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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해안침식 위력…1년 새 사라진 철새 번식지

[취재파일] 해안침식 위력…1년 새 사라진 철새 번식지
태안 해안국립공원에 있는 몽산포 해변은 드넓은 모래밭과 갯벌로 해양 생물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해수욕장 뒤쪽 울창한 솔숲은 피서객들에게 여름밤 추억을 만들어 주고, 3.5km의 백사장을 따라 넓게 펼쳐진 갯벌에는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갯벌 생물은 사람과 물새들의 중요한 먹이 사슬을 이루고 있습니다. 몽산포에서 청포대 해수욕장 방면 달산리 모래밭은 봄철 여름 철새들이 찾아와 번식을 하는 곳입니다. 지난해만 해도 수 십 마리의 흰물떼새와 쇠제비 갈매기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길렀습니다. 물새들은 모래밭에 알을 2-3개 씩 낳고, 암.수 교대로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합니다. 여름 철새의 번식 장면은 국립공원연구원내 철새연구센터와 동행해 지난해 5월 말쯤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1년 사이에 여름 철새 번식지인 모래밭이 사라졌습니다. 해안 침식이 생기면서 바닷물이 쓸어간 것입니다. 철새들이 알을 낳은 모래밭은 갯벌로 바뀌었습니다. 육지와 맞닿은 연안 모래언덕도 싹둑 잘려 나갔습니다. 파도에 깎인 모래언덕은 깊이가 최대 1m이상 되는 곳도 있습니다. 파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놀라웠습니다. 사구에 살던 식물들도 피해를 입었는데 절단면에 간신히 붙어있는 갯그령의 경우 실뿌리를 드러낸 채 위태롭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자 비탈면 모래 알갱이들이 줄줄 쏟아져 내렸습니다. 모래 알갱이는 밀물 때 바닷물에 씻겨 떠내려가게 됩니다. 해안 침식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서해 해넘이 명소 중 한 곳인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의 경우 백사장이 자갈밭으로 변한 지 오랩니다. 해안도로를 내며 연안에 들어선 콘크리트 옹벽이 백사장 침식의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모래밭이 없다 보니 해수욕장 개장 시기에 맞춰 덤프트럭으로 모래를 실어다 붇기를 반복합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길어다 붓는 꼴입니다.
서천군 비인면 다사리 해안은 10여 년 째 침식이 계속돼 방풍림으로 심은 해송 군락지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수령이 수십 년 된 굵은 소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모래언덕이 패여 나가면서 뿌리가 앙상하게 드러났습니다. 언제 파도에 씻겨 쓰러질지 모를 만큼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해안 침식이 일어나고 있는 해안 길이는 500여 미터가 넘습니다.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실시한 서해안 지역 연안 침식 실태 조사는 바닷물에 의한 모래언덕 파괴가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 중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지역별로는 바다를 끼고 있는 인천, 경기, 충남, 전북, 전남 등 5개 자치단체들입니다. 먼저 인천의 경우 16개 조사 지역 가운데 연안 침식이 우려스럽다는 C등급을 받은 곳이 장골, 을왕 해수욕장 등 8곳이나 됩니다. 경기도에서는 조사 대상 6곳 가운데 방아머리, 국화도 해수욕장 등 3곳이 우려 등급을 받았습니다. 충남의 경우 19개 조사 지역 가운데 꽃지, 운여해수욕장 등 C등급을 받은 곳이 10곳에 이릅니다. 전북에서도 9개 조사 지역 가운데 명사십리 해변과 위도 해수욕장 등 4곳이 C등급을 받았고, 전남에서는 62개 연안 침식 조사 지역 가운데 30개소가 우려 등급을 받았습니다.

서해안 5개시도 연안 침식 조사 지역 112곳 가운데 절반인 55개소가 침식 상태가 우려스럽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양수산부는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침식이 심한 곳부터 원인을 분석해 해안 정비 사업을 벌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동해안 침식은 너울성 파도가 주원인 인데 서해안의 경우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지역이어서 기본적으로 조류의 흐름이 침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또 인천과 충남 해상 등에서 과거부터 진행된 건설용 바닷 모래 채취로 해안가 모래 퇴적이 줄었고,방조제나 옹벽 같은 인공구조물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조류의 이동에 영향을 미쳐 연안 침식이 진행 중이라는 것입니다. 바닷물이 야금야금 연안을 잠식하면서 서해안의 지형조차 바꿔 놓고 있습니다.

개발 행위에 따른 인간의 간섭이 결국 바닷물의 해안 침식을 불러왔습니다. 해안 침식은 물새들의 번식지를 빼앗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먹이 사슬을 흔들어 놓는 환경의 역습, 그 시작은 이곳에서도 인간의 탐욕이었습니다. 백사장과 모래언덕이 더 사라지기 전에 친환경적인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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