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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핵무장론' 손익계산서…핵보다 무서운 건?

[취재파일] '핵무장론' 손익계산서…핵보다 무서운 건?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여권을 중심으로 ‘핵 무장론’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보수 진영의 핵 무장론은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핵 무장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정 전 대표는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로서 “우리가 그토록 우려했던 북한의 핵무장이 현실이 되었다”, “미국에 의존하는 핵전략을 넘어 우리도 핵무기 보유 능력을 갖춰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이런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먼저 북한의 핵 위협 수준이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이미 중장거리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핵을 소형화한 것으로 보이는 데다 이를 실어 나를 발사체 역시 상당 부분 고도화시켰다는 겁니다.
 
정치권의 반응도 다릅니다. 당시에는 정 전 대표 한 사람의 주장이었다면 이번에는 김무성 전 대표와 원유철 전 원내대표, 김정훈 의원 등 상당수 여권 중진들이 핵 무장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당의 수장인 이정현 대표까지 핵 무장론에 가세하면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정치권 안보 협력 강조하는 이정현
이 대표는 지난 10일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에 훨씬 더 강도 높은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면서 (핵 무장 같은) 조치들을 과감하게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핵 무장에 대한) 국민 목소리, 전문가 목소리가 많다는 것을 꼭 한번 공론화해 보고 싶었다”, “지금도 개인적인 소신은 아주 강하다”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 핵무장으로 얻는 것
 
우리가 핵무장을 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북한처럼 자체적으로 핵 무기를 개발하는 방법과 미국의 핵무기를 우리 영토에 배치하는 방법입니다. 먼저 핵무기 자체 개발은 우리 나라의 여건상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북한처럼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는 등 기존의 국제 질서를 전면 거부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우리 안보의 축인 한미 동맹이 와해되는 것은 물론 대외 의존도 높은 우리 경제가 붕괴되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군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은 미국의 전술 핵무기 배치입니다. 전례가 없지 않은 데다 미군이 직접 핵을 통제하는 만큼 국제 질서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군사적 관점에서 핵무기를 막는 최선의 방법은 핵무기라는 대전제 하에 가장 효과적인 대북 억제책입니다. 또 이미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그나마 국민적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 핵무장으로 잃는 것
 
하지만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미국이 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한다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설사 미국이 한국 내 핵무기 배치에 동의한다 해도 그걸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국 반발 때문입니다. 

만약 미국이 북한 핵 위협을 이유로 한국에 핵무기를 재배치하겠다고 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가만히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자국 이익에 철저한 이들이 자신들의 턱 밑인 한국에 미국의 핵무기가 배치되는 걸 용납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방어용 무기 체계인 사드 배치를 놓고도 노골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는 중국만 봐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잃는 것은 또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명분입니다. 명분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를 통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명분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를 포기할 경우 오히려 북한에게 ‘자위적 핵 보유’라는 그들의 명분을 강화시켜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심리적 요인을 제외하고 군사적 효용성만 놓고 따진다면 한국에 핵무기가 직접 배치돼 있느냐, 배치돼 있지 않느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굳이 한국에 핵무기가 없더라도 미국의 전략자산인 잠수함이나 미사일, 전폭기 등을 통해 별다른 시간차 없이 언제든 핵 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에 핵무기가 배치돼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미국이 얼마나 확실히 핵우산을 제공하느냐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이 핵 도발을 할 경우 자신들도 미국의 핵 보복을 피할 수 없다는 점만 명확하다면 충분히 대북 핵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 핵무장보다 중요한 것
 
사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자위적 차원에서 우리 스스로 핵무기를 개발해 무장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공허한 핵무장론은 자칫 부작용만 나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국론분열’입니다.
 
여권의 핵무장 주장에 야권에서는 벌써부터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핵무장론은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는 복잡한 사안입니다. 정답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찬반 양측 모두 나름의 논리가 있는 만큼 한 쪽 의견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 없습니다.
 
시끄러우니 논란을 피해가자는 게 아닙니다. 필요하면 논쟁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제가 돼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국가적 단합입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초당적 협력’을 외쳤던 우리 정치권의 모습이 좋은 예입니다. 북한의 핵 위협이 결코 내년 대선을 겨냥한 '안보 장사' 혹은 '편 가르기'에 악용되어서는 안됩니다.
 
핵무기 아니라 그 어떤 강력한 무기도 국론이 분열된 나라를 지켜줄 순 없습니다. 북한의 핵 개발이 우리 사회의 위기감과 분열을 가속화시킨다면, 그것이 오히려 북한 핵무기 그 자체보다 휠씬 더 위협적일 수 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보다 국민적 단합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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