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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뷰+] "2시간 쪽잠 자는 살인 일정"…버스 기사의 호소

[人터뷰+] "2시간 쪽잠 자는 살인 일정"…버스 기사의 호소

지난 7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관광버스가 승용차 5대를 잇달아 추돌했습니다. 4명이 숨지는 등 4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교통사고였죠. 사고 원인은 관광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이었습니다.

SBS 취재진은 최근까지 대기업 출·퇴근 버스 운전 기사를 했던 퇴직 버스 기사를 만나, 버스 운전 기사의 근무 환경 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이 퇴직 운전 기사는 일부 관광버스나 전세버스 기사들의 경우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무리한 운전에 내몰리는 경우가 여전하다고 말했습니다.

평일과 주말은 물론 야간 운전까지 하다 보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운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편집자주>
 

잠을 못 자고 근무하는 경우가 많나요?

▶퇴직 버스 기사: 2~3시간 자는 날도 있고, 많이 자면 5시간 자고 나와요. 오전 6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까지 근무하는 게 기본 일정이고, 그 이후에 추가 일정이 잡히는 날이 많거든요. 평일이랑 주말 상관없이 회사에서 정해주는 데로 움직이는 거예요.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일정을 정해준다고요?

▶퇴직 버스 기사: 완전히 일방적인 통보죠. 그나마 주말 일정만 한 달 단위로 미리 알려주고, 평일엔 갑자기 일정이 생겼다고 알려주면 바로 투입되는 거예요. 오전에 출근 버스 일정 마치고, 바로 지방 일정을 통보 받으면 당황스럽죠.

오전 근무 마치자마자 3~4시간 달려서 지방 다녀오면 새벽이고, 다음 날 출근은 해야 하니까 쪽잠 자고 바로 또 나가는 걸 반복하는 거죠. 이게 주말까지 이어지니까 눈 붙일 시간이 없어요.

출근 버스 이외에 다른 곳에도 동원된다는 건가요?

▶퇴직 버스 기사: 저는 회사 소속 버스니까, 회사 교육 일정이나 경조사 일정에 동원되는 일이 많죠.

그나마 교육장은 서울에서 직원을 태우고 내려갔다 올라오면 되지만, 지방에서 오는 결혼식 승객이랑 장례식장 조문객 태우는 날은 정말 힘들어요.

결혼식만 해도 지방에 내려가서 승객들 태우고 서울에 왔다가, 또다시 내려가야 하거든요. 예식 하는 동안 대기 했다가 끝나는 대로 승객들 태워서 부산이든 광주든 또 운전대를 잡는 거죠.

결혼식은 승객 태우려고 전날 밤에 미리 내려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월급 얼마 안 되니까, 고급 호텔에서 잘 수는 없고 싸구려 여관이나 버스에서 자요. 몇몇 기사는 버스에서 잘 때 쓰려고 트렁크에 비닐장판을 갖고 다녀요.
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은 있나요?

▶퇴직 버스 기사: 전혀 없어요. 시간 단위로 수당을 준다거나, 일한 날수가 많다고 해서 돈을 더 주는 게 아니에요. 일을 많이 하나, 적게 하나 매달 같은 월급이 들어오는 거죠.

고령인 기사를 배려해주는 부분도 따로 없어요. 나이 드신 분들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가끔 일정을 조정해달라고 하는데, 회사에서 바꿔주는 경우도 별로 없고 기사들끼리도 눈치 보이니까 안 하게 되죠.

일부 기사들이 휴식 시간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나요?

▶퇴직 버스 기사: 그런 기사들도 있어요. 정말 잠도 못 자고 일하는 기사가 더 많은데, 일부 기사들 때문에 다른 기사들까지 피해를 보는 거죠. 기사들이 고쳐야 할 부분이죠.

휴식 시간이 생기면 푹 쉬고 나와야 하는데, 그 시간을 이용해 술을 마시거나 다른 일 하느라 허비하는 거예요. 그런 기사들 때문에 열심히 하는 기사들까지 욕먹을 때면, 정말 답답해요.
벌금도 기사들이 냈다던데, 사실인가요?

▶퇴직 버스 기사: 주차위반 단속으로 벌금을 낼 때가 제일 많아요. 버스를 주차할 공간이 많지 않거든요. 한 번은 주차위반 단속에 걸려서 벌금을 20만 원 내라고 나왔길래 회사에 이야기했더니, 제가 부담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적은 금액도 아니고… 못 내겠다고 반발을 했더니, 월급에서 그 금액을 삭감했어요. 주차 공간도 마련해 주지 않고 지방으로 무조건 내려가라니까 저희도 답답한 거죠.

미리 내려가 있는 날은 밤새 불법주차를 해야 하니, 벌금 액수가 커질 수밖에 없어요. 회사에서 계속 기사에게 벌금을 부담하는 게 부당하다고 그만둔 기사도 있어요.

기사들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경우가 또 있다고요?

▶퇴직 버스 기사: 승객의 항의가 들어오면, 기사들에게 바로 불이익이 생겨요. 주차장이 있는 장소에서도 주차 위반 단속에 걸리는 경우가 이런 부분 때문이에요.

승객들이 탑승하기 좋은 곳에 세우라고 하면, 기사들은 무조건 따라야 하거든요. 회사 측으로 항의가 들어오거나, 불만이 접수된 기사는 배차 일정에서 불리해져요.

항의가 들어왔다는 이유로 한 사람한테 일을 몰아서 주는 거죠. 그러니 벌금을 내는 상황이 와도 최대한 승객한테 맞출 수밖에 없어요.
’살인적인 일정’이 사고로 이어질 위험도 있겠군요?

▶퇴직 버스 기사: 당연하죠. 이런 일정은 승객들한테도 위험합니다. 그런데 회사는 기사들이 만능 로봇인 줄 알아요. 2~3시간 겨우 잘 수 있는 일정에 주말 내내 운전만 하는데, 졸음운전을 안 한다는 보장이 있겠습니까?

저도 오랜 기간 운전했지만, 사고라는 건 한순간에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회사는 위험한 운전을 강요하고 있는 거죠. 버스 기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그런 말을 합니다.

죽기 직전까지 돌린다고요. 더 놀라웠던 건, 기사 한 분이 살인적인 일정에 맞춰 불평불만 없이 일을 하니까 다른 기사들을 모아놓고 그분을 본받으라고 하더군요.

지금의 행태가 얼마나 위험한 지 전혀 인지를 못하는 거죠.

취재 이후 대기업 측은 전세 버스회사와 논의해 주말 장거리 운전이나 야간 운행을 할 경우 다음날 운전대를 잡는 일이 없도록 하는 등 근무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획·구성 :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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