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 정촌고분 (사진=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지난 2014년 용머리 장식이 달린 금동신발이 출토된 전남 나주 정촌고분은 1호 석실 조성과 성토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 만든 무덤으로 드러났습니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5세기 후반부터 7세기 초반까지 만들어진 정촌고분의 축조 기술과 구조를 확인하기 위한 발굴조사를 시행해 이 같은 사실을 찾아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축조기법은 영산강 유역의 고대 무덤에서는 처음 확인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무덤은 보통 피장자가 안치되는 중앙부를 제외하고 가장자리를 도넛 모양으로 동그랗게 먼저 성토합니다.
이에 대해 오동선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정촌고분의 독특한 입지가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오 연구사는 "영산강 유역 고분은 보통 평지나 낮은 구릉에 있는 데 반해 정촌고분은 해발 112m의 잠애산 비탈면에 홀로 조성됐다"며 "위쪽의 흙을 깎아내 1천600㎡ 넓이의 평평한 땅을 다졌고, 안정적으로 고분을 쌓기 위해 석실 조성과 성토를 함께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봉분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바깥쪽의 흙은 수평으로 다져 쌓았고, 축대를 설치해 고분 아래쪽을 보강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1호 석실과 옹관 2개, 목관 1개는 동시대에 조성됐고, 이후에 석실 2개와 석곽 4개, 옹관 4개가 고분 안에 추가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정촌고분은 한 변의 길이가 24∼26m, 높이는 9m 규모의 사각형 무덤으로, 국내 최대의 아파트형 고분인 복암리 3호분과는 약 500m 떨어져 있습니다.
오 연구사는 "정촌고분은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점으로 미뤄 이 지역을 관할한 유력자가 묻혔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독특한 축조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옹관이라는 영산강 유역의 장례 풍습을 계승했다"고 평했습니다.
한편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정촌고분의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기 위해 법의학, 곤충학, 영상공학 등 학제간 연구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연구소는 피장자의 발목뼈에서 수습한 파리 번데기 껍질을 조사해 당시의 매장 환경과 기후 정보를 파악하고, 시신 처리 과정과 장례 풍습을 추론할 방침입니다.
또 중요한 유물은 3차원 입체영상으로 기록하고, 금동신발은 복제품을 만들어 연구 자료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연구소는 정촌고분의 발굴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오는 7일 오전 11시 학술회의를 열고, 오후 2시30분부터 4시까지는 현장 설명회를 개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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