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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친구야, 영화 봐라. 내가 돈 번다"…은행들의 '영화 마케팅'

[취재파일] "친구야, 영화 봐라. 내가 돈 번다"…은행들의 '영화 마케팅'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의열단 활동을 소재로 한 영화 '밀정'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송강호, 공유, 한지민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영화 밀정
그런데 이 영화 '밀정' 관객이 1천 만명을 넘을 지 유독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 한 시중은행이 내놓은 '무비 정기예금'에 가입한 사람들입니다. 은행의 영화 마케팅이 시선을 모으면서 이 정기예금은 보름만에 140억원을 모았습니다.

● 1천만 명 안되면 연 1.40%, 1천만 명 넘으면 1.45%

"겨우 0.05%?"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로 금리 시대'에 0.05% 차이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여지가 있습니다. 1천만 명에 못미치면 1.4%를 받는데, 1천만명이 넘으면 1.45%를 받고, 1천 2백만명이 넘으면 1.50%까지 올라가니까 금리에 민감한 은행 고객이라면 "혹시 0.1%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솔깃할 만 합니다.
● "은행 좋고, 영화사 좋고, 고객도 좋고"

이 상품을 내놓은 KEB 하나은행은 예전에도 비슷한 상품을 내놨습니다. 성낙중 KEB하나은행 디지털마케팅팀장은 "금리 혜택을 받으신 분들은 계속해서 은행 거래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은행 수익보다는 이미지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마케팅을 하는데, 여기서 혜택을 받을 경우 한마디로 '충성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영화 베테랑과 영화 터널에서 비슷한 상품을 내놨습니다.

또 이 적금에 가입한 분들은 영화를 보러 갈 확률이 높습니다. 주변에 권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영화사 입장에서는 분명히 흥행에 도움이 됩니다. 취재진이 만난 '영화 정기예금'가입자는 "관객이 1천만명을 넘을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송강호씨가 흥행배우이고, 시대 배경도 인기를 끌 것 같고, 추석 때 개봉한다는 점도 흥행에 보탬이 될 것"이라며 분석했습니다. 물론 자신도 개봉하면 바로 영화를 보러가고 주변에도 권하겠다고 합니다. 

물론 1천만 명이 안되더라도 원금을 날리는 식의 큰 손실을 입을 우려는 없습니다. 예금자 보호가 되는 정기예금이니까요. 금리 0.05% 덜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만입니다.

● '영화 펀드'? …"친구에게 홍보했죠. 500만명 넘으면 밥 산다고"

회사원 김모 씨는 한 펀드 상품에 100만 원을 넣었습니다. 지난 4월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다섯 달. 김씨는 반 년만에 25% 넘는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가 투자한 펀드는 바로 '영화 펀드'입니다. 이 펀드는 관객 700만명을 넘어선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투자했습니다.

이 상품은 이 영화 관객이 손익분기점인 460만 명이 넘으면 수익이 나고, 그에 못미치면 손해를 보는데, 700만명을 넘을 경우 25.6%의 수익을 올리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현재 인천상륙작전 고객은 7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는 왜 이 영화를 택했을까. "출연하는 배우나 스토리를 봤을 때 충분히 우리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었습니다. 리암 니슨이 맥아더 장군으로 나온다는 것도 큰 역할을 한 듯 보였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영화를 보라고 소개했다. 관객이 늘어나면 내가 펀딩한 돈의 수익률이 늘어간다고 했고, 잘 되면 밥 한 번 사겠다고 했다"며 크게 웃었습니다. 돈도 벌었고, 친구에게 밥도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겠죠.

● 늘어나는 은행의 영화 투자, "수익성 + 공익성"

이 상품을 기획한 IBK기업은행은 원래 영화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합니다. 직접 영화에 투자를 한다는 건 성공을 할 수도 있지만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익성 측면 뿐 아니라 '문화에 대한 지원'이라는 공익성 측면도 강합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의 김난윤 과장은 "문화콘텐츠 산업이 고용 창출 효과도 크고 부가가치가 높다"면서 "영화 산업이 금융권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도 지원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은행의 영화 마케팅'에 대해서는 "제작사에 직접 금융 지원을 할 수도 있고, 투자 조합을 결성해서 간접투자를 할 수도 있다"며 "다양한 형태로 금융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 은행의 강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펀드는 펀드 일뿐…개봉전 '영화 정보 보안'이 딜레마

그런데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금이야 예금자 보호가 되기 때문에 금리 덜 받고 말지만, 펀드는 다릅니다. 너무나 당연히, 펀드는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원금 손실 우려가 있습니다. 영화 펀드에 투자했는데 그 영화의 관객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면 원금을 날리고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영화 '사냥'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개봉 전에는 제한적인 영화 정보를 접할 수 밖에 없다는 '투자의 한계'도 있습니다. 대략의 줄거리와 출연 배우를 보고 결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투자 회사가 아닌 개인 소액 투자자들은 시나리오를 보지도 못하고 투자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사로서는 "소액투자자 모두에게 시나리오를 공개했다가는 결론이 모두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신증권 최정욱 기업분석부 부장은 "모든 영화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흥행에 실패한 영화도 있을 수 있습니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만 부각이 됐기 때문에 영화 투자가 각광받는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 수익성이 엄청나게 높다고 보기도 쉽지 않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영화 펀드는 원금 보장형 상품도 아니고 투자한 영화의 흥행에 따라서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큰 수익이 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금이 아닌 펀드 투자를 결정할 때 "저 배우는 흥행 보증수표야I!" "내가 좋아하는 감독이야"라며 즐겁게 투자하는 것도 좋지만, 흥행에 실패하면 원금을 고스란히 날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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