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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단독]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 속인 대한체육회

대한체육회가 자체 정관과 서로 모순되는 하위 규정과 관련해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과 언론을 속인 것으로 SBS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통합 대한체육회는 지난 3월 21일 인사규정을 새로 제정했습니다. 대한체육회 <인사규정> 제3장 제15조(임용의 방법) 1항에는 “사무총장과 선수촌장은 이사회의 동의를 받아 회장이 임명하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사무총장은 대한체육회 실무를 총괄하는 직책이고 선수촌장은 국가대표 전체 선수와 감독을 관리하는 핵심 요직입니다. 만약 <인사규정>대로 문화체육부장관의 승인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면 대한체육회장의 인사권과 대한체육회의 자율성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대한체육회 정관을 검토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승인을 규정한 조항을 대폭 삭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이 요구를 수용해 지난 3월 25일 이사회에서 정관을 변경했고 4월 5일 대의원총회에서 정관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새로 바뀐 개정안을 보면 종전 문체부 장관 승인 사항 23개를 전부 협의 사항으로 바꿨습니다. 즉 무조건 문체부의 지시를 들을 필요가 없게 돼 자율성이 대폭 확대된 것입니다.
이날 대의원총회가 끝난 뒤 대한체육회는 국내 전 언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4월 5일(화) 오후 2시 올림픽파크텔 올림피아홀에서 2016년도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원 취임 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승인사항을 삭제하는 등 대한체육회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으로 정관 개정을 의결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제적 대의원 94명 중 65명이 참석하여 올림픽헌장에 따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대한체육회(KOC)에 보내온 정관 수정의견을 대폭 반영한 정관 개정을 의결했다.

관리단체 지정 시 임원 해임권 삭제 및 회원종목단체 징계 시 국제경기연맹과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을 제11조, 제12조 등에 추가하였다. 회원종목단체 강등·제명 시에는 정당한 소명 기회를 부여토록 제13조에 명시하였다. 또 체육단체 통합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체육회 부회장, 이사, 감사 선임과 사무총장, 선수촌장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승인사항을 삭제했다.

회원종목단체의 임원에 대한 체육회의 임원 인준권도 삭제됐으며, 예산편성과 결산, 정관과 제·개정 변경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승인사항을 협의사항으로 각각 개정 의결했다."


대한체육회는 국내 전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분명히 “사무총장, 선수촌장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승인사항을 삭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3월21일에 제정한 <인사규정>은 지금까지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인사규정>에 따르면 대한체육회 사무총장과 선수촌장은 여전히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오는 10월5일 선거를 통해 신임 대한체육회장을 선출합니다. 새 회장이 핵심 요직인 사무총장과 선수촌장을 임명할 경우, 현재 정관에 따르면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지만 <인사규정>에 따르면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당연히 정관이 상위법이고 <인사규정>은 하위법입니다. 만약 대한체육회장이 2명을 임명한 뒤 정관에 따라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요청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에 대해 문화체육부 김용섭 체육정책과장은 “인사규정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한체육회 박동희 홍보실장은 “정관에는 협의사항으로 돼 있고, 하부 규정인 인사규정에는 의무사항으로 돼 있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인정했습니다.

대한체육회 스스로 자신들이 만든 최고 규범인 정관을 지키는 대신 문체부의 힘이 무서워 <인사규정>을 따르겠다고 밝힌 셈입니다. 하지만 이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정관과 <인사규정>이 다를 경우 당연히 상위법인 정관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면 대한체육회는 왜 지난 4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자율성을 대폭 확대한 정관을 개정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국민과 언론을 우롱한 것입니다.   

대한체육회가 국민을 속인 것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4월5일 제정된 정관 제63조(규정 제·개정 등) 제 1항에 따르면 “체육회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규정 중 예산을 수반하는 ‘직제’, ‘인사’, ‘보수’ 등에 관한 규정, ‘시·도체육회규정’, ‘회원종목단체규정’, ‘가입·탈퇴규정’ 및 ‘생활체육지도자 배치 및 근무규정’을 제·개정하거나 회원종목단체를 가입시킬 경우(회원종목단체의 승격을 포함한다)에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주무부처와 협의하여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정관의 내용에 따르면 대한체육회가 각종 규정을 변경할 때 문체부와 협의를 하면 되지 장관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한체육회는 이후에 각종 규정을 바꿀 때마다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어김없이 받아 왔습니다. 그 증거는 아래 사진에 나와 있습니다.
상위법인 정관과 하위법인 각종 규정의 내용이 곳곳에서 서로 충돌하는데도 대한체육회는 6개월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는 자율성을 대폭 강화한 정관을 만들었다며 문서까지 발송했지만 실제로는 문체부 장관의 예속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대한체육회는 국민과 국내 언론은 물론 IOC까지 기만한 셈이 됐습니다.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정관과 하위규정이 맞지 않는 부분은 개정할 필요가 있다. 대한체육회 독립성에 관련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의 교감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어쩔 도리가 없다”며 예산과 권력을 쥐고 있는 문체부의 지시가 없으면 대한체육회가 자진해서 바꿀 뜻이 별로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문체부의 간섭을 초래하고, 또 자체 정관과도 모순되는  각종 규정을 개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자율성을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자유 대신 복종을 선택한 대한체육회가 한국 스포츠 발전을 제대로 이끌 수 없는 것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중국 국가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아! 우리의 피와 살로 새 장성을 쌓자!” 출범 100년을 앞두고 있는 대한체육회는 안타깝게도 독립과 자율을 추구할 의지가 거의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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