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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추석 9일 황금휴가 쉬세요"…'그림의 떡'인 이유

[리포트+] "추석 9일 황금휴가 쉬세요"…'그림의 떡'인 이유
“대기업들이야 연차 쓰고 9일씩 쉬고, 우리 같은 하도급 회사는 뼈 빠지게 일해야죠. 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며 정부인가요?”

추석 연휴를 앞둔 모 대기업 하도급 회사 직원의 하소연입니다. 

최근 정부는 다가오는 추석 연휴 전인 12일(월요일)과 13일(화요일)에 근로자들이 연차 휴가를 쓸 수 있도록 대기업과 경제 단체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주말까지 더해 근로자들이 최장 9일 동안의 휴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죠.

OECD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차 사용 비율이 절반도 안 되니 이럴 때라도 써서 생산성도 높이고, 내수도 살리자는 취지입니다. 삼성과 현대차, 포스코 등 대기업 상당수는 정부 방침대로 휴가 사용을 권장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근로자를 위하는 듯한 방침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근로자들이 많습니다.

●“쉴 사람만 쉬고, 못 쉬는 사람은 못 쉰다”

무엇보다 정부의 연차 사용 권장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만 위한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많습니다. 기업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일수록 연차를 즐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죠. 부족한 인력에 추석 연휴로 조업일 수도 줄어 납기를 맞추려면 야근을 해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 중소기업 대표 A 씨 ]
“지금 한창 일해야 할 시기입니다.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타격이 상당히 큽니다. 이건 중소기업을 배려하는 정책이 아닙니다. '너희가 알아서 해라, 망하든 말든' 식의 발상이라고 할 수 있죠.”

정부가 지난 5월 6일을 하루 전날인 어린이날 휴일과 이어지도록 임시공휴일을 지정했을 때도 중소기업은 마음 놓고 쉴 수 없었습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골칫거리였습니다.

갑자기 임시 공휴일을 지정하는 바람에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공장 가동에도 차질이 생길 뻔했습니다.
그 당시 중소기업중앙회가 350개사를 대상으로 ‘임시공휴일 지정에 따른 휴무계획’을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쉴 수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응답한 기업의 50.3%는 ‘하루만 쉬어도 생산량, 매출액 등에 타격이 있어 쉴 수 없다’라며 절박함을 호소했습니다.

● “연차, 먹는 건가요?”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직장 분위기가 드문 것도 근로자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모 취업 포털 업체가 직장인 533명의 연차 사용 실태를 조사했더니, 지난해 연차를 모두 사용한 비율은 35.5%에 불과했습니다.

연차를 모두 사용하지 못한 응답자 가운데 절반 이상(63.1%)은 “직장 상사 눈치가 보여 휴가를 내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남들 일할 때 혼자 쉰다는 인상을 주면 상급자로부터 눈치를 받거나 인사 고과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일 컸습니다.

이처럼 연차 사용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분위기에서 정부가 권장하는 연차 휴가는 그저 ‘그림의 떡’인 셈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OECD 회원국 중 연간 노동시간은 3위를 차지했습니다. 회원국 평균보다 351시간이나 많았습니다.

반면, 연차 사용은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평균 15일 중 6일만 연차 휴가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12일을 쓰는 일본 다음으로, 꼴찌를 차지했던 것이죠.
정부는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내수 경제를 살리자는 차원에서 계기가 있을 때마다 연차 휴가 사용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연차 휴가 사용이 근로자 삶이 질적으로 높아지고, 업무 능률과 생산성에도 도움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휴가 촉진 정책을 추진하는 일본 정부는 근로자들이 연차 휴가를 모두 쓰면 관광 활성화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11조 8천억 엔의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연차 휴가를 쓰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개선하지 않은 채 ‘9일 황금 휴가 즐기세요’라고 권장하는 우리 정부의 말은 근로자들에게 그저 ‘희망 고문’으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기획·구성 : 임태우·김다혜 / 디자인 :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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