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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마음껏 뛰고 구르고 춤출 자유'의 가치

[취재파일] '마음껏 뛰고 구르고 춤출 자유'의 가치

파격적이고 과감한 춤으로 잘 알려진 현대무용 안무가 안은미 씨가 이번 주말 새 작품을 무대에 올립니다. 작품 제목은 ‘안심(安心)땐쓰’. 안은미 컴퍼니 소속의 전문무용수 8명과 시각장애인 6명이 함께 선보이는 무대입니다.
 
무용수들은 흰 지팡이를 두드리며 무대를 유영하듯 자유로운 움직임을 선보입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경쾌한 춤을 추기도 하고,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좌절과 상처를 형상화한 춤을 춰 보이기도 합니다.
 
안은미 씨는 장애물로 가득한 그래서 그만큼 위험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 장애인들에게 보다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싶은 욕심에 이 작품을 기획했고, 그런 의미에서 ‘안심땐쓰’란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보여주는 몸의 언어가 관객들에게 감동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물론 무대에 오른다는 건 적잖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춤 공연을 함께 하자”며 누군가 제안한다면 선뜻 응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우리 중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물며 앞이 보이지 않아 움직이는 데 있어 늘 조심스러웠던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더욱 그럴 겁니다. 도대체 이들의 대담함은 어디서 온 걸까요?
 
취재를 위해 막바지 공연 준비가 한창인 연습 현장을 이번 주 초 찾았습니다. 제가 도착한 건 무용수들이 막 현장에 도착해 몸을 풀고 있을 때였는데, 한 달 반 가까운 긴 연습 기간을 반영하듯 모두들 편하고 능숙하게 무대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4시간 남짓 연습 과정을 지켜보며 틈틈이 이 대담한 무용수들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이번 취재파일에서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느꼈던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글을 읽는 여러분께도 전달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올해 24살의 장해나 씨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입니다. 빛만 겨우 의식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지금은 미약하게나마 앞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녹내장이 워낙 심해 언제 실명할 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을 안고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녀는 공연을 앞두고 무척 고무된 모습이었습니다.
 
“장애 때문에 그리고 가정 형편 때문에 항상 제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살아왔어요. 그러다가 스무 살에 희귀병을 앓게 돼서 많이 아픈 바람에 한참을 누워 있었죠. 그때 몸으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걸 꼭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내가 원하는 걸 해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도전하게 됐어요.”
 
마음껏 뛰고 구르고 춤추는, 비장애인들이 자유라고 느끼지도 않는 그 흔한 자유가 그녀에게 왜 그토록 절실한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밝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힘들 수 있는 거잖아요, 내 꿈을 이룬다는 건. 그런데 이번 계기를 통해 소통할 수 있고 다시 운동을 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저는 너무 좋아요.”
 
22살의 임성희 씨는 노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음악과 어울리는 몸짓을 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이번 공연에 도전했다고 합니다. 11살 때 뇌종양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시력을 잃게 됐다는 그녀는 지금은 양쪽 눈 모두 빛이나 색깔 정도만 어렴풋이 감지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해서 중도 실명하기 전에는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 같은 거 많이 보고 춤 따라 하고 그랬어요. 아무래도 몸을 쓰다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긴 하죠.” 음악을 좋아하고 무대를 좋아하는 그녀는 어느새 춤도 즐기게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방향 잡는 게 너무 어렵고 균형 감각이 부족하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이제는 자신감이 좀 생긴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24살의 김한솔 씨 또한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게 된 경우였습니다. 18살에서 19살이 될 무렵 하루 아침에 시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학교 가는 길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그는 이후 병원에서 레베르시신경병증이라는 희귀병을 진단 받았습니다.
 
현재는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인데, 인터뷰를 위해 의자에 앉자마자 “제가 눈이 보였으면 진짜 무용했을 것 같아요”라며 호쾌하게 웃었습니다. 잘해서 좋다기보다는 자유로움이 너무 좋다는 겁니다. “눈이 갑자기 나빠지고 항상 가슴이 좀 답답했는데, 여기 와서는 몸 막 흔들고 뛰고 대사도 뱉고 하니까 다시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이 들어 그게 너무 좋았어요. 선생님이 연습할 때 ‘다 괜찮아, 해도 돼’ 하니까 저는 믿고 그냥 뛰어요. 형 누나들이 알아서 피해주니까 괜찮겠지 하고 그냥 뛰어요.”
 
즐거움만 있는 건 아니랍니다. 보람도 있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도움만 받는 것 같아 평소 말은 잘 안 했어도 마음의 짐이었는데, 이 공연을 통해 자신도 그들에게 뭔가 좋은 선물을 줄 게 생긴 것 같아 그게 너무 기대되고 설렌다는 겁니다.
 
“뭔가 하고 싶은데 막 고민하면서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보면서 “한솔이도 저렇게 도전하고 열심히 하는데 나도 했으면 좋겠다’ 그런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부족한 점도 많지만,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서는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즐기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이 밖에도 춤 연습을 통해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게 됐다는 신나라 씨, 전문 무용수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무얼 하든 서로가 필요하고 힘을 합치는 게 중요하구나’ 깨닫게 됐다는 심규철 씨, 또 여기저기 몸은 많이 뻐근하지만 건강한 피곤함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이성수 씨 등 건강한 에너지로 가득한 청년들과의 대화는 유쾌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전문 무용수의 몸을 더듬어가며 손으로 동작을 읽혀야 했고 그래서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던 이들의 무대가 이제 곧 시작됩니다.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건강하고 진취적인 에너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안심땐쓰’ 공연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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