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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급식 우유도 지역 차별…'시골 우유'가 비싼 이유는?

[취재파일] 급식 우유도 지역 차별…'시골 우유'가 비싼 이유는?
어렸을 적 기억을 돌이켜 보면 우유는 정기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유일한 영양 공급원이었다. 1970년대 우리집을 포함한 대부분은 중산층이라 해도 먹고 싶다고 마음대로 고기를 먹을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먹거리가 여유롭지 못 했던 시절, 어머님은 다달이 생활비를 쪼개 삼형제에게 우유를 먹였다.

매일 아침 대문 앞으로 배달되던 우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과 같은 특수 종이 재질의 팩 우유가 아니라 당시에는 원통형의 유리병에 우유가 담겨 있었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병을 따기 힘들게 만들어 놓았는지, 병뚜껑 안쪽에 두꺼운 종이 마개가 있어서 손가락으로 잘 제거해야 했다.

몇 번을 휘휘 돌려서 잘 따내면 '퐁' 하고 경쾌한 소리가 들리는 날도 있었다. 그나마 살림살이가 중간 이상은 되어야 맛 볼 수 있었던 배달 우유. 초등학교까지 무상 급식이 이뤄지는 요즘 학교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유 급식 먹는 아이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급식 우유를 놓고 올해 곳곳에서 사단이 났다. 우유 공급이 끊긴 학교가 있는가 하면 우윳값 몇 십원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진 곳도 있다. 발단이 된 건 최저가 입찰제다. 교육당국은 우유업체들의 담합이나 학교가 개입된 뒷거래를 막기 위해 올해부터 최저가 입찰제를 도입했다.

취지는 좋았다. 당장 학교에 공급하는 우윳값이 크게 내려갔다. 수의계약을 못 하게 하니 부정이 끼어들 소지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시장의 질서가 채 잡히기도 전에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학교에 우유를 공급하는 판매상들이 우선 공급처부터 확보할 심산으로 저가 입찰 경쟁에 뛰어들었다.

낙동업계가 주장하는 200밀리리터 우유 한 통의 단가는 360원 선이다. 그런데 입찰에 응한 판매업자들은 손해를 무릅쓰고 가격을 낮췄다. 전교생이 1천명이 넘는 도시 학교들에는 190원, 150원에 우유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최저가 낙찰을 받은 업체들은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를수록 큰 손해를 보게 됐다. 직원을 줄이는 등 갖은 애를 써 봐도 도저히 생존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4월 A업체가 서울과 경기 지역 60여개 학교 우유 급식을 포기했다. 낙찰가 200원으로 근근이 버티다가 나가 떨어진 것이다. 다행히 교육청이 발빠르게 다른 우유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어 공급 중단 사태를 막았으나 재입찰의 번거로움은 감수해야 했다.
또 다른 문제가 지역별 가격 격차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시장의 원리가 작동했다. 배달이 쉽고 학생수가 많은 학교에는 저가 응찰자가 몰리고, 전교생 몇명 안되는 시골학교에는 우유를 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우유 몇 통 팔려고 운송비에 인건비를 부담하려니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경기도 용인 시내에 있는 A초등학교는 전교생이 800명을 넘어 190원에 공급업자를 찾은 반면, 용인에서도 농촌 지역에 있는 B초등학교는 430원에 겨우 우유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B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70명이었다. 같은 서울이라도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동작구 반경 1킬로미터 이내 가까이 위치한 두 초등학교는 학생 수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전교생이 1800명에 육박하는 C초등학교는 원가의 절반도 안되는 150원에 공급자와 계약했다. 그러나 500여 명이 다니는 D학교는 낙찰가 400원을 내야 했다. 낙농협회가 전국 급식우유의 가격을 파악해 봤더니 최저가 또는 제한적 최저가 입찰제를 통해 우유를 구매하는 서울의 경우 평균 우윳값이 295원이었고, 소액 수의계약을 하는 군 단위 학교들은 400~430원 가량 우윳값을 부담하고 있었다.
교육청은 무상 급식인 초등학교에 우윳값으로 한 통당 430원을 지원하고 있다. 학교가 이 가격보다 낮은 값으로 공급자를 찾는다고 해서 남은 돈을 반납하는 게 아니다. 학교 재량으로 그 돈을 쓸 수 있다. 따라서 우유를 싸게 살 수 있는 도시학교들은 그만큼 급식의 질을 개선할 여지가 생긴다. 무상 급식이 아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우윳값이 비싼 만큼 학부모에게 직접 부담이 간다.

이런 학교 현장의 혼란에 비해 교육당국의 태도는 느긋했다. 급식 업무는 대개 교육청 체육건강과 급식기획팀이 담당한다. 교육청은 올해 빚어진 시행착오는 곧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우유업체들이 출혈경쟁의 쓴 맛을 봤으니 앞으로는 알아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입찰에 응할 거란 얘기다.

낙농업자들도 스스로 과당경쟁 벌이는 현실을 인정하며 누군가 개입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최저가 입찰제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정밀한 분석과 논의과정이 필요하겠지만 공공적 기능으로서의 학교 급식이 파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 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

소외된 지역의 작은 학교들을 시,군 단위로 묶어 입찰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의 방식이 대안이 될 것이다. 그 옛날 내가 마셨던 고소한 배달 우유처럼 급식 우유가 학교에 안정적으로 공급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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