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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쟁' 때문에 청문회 보이콧?…옥시가 한국을 우습게 보는 이유

마지막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가 남긴 것

[취재파일] '정쟁' 때문에 청문회 보이콧?…옥시가 한국을 우습게 보는 이유
지난 2일 오전,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위의 마지막 공개 청문회 현장. 전체 의석의 절반이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바로 새누리당 의원들이 있어야 할 자리였습니다. 전날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에 반발하며 여당 의원들이 국회일정을 보이콧 하기로 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 일정까지 불참한 겁니다.
 
여당에서 혼자 참석했던 새누리당 간사 김상훈 의원은 겸연쩍은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능하면 전원 참석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했지만 때로는 의원님들 개인의 소신과 당의 여러 가지 입장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원 참석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제가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음을 양해해 주시고.."
 
이날 청문회에 불참한 건 여당 의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신현우 전 사장을 비롯해 옥시의 전 경영진 등 증인 12명도 대거 불참했습니다. 납득할 만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제품 개발 출시에 관한 증인들도 각종 지병과 심신미약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옥시 측으로부터 흡입독성 실험을 의뢰받은 서울대, 호서대 교수도 참석을 거부했습니다. '이 순간만 넘기면 된다'는 태도로 보였습니다. 이 나라 국민 뿐 아니라, 국회와 청문회의 권위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욕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입으로는 비판했지만 힘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청문회를 이끌어야 할 국회의원들도 '정쟁'과 '당의 방침' 때문에 의석을 비우는데 누가 누굴 지적하고 비판하겠습니까. 이날 열린 청문회는 옥시를 비롯한 가해기업들이 우리를 왜 지금도 '봉'으로 여기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산소통 들고 온 어린이
그간 많은 피해자들이 국회를 직접 찾아 청문회 과정을 참관했습니다. 얼마나 기대가 컸을까요. 5년 만에 드디어 열리는 청문회에서 진실이 밝혀질까,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을 지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산소통까지 짊어지고 국회를 찾았던 어린 피해자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청문회는 피해자들에게 실망을 넘어 참담함을 안겨줬습니다.

'정견의 다름'으로 얼마든지 다툴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몸싸움도 벌일 수 있고, 장외투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쟁의 수단으로 삼을 게 있고, 절대로 그래선 안되는 게 있는 겁니다. 국민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고, 특히나 외국계 기업도 깊숙하게 연루된 사건입니다. 특히나 마지막 청문회였습니다. 마치 제가 국제적 망신을 당한 것처럼 부끄러웠습니다.

같은 날 오후, 국회의장과 여당이 합의하면서 국회는 정상화됐고, 저녁 8시가 넘어 청문회도 다시 열렸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되돌리기엔 한참 늦었습니다. 그들이 입이 마르도록 외치는 민생, 국민의 생명, 안보는 과연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쟁과 이번 청문회는 별개'라고 선을 그으면서, 여당 의원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 나라 국민으로서 얼마나 뿌듯했을까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특위는 이날 종합감사 이후 영국 옥시 본사 방문을 재추진하는 등 10월까지 활동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특위가 거둔 성과도 적지 않습니다. 옥시 본사가 가습기살균제 독성실험 결과를 은폐하는 데 직접 개입한 정황 (8월 28일 8뉴스), 또 불법 유통되고 있는 '살균제 화장품' (8월 22일 8뉴스) 등도 그 중 일부입니다. 더 나아가 소비자에게 유통되는 화학성분에 대한 전체적인 제도적 관리도 특위가 반드시 마무리해야 할 부분입니다. 지나간 청문회는 어쩔 수 없더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유종의 미를 거둬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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