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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도 핵무장하자"…공허한 주장의 허와 실

[취재파일] "우리도 핵무장하자"…공허한 주장의 허와 실
우리도 핵무장을 하자네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보통 사람들이 아니고, 집권 여당 전 현직 대표, 원내대표, 국회 전 국방위원장의 주장입니다. 표현은 ‘핵무장 공론화’였지만 내용은 “북한 핵에 맞서 우리도 핵무장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핵무기라는 것이 그 어떤 재래식 무기로는 대응이 안되니 핵에는 핵 밖에 없다는 게 꼭 틀린 말도 아니고, 핵무기를 사용하자는 게 아니고 핵을 갖고 있는 상대와 협상하려면 나도 핵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니, 그럴 듯 하기도 합니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입니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소형화, 경량화에 성공해 대량 생산이 임박한 현실을 감안하면, 독자적 북핵 대응력이 시급하다는데 이견은 없습니다.

그러나 핵무장 주장은 허망합니다. 쏟아내는 정치인들은 시원할지 몰라도, 책임질 자리에 있는 사람들로선 불가능한 명제입니다. 기술적으로 한국의 핵무장 조건은 ‘1조-1년’ 법칙이 정설입니다. 예산 1조 원을 투입해 1년만 노력하면 핵개발이 가능하단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어렵지 않은데 정치 외교적으론 매우 복잡한 방정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첫 걸림돌은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 Proliferation Treaty) 탈퇴입니다.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우선 NPT를 탈퇴해야 합니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한반도에서의 원자력은 평화적 사용만 가능합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된 이후 플루토늄은 IAEA가 엄격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을 깨고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우선 NPT부터 탈퇴해야 합니다. 북한 역시 1992년 NPT 탈퇴를 선언했다가 지루한 협상을 벌이다 2003년 결국 탈퇴하고 핵개발에 본격 나섰습니다.

NPT 아래에선 기술적으로 핵무기 개발이 불가능합니다.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현재 운영 중인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플루토늄 찌꺼기를 재활용해야 합니다. 한국은 IAEA의 엄격한 감독 아래 원자력 발전 이후 나오는 플루토늄 양을 신고하고 있습니다.

비밀리에 플루토늄을 빼돌려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플루토늄 용기는 IAEA가 봉인하는데, 봉인을 뜯지 않고 소량이라도 플루토늄을 빼돌릴 방법은 없습니다. 결국 핵무장의 전제 조건은 NPT 탈퇴인데, 이후 시나리오는 차라리 재앙입니다.

우선 미국이 한미 원자력협정 위반을 들고 나올 겁니다. 미국의 한반도 군사 전략의 기본 개념은 핵우산 제공입니다.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면 일본도 핵무장에 나설 명분이 됩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에 반대하고 그래도 강행하면 핵우산을 걷어 들이는 방향으로 압박할 겁니다.

한미동맹에 심각한 균열을 의미합니다. 더 큰 문제는 경제적 손실입니다. NPT 탈퇴와 한미 원자력 협정 파기는 바로 유엔의 경제 제재로 이어집니다. 북한이 밟은 경로와 같습니다.

미국, 일본, 유럽의 경제 제재를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가 견딜 수 있을까요? 북한은 어차피 자급자족 체제이고 중국이라는 생명선이 유지되는 한 버틸 수 있다는 것이 지난 20년의 교훈입니다. 그런데 한국이 국제사회와의 무역 손실을 감내하면서 핵무장을 완성한다?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너무 많은 위험한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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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선 핵무장의 대안으로 미군 전술 핵 재배치 목소리도 높습니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철수한 미군의 전술핵 자산을 재배치 하자는 겁니다. 북한이 이미 핵무기 실전 배치를 목전에 둔 마당에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은 이미 사문화 됐습니다. 미군 전술핵을 들여오면 경제 제재 대상이 아니고 독자적 핵무기 개발 비용도 들지 않는 장점도 있습니다. 북핵에 맞선 비대칭 균형 추를 맞출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국이 동의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확장 억제’를 강조한 대목이 반증입니다. 이번 주에는 B1B, B2 스텔스 등 미군 전술핵 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됩니다. 출격지는 미국령 괌 앤더슨 공군 기지입니다.

서너 시간이면 한반도에 출격해 폭격하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미 본토에서도 북한을 정밀 타격할 ICBM이 있고 무엇보다 로널드 레이건호 같은 항공모함이 있습니다. 미국의 논리는 한마디로, “북한이 핵을 쏘면 반나절 안에 대응이 가능하니 굳이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할 필요 없다’입니다. 
 
제 3의 대안으로 한반도에 미군 전략무기 기지화 주장도 나왔습니다. 북한이 핵실험 할 때마다 괌에서 출격한 전략 무기들이 잠깐 한반도에 나타났다 사라져서는 대응이 안되니, 아예 한반도에 미군 전략 무기 기지를 상주시키자는 주장입니다. 일본 오키나와 기지가 모델입니다. 유사시 핵을 탑재할 전략 무기들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 만으로도 북한 핵을 억제할 효과가 있습니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과 국론 분열입니다. 사드 배치만으로도 이렇게 나라가 시끄러운데 미군 전략 기지 배치는 그리 간단한 대안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미군의 동의 여부가 불투명하고, 오히려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미국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입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핵무장 혹은 미군 전술핵 재배치는 정치권의 공허한 목소리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한미 정상이 밝힌 북핵 확장 억제, 즉 미군의 핵우산이라는 현실적 대안 속에서 한반도 군사 균형을 유지하며 북한을 상대로 한 지루하고 힘겨운 싸움의 방식을 모색할 시점입니다. 한미동맹 강화와 대북 제재 그리고 대화 모색, 매우 뻔하고 매번 반복되는 대안이긴 하지만, 그 이외에 다른 해법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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