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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돈 선거에 허위 공약…어른 뺨치는 학생회장 선거

[리포트+] 돈 선거에 허위 공약…어른 뺨치는 학생회장 선거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초등학교 전교 어린이회장 선거에 나간다면 뭐가 필요할까요?

최근 전교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초등학생 딸아이의 엄마가 모 커뮤니티에 쓴 글을 통해 대략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이번 2학기 전교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초등학생 딸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우선 각 후보의 선거 공약을 내세운 포스터는 학교에서 2절, 4절 정도의 크기로 맞추라 해서 근처 대형문구점에 맡겼고, 그 밖에 홍보 용품은 폼아트가 가장 좋다 해서 디자인 전문점에 주문했습니다.”

무엇보다 선거 공약이 필요하죠? 선거 공약을 전교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포스터나 피켓도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삐뚤빼뚤한 손 글씨나 색종이를 손수 오려 붙인 포스터가 많았지만, 이제는 '초등학생다운' 홍보 용품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초등학생이 보는 포스터라도 포스터 제작에 부모의 도움은 거의 필수고, 디자인 전문가의 손길까지 거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준비물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선거 기간 후보는 단정하며 차분한 색감이 있는 옷이 좋다고 해서 새로 사 입혔는데, 어떤 엄마는 일부러 아예 같은 색의 옷만 입힌다고도 하네요. 후보를 도와주는 친구들에게 기호를 넣은 같은 색 모자를 맞춰주는 것도 좋다던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초등학교 선거’를 검색해 보니 각종 홍보 용품 제작 업체 광고는 물론이고, 프로필 사진이나 선거 연설문 대행업체까지 줄줄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선거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얼마나 될까요?
 
[ 학생 선거 홍보에 드는 목록과 비용 ]
벽보 3장, 피켓 4개, 어깨띠 5개: 23~33만 원
스피치 학원비: 40만 원
기본 명함 사진, 전신·측면 사진: 5~15만 원
기타 연설문 대행, 새 옷, 선거 도우미·학급 친구들 간식비 등

수십만 원이 훌쩍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돈 때문에라도 출마 결심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   ‘학생회장’ 일단 되고 보자 식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어린이 선거 풍토도 문제지만, 어린이 후보들이 내놓는 무리한 선거 ‘공약’도 문제입니다. 실천 가능한 약속이어야 하지만 일부 공약의 경우 학생 스스로 짜낸 공약이라고 보기 어려운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당선되면 전교생에 간식을 쏘겠다.”
 
서울 모 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에 간식 제공을 공약했던 학생이 회장에 당선된 뒤 물러나는 일도 있었습니다.당선되고도 공약을 지키지 않자, 학부모와 학생들이 항의했고 결국 학교 측은 당선자를 사퇴시켰습니다.

경기도의 모 초등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학급마다 에어컨을 바꿔주고 여름 내내 틀게 해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 경기도 모 초등학교 관계자 ]
“무리한 공약을 낸 학생이 당선이라도 되면 학생들은 그 공약을 지키라고 아우성입니다. 낙선자까지 항의를 해오기도 해서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밖에도 ‘체육 시간을 늘리겠다’, ‘질 좋은 급식 업체로 바꾸겠다’, ‘화장실에 비데나 음악 시설을 설치해 주겠다’는 식의 과한 공약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 학생부 기재용 '학생 선거'

그렇다면 과도한 홍보 비용과 무리한 공약을 내세우면서까지 학생회장 선거에 학생이나 학부모가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A 씨 ]
“학생회장 경력이 있다고 특목고 입시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학생부 기록에 남다 보니 다른 친구들과 차별화되며, 교사들에게 인정받기도 쉽죠.”

입시에 도움이 될 거란 기대감도 없지 않습니다. 과도한 홍보 비용이나 무리한 선거 공약 등으로 논란이 일자대책을 마련하는 학교도 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선거 기간 선거관리위원회를 운영하며 정해진 홍보 용품을 쓰도록 해 과열 경쟁을 막았습니다. 울산의 한 초등학교는 학생들이 손수 만든 홍보물만 사용하도록 하고 벽보도 3개까지만 허용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교육 당국의 올바른 선거교육과 지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학생 선거에 부모가 개입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 임진희 / 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장] 
“학생들이 본인의 힘으로 공약도 만들고 포스터도 만들어 선거에 임해야지, 부모들이 업체에 맡기거나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문제가 있습니다.”

순수해야 할 어린이 선거에 치맛바람이 불면 어른 선거의 축소판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기획·구성 : 임태우·김미화 / 디자인: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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