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의 사소하게] 부활하라 돈화문!

이주형 기자 joolee@sbs.co.kr

작성 2016.09.05 10:22 수정 2017.02.14 19:2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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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고궁으로 경복궁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고궁 역시 경복궁일 것이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에 자리 잡은 광화문 광장에서 보는 경복궁과 인왕산-백악산- 북한산(특히 보현봉)으로 펼쳐지는 스카이라인은 언제 보아도 예술이다. 어느 외국인이 이 뷰(view)를 동영상으로 보고는 "컴퓨터그래픽으로 합성한 장면이지요?"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경복궁은 1395년 태조 4년 때 건립한 조선의 정궁(正宮)이자 법궁(法宮)이다. 하지만 경복궁이 실제로 임금이 거주하고 집무하는 법궁으로 쓰인 건 생각보다 길지 않다. 경복궁이 임진왜란(1592년) 때 불탄 이후로 오랫동안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됐기 때문이다. 경복궁은 소실된 지 약 270년 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강력한 의지로 중건됐다. 그렇다면 그동안 조선의 왕은 어디에 거처하며 조정을 이끌었을까?

바로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 동궐(東闕)로 불리는 창덕궁이다. 자연의 형세를 거스르지 않은 건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된 창덕궁은 경복궁보다 더 오랫동안 사실상 조선의 법궁 역할을 해왔다. 근정전(경복궁의 정전)보다 인정전(창덕궁의 정전)에서 조선의 많은 역사들이 결정됐던 것이다. 
돈화문
광화문이 경복궁의 정문이듯,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이다. 보물 383호인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의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문이다.

육조거리로 이어지던 광화문 월대(현재는 그냥 차도로 그 위에 색이 칠해져 있을 뿐이다) 앞쪽을 광화문 광장으로 부르듯 돈화문 앞은 돈화문 광장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 궁궐과 종묘가 이어지며 막혀있던 곳에 일제가 길을 뚫고(현재의 율곡로) 광복 후에도 이 길 위에 도로 포장이 계속되다 보니 기단부가 아스팔트로 덮여버렸다. 그래서 돈화문에 가보면 돈화문 앞 지표면이 도로보다 낮은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돈화문 광장은 언감생심, 한때 조선 왕조의 메인스트리트였던 곳이 매우 옹색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돈화문로에는 창덕궁이 사실상 법궁 역할을 하면서 각종 국가 행사가 열리다 보니 그 행사와 관련된 기관, 점포나 인력들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성악연구회, 이왕직 아악부 등이 돈화문로에 있었다. 지금도 돈화문로에는 국악기 상이나 국악 교습소가 군데군데 남아서 이 일대의 역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의 역사성은 쉽게 사라지는 듯해도 의외로 생명력이 질기다.

돈화문 바로 맞은편에 지난 1일 돈화문국악당이 개관했다. 최근까지 주유소(원래 마구간이 있던 자리였을까)가 있던 자리에 한옥이 품은 국악 공연장을 들였다. 건너편의 주유소(궁궐 앞에 왜 주유소가 두 개나 들어섰는지 그 연유가 궁금하다)도 헐고 민요박물관으로 만들고 있다. 

 

돈화문국악당 SCOPE 영상보기 ▶ http://tvcast.naver.com/v/1084993

선진국에 가면 자신들의 역사를 어떻게든 드러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문명을 뽐낸다. 우리에게는 아직 궁궐들이 남아 있고 한양도성이 있고, 삼대문이 있다. (남대문, 동대문, 북대문, 서대문은 소실) 많은 부분이 훼손됐고 최근에야 복원이 시작하고 있지만 말이다. 돈화문 국악당이 돈화문 광장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