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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연장에 숨은 '소리의 과학'

[취재파일] 공연장에 숨은 '소리의 과학'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공연으로 롯데 콘서트홀이 막을 열었습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생긴지 28년 만에, 클래식 공연에 가장 적합하게 설계됐다는 대형 음악당이 서울에 새로 문을 연 겁니다. 클래식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 공연장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아마 ‘음향’일 겁니다.
 
그래서 지난 겨울 개관을 목표로 음향 테스트가 한창 진행 중이던 롯데 콘서트홀에 다녀온 이야기를 여기서 간단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 때 알게 된 공연장의 숨은 ‘음향의 비밀’에 대해서 말이죠.  
이곳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객석이 무대를 포도송이처럼 에워싸는 형태의 ‘빈야드(vineyard: 포도밭)’ 스타일로 설계된 점입니다. 이 경우 부채꼴 스타일의 공연장에 비해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워 연주자와 관객의 친밀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롯데 측은 일본의 산토리홀, 미국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빈야드 스타일 공연장의 음향을 담당한 도요타 야스히사 씨를 음향 컨설턴트로 참여시켰습니다.
제가 방문한 날엔 도요타 씨도 콘서트홀을 찾았는데, 그렇게 시작된 도요타 씨와의 대화는 음향설계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도요타 씨에 따르면 음향설계의 첫 단계는 건축가와의 협의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완공된 롯데 콘서트홀을 보면 객석의 난간이 볼록하게 설계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소리가 주변에 잘 퍼지도록 하기 위한 겁니다.
객석의 윗부분도 겉으로 볼 때는 오목해 보이지만, 사실은 멋진 디자인을 고려한 교묘한 위장입니다. 천으로 마감된 아치형 구조물 내부의 실제 천장은 소리가 한 곳으로 모이는 걸 막기 위해 계단 형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멋진 외형을 추구하는 건축가와 좋은 음향을 추구하는 음향전문가가 협의를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이런 식으로 설계가 완성되면 모형이 만들어집니다. 실제 콘서트홀을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이 모형은 높이가 2미터에 달하는, 그 자체로 상당한 크기의 구조물이었습니다. 도요타 씨팀은 이 모형 안에서 실제 소리를 내 음향이 설계 의도에 맞게 구현되는지를 실험했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고 최종 설계도를 완성시키는 거죠.   
설계도에 따라 실제 공사가 끝나고 인테리어까지 마무리되고 나면 음향 테스트가 진행됩니다. 제가 방문한 날엔 잔향(음원이 진동을 그친 뒤에도 음이 계속 들리는 현상)시간 테스트가 이뤄졌는데, 무대의 중앙에 놓인 스피커에서 저음부터 고음까지 다양한 주파수의 소리를 내보내 잔향을 측정했습니다. 실제 연주를 들어보며 유해한 반사음이 있는지 찾아내고 이를 제거하는 과정도 거치는데, 제가 방문한 이후에도 여러 연주자들이 방문해 콘서트홀 음향 테스트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이런 설명을 들은 뒤에도 궁금한 건 남습니다. 공연장 내부 자재로 나무가 많이 사용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도요타 씨는 뜻밖의 답변을 내놨습니다. 그는 “목재가 광물이나 석재에 비해 음향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데이터는 사실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클래식 공연의 경우 현악기 연주자들이 많다 보니 나무의 질감을 편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설계에는 과학만큼 심리적인 요소도 중요하다고 귀띔했습니다.
 
아름다운 겉모습 속에 최적의 음향을 구현해내기 위한 다양한 비밀이 숨어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공연장이란 공간이 한결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외국을 여행하다 저명한 오케스트라의 공연에라도 가게 된다면, 앞으로는 연주를 기다리는 동안 공연장의 모습도 찬찬히 뜯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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