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호/사회자:
뉴스 인사이드 차병준 SBS 선임기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차병준 SBS 논설위원:
예. 안녕하십니까.
▷ 박진호/사회자:
오늘은 어떤 얘기 가져오셨나요?
▶ 차병준 SBS 논설위원:
오늘은 전통적인 경제 이론이 통하지 않는 경제 현실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보통 역설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죠. 저금리의 역설, 저축의 역설, 저유가의 역설. 이런 말들입니다.
경제 해법으로 제시된 정책들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나 호재로 기대했던 경제 변수가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 등을 이렇게 역설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전통적인 이론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런 역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 상황에 대한 예측이 힘들어지고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 경제가 딱 그 상황이죠.
▷ 박진호/사회자:
전문가들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반신반의하는 이유가 이런 데에 있는 것 같은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세계 경제 불황의 터널이 아주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경기 회복이 안 되는 상황. 이것도 저금리의 역설인 거죠?
▶ 차병준 SBS 논설위원:
네. 그렇습니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시중에 자금이 풍부합니다. 물가도 오르죠. 반대로 불황일 때는 시장에 돈이 마르게 됩니다. 물가는 내려가고요. 그래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서 시장에 자금을 더 공급하는 게 통화정책입니다.
가계에는 소비 여력을, 기업에는 투자 여력을 늘려주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죠. 이게 경제 이론의 상식입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경쟁적으로 금리를 낮춰서 경기 부양에 나섰죠.
낮추고 낮추다 제로 금리를 넘어서 유럽 일부 국가, 그리고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까지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기준금리가 1.25%입니다. 사상 최저 수준이죠.
▷ 박진호/사회자:
요새는 저축을 해도 별 이자 소득도 없고.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 차병준 SBS 논설위원:
그렇습니다. 세금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라는 말까지 있죠. 그런데 이렇게까지 금리를 내렸어도 기대했던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돈 쓰라, 돈 쓰라 하면서 금리를 내린 것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저축을 더 했습니다. 마이너스 금리까지 내린 나라들의 가계 저축률이 모두 올라갔습니다. 우리 가계 저축률 2011년 3.7%였는데 지난 해 8.8%로 올랐습니다. 많이 올랐죠.
▷ 박진호/사회자:
이게 이자 소득도 적은데 왜 이런 거죠?
▶ 차병준 SBS 논설위원:
다양한 해석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불안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무슨 불안감이냐. 생전 본 적이 없는 초저금리죠. 마이너스 금리,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이죠. 이렇게 사람들의 불안감을 더 키워서 지갑을 더 닫게 하고 저축을 하게 했다는 겁니다. 불안이 가져온 저금리의 역설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박진호/사회자:
저금리지만 또 어디 투자하는 게 불안하고. 그러니까 저축을 하게 된다. 복잡하네요. 저금리가 소비와 투자로 연결된다. 이게 상식인데. 이게 또 연결되지 못하고, 이것도 역설이겠네요?
▶ 차병준 SBS 논설위원:
그렇습니다. 저금리의 역설이 저축의 역설로 이어지는 겁니다. 개인적으로야 허리띠 졸라매고 저축을 하는 게 불황을 이기는 방법일 수 있죠. 그런데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그러면 시장이 침체됩니다. 그러면 소비가 감소하고, 소비 감소하면 생산이 감소하고, 기업 매출이 줄어들면 실업률이 늘죠.
결국 소득이 줄어든 개인의 소비는 또 감소하고. 이런 악순환으로 불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경제학자 케인즈가 1930년대 세계대공황 와중에 주장한 말입니다. 저축의 역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예로 일본을 많이 듭니다.
일본은 1990년에 연 6%였던 금리를 1995년에 연 0.5%까지 낮췄습니다. 그런데 가계 저축률은 10%대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소비 늘리기 위해서 세금을 깎아주면서 온라인으로 입금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 돈도 빼 쓰지 않고 그대로 은행에 저축해 남았습니다.
▷ 박진호/사회자:
다 모아놓는 것이로군요. 무조건.
▶ 차병준 SBS 논설위원:
예. 소비 회복을 위해 푼돈이 은행에서만 도는 거죠. 돌면서 결국 일본의 20년 장기 불황 겪은 셈이 됐습니다.
▷ 박진호/사회자:
그러면 한국은행 같이 중앙은행, 통화 정책을 하는 기관들이 고민이 많겠네요. 뭘 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저유가, 기름값이 싸면 우리나라는 석유를 전량 수입하니까. 우리 경제에는 항상 호재였는데. 이제는 또 아니에요. 이게 불확실성 키운다, 이런 얘기만 나오고. 어떻게 된 거예요?
▶ 차병준 SBS 논설위원:
그게 저유가의 역설인 것이죠. 기름값이 내려가면 기업들은 생산 비용을 줄이고, 개인들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됩니다. 여건이 좋아지는 것이죠. 그런데 유가 하락이 공급 과잉, 그리고 세계 경제 침체와 겹친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저유가의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연초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내려앉으면서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던 상황 잘 말해주고 있죠. 유가 하락이 어떻게 저주로 나타나는지 우리 경제 얘기로 한 번 풀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재정 수입의 상당 부분을 원유 판매에 의존하는 중동 산유국, 그리고 신흥국의 경제가 어렵게 되죠. 이는 곧바로 조선, 건설 같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력 수출 분야에서 수주 감소로 나타났습니다.
▷ 박진호/사회자:
우리 고객들의 주머니가 비는 것이군요.
▶ 차병준 SBS 논설위원:
그렇습니다. 중동 지역 수주액 지난해 147억 달러입니다. 한 해 전에 비해서 절반 정도로 줄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이런 조선 빅 3. 지난해 적자 규모가 사상 최대인 8조 원에 달하게 된 배경입니다.
▷ 박진호/사회자:
조선업계 지금 위기를 맞았잖아요.
▶ 차병준 SBS 논설위원:
지금 다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는 것이죠. 저유가가 일부분에서는 또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원유 가격이 내려가면 석유화학제품 가격도 떨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난해 우리나라 주력 수출 품목인 석유 제품은 한 해 전보다 36%, 석유화학제품은 21% 감소했습니다.
▷ 박진호/사회자:
사실 이게 좋아야 되는 건데.
▶ 차병준 SBS 논설위원: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디플레이션 걱정도 있습니다. 원자재인 석유 가격이 하락하면 물가도 따라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0.7%로 사상 최저를 기록한 것도 이렇게 유가 하락의 영향이 큽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저유가의 역설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 박진호/사회자:
최근에는 우리나라 신용 등급, S&P가 신용 등급을 올려줬는데. 이게 반가운 뉴스고 항상 정권 차원에서는 홍보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경제 상황에서 이게 반갑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건 왜 그런 겁니까?
▶ 차병준 SBS 논설위원:
그것도 신용등급 상향의 역설이라는 말로 불리는 거죠. 반가운 뉴스인데 반갑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상황. S&P, 국제신용평가사죠. S&P가 우리 국가신용등급 사상 최고 AA 등급으로 올렸습니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영향만 주는 게 아니라는 거죠. 신용등급 상향 조정이라는 것은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것이 더 안전해졌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경제 상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신용등급 상향 조정 이후에 외환 시장에서 원화 가치가 급등을 했죠. 그러면 우리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앞서도 디플레이션 말씀드렸습니다만. 가뜩이나 저물가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 속의 물가 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을 키우는 상황. 이런 상황 등이 신용 등급 상향의 역설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박진호/사회자:
상향 조정을 사양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이번에는 실물 경제로 한 번 가보죠. 삼성전자의 실적도 역설이라는 말이 나오죠.
▶ 차병준 SBS 논설위원:
예. 요즘 주식 시장 얘기 먼저 시작해 볼게요. 최대 화제 중 하나가 삼성전자가 아니겠습니까. 사상 최고치 행진을 연일 벌였었죠. 올 들어서만 50% 이상 올랐었습니다. 상승의 원동력은 실적입니다.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증가한 8조 1,4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국내 대표 기업이죠. 삼성전자의 실적 호조. 당연히 우리나라에 좋은 뉴스죠.
▷ 박진호/사회자:
의존도가 높잖아요.
▶ 차병준 SBS 논설위원: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삼성전자의 실적이 좋을수록 삼성전자에 대한 우리 경제의 의존도 심화라는 고민도 깊어지는 것입니다.
▷ 박진호/사회자:
오히려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는.
▶ 차병준 SBS 논설위원:
상반기 삼성전자 영업이익 합계가 14조 8,200억 원인데. 이 액수는 우리나라 30대 그룹이 벌어들인 이익의 절반을 조금 밑돕니다. 국가 경제 전체의 경제력이 삼성전자 한 곳에만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이죠. 대기업 쏠림 현상이 심각한 우리 경제에서 특정 기업의 경제력 집중도가 높아지는 부정적인 상황이 심화되는 것. 이게 바로 삼성전자 실적의 역설입니다.
▷ 박진호/사회자:
그렇다고 삼성전자 보고 장사하지 말라고 하는 수도 없고.
▶ 차병준 SBS 논설위원:
그렇죠. 상황이 그렇다는 게 바로 역설인 겁니다.
▷ 박진호/사회자:
예. 이게 계속 역설 말씀해 주셨는데. 듣고 보니까 참 골치가 아픈데요. 이게 무슨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 차병준 SBS 논설위원:
그렇습니다. 우리 경제가 이러저러 역설에 갇혀있는 상황인 거죠. 경제학자의 정의를 어떤 사람이 이렇게 내렸습니다. 경제학자란 전날 자신이 말한 것이 왜 틀렸는지 다음날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경제학자 자크 아달리가 한 말인데요. 지금 말씀드린 경제 이론이 맞지 않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 박진호/사회자:
아주 냉소적인.
▶ 차병준 SBS 논설위원:
역설이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도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 단순히 역설로 끝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경제적 파장입니다. 경제 이론에 따라서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 결과가 예상대로 안 됐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크다는 것입니다. 금리 인하를 했는데 경기 회복은 안 되고 가계부채만 늘어나는 상황이 잘 설명해 주죠.
이렇게 늘어난 가계부채가 그냥 가계부채 늘어난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이후에 정책 운용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책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닌 거죠. 그러니까 역설에 갇힌 경제 상황에서는 아주 더 세심한 정책 대응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박진호/사회자:
우리가 또 상식적으로 지금 이런 상황인데 왜 이렇게 안 하느냐. 이렇게 얘기하기도 어렵게 됐네요. 잘 들었습니다.
▶ 차병준 SBS 논설위원:
네. 감사합니다.
▷ 박진호/사회자:
지금까지 SBS 보도국 경제부 차병준 선임기자였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