 말끝을 길게 늘였는데, 듣기엔 그런 말투가 직원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직원은 궁지에 몰리면서도 제3의 안, 또다른 제3의 안을 떠올려 협상가처럼 가까스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이 만만치 않았다. 협상의 과정은 지겹도록 길었고, 실패로 끝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손님, 그러시면 제가 점장님께 말씀드릴테니 오늘은 계산하지 마시고. 그냥 돌아가시고."
"뭐라고? 누가 보면 진상 손님인 줄 알겠네. 내가 돈 얼마 가지고 이래? 아까 처음엔 분명히 된다고 했잖아. 처음부터 안 된다고 했으면 나도 이러지 않았지. 본인 잘못을 지금 나한테 뒤집어 씌우는 거잖아. 내가 지금 진상처럼 보이잖아."


# Artist: 주황 Joo Hwang  작품명: <의상을 입어라,2016>
사진, 라이트박스, 각 190x65cm
- 전시중: 11월 20일까지,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서울시립미술관


< 의상을 입어라>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 노동자들이 (학생,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사무원, 마트 직원, 자영업자, 주부, 디자이너, 연극인) 불특정 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오페라에서처럼 관객/소비자/자본가를 대면하는 상황을 정형화된 작업장을 배경으로 재현한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베리스모 오페라'의 한 장면을 연출하듯 상호간의 시선의 교류가 사라진 관계 속에서 전면화된 노동의 왜곡과 소외를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드러냈다.
주황 <의상을 입어라><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 2016 / 제공:서울시립미술관" id="i200978664"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60913/200978664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19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베리스모 오페라는 사실주의 문학운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노동자나 농민의 가난하고 고된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 대표작인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의 테마곡 <의상을 입어라>는 유랑극단 배우 카니오가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 직후에 슬픔과 격정에 휩싸여 부르는 아리아다. "의상을 입고, 분칠을 해라. 관객은 돈을 내고 왔으니 웃고 싶어한다. [...] 웃어라, 광대여, 네 깨진 사랑을  향해! 네 마음을 해치는 슬픔을 향해!"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관객들 앞에서 희극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처럼 다양한 노동 형태의 '의상을 입고' 소비자/자본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자신을 통제하는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현실이 되었다. 지난 십여년 간 진행된 한국의 신자유주의화에 따른 소득분배의 불평등과 빈부차의 심화는 소비주체를 향한 서비스산업의 강화를 야기했고 이에 따라 모든 형태의 노동이 본연의 역할을 넘어 잠재적 감정 노동화 되는 현상이 진행된 것이다. 일반 직장에서도 권력관계로 인한 감정노동은 직장인의 일상이 되었고 감정은 더 이상 개인의 특성이 아닌 일종의 상품이 되었다.

주황 <의상을 입어라1><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 2016/ 제공:서울시립미술관" id="i200978665"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60913/200978665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주황 <의상을 입어라3><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 2016/ 제공:서울시립미술관" id="i200978666"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60913/200978666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 위의 글과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각 저작권자에 있으며, 저작권자와 서울시립미술관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폭력은 몇 명을 거치든 닳는 일 없고, 감정의 농도는 100%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그리고 정말 비극적이게도, 거짓말처럼, 방금까지 감정노동으로 힘들어했던 ‘노동자 乙’이 급격히 甲이 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甲이 된 乙은 가해자로서 벌인 사건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乙이었던 순간만을 상세하고 느리게, 극적으로, 꼼꼼히 기억한다.

감정노동은 서비스업 종사자가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만을 뜻하지 않는다. 조직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분노는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데 사람들은 귀신처럼 한 번이라도 물줄기가 흘렀던 흔적들을 찾아내 안심하며 그 곳으로만 (분노를) 흘려보낸다. 물길은 다른 물길이 나기 전까진 오로지 견디며 깊게 패일 뿐이다. 의무처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리하여 감정 은폐에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함께하기에 좋은 동료,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유능한 사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받는 월급의 절반쯤은, 실은 감정노동의 대가다. 그 퍼센티지는 갈수록 높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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