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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쪽방촌의 혹독한 여름나기…"차라리 겨울이 낫다"

서울에는 취약계층이 거주하는 쪽방촌이 다섯 곳 정도가 있습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남대문, 동대문, 돈의동, 창신동, 영등포 등 쪽방촌 5곳에 거주하는 주민은 3천5백여 명 정도로 파악됩니다.

쪽방촌 주민의 95%는 혼자 사는 1인 가구입니다. 한 두 평 남짓한 방에 몸을 겨우 누울만한 공간밖에 없어 선풍기조차 사치스런 곳이기도 합니다. 쪽방촌이 에너지 빈곤지역으로 분류돼 겨울에는 각종 난방비 등 지원이 되지만 여름에는 별다른 정부 지원이 없습니다.

그나마 지자체에서 생수와 선풍기 등을 지원하기도 하는데 아직 선풍기도 없이 사는 주민도 많습니다. 선풍기를 돌리면 그만큼 전기료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있어도 돌리지 않고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 쪽방촌 골목 한 낮 43℃…실내도 35℃ 넘어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쪽방촌 주민의 여름나기는 더 혹독합니다. 기자가 지난 12일 서울의 한 쪽방촌을 방문해 실제 얼마나 더운지 온도를 재봤습니다. 폭염이 절정에 달하는 오후 3시 쪽방촌 골목의 온도는 무려 43도까지 치솟았습니다.

비좁은 골목에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그나마 외부 습도는 35% 정도로 높지 않았지만 가만히 있기만 해도 푹푹 찐다는 표현이 실감날 정도였습니다.

이번엔 쪽방촌 내부로 들어가봤습니다. 2층 다락방으로 올라가자 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좁은 쪽방에는 창문이 없었고 그나마 한사람 앉아있을 정도의 거실에 작은 창문 하나가 덩그러니 달려 있었습니다. 바람이 통할 리도, 환기가 될 리도 없는 구조였습니다.

기자의 몸에선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실내 온도를 재보니 35도였고, 습도는 40%를 훌쩍 넘었습니다. 외부보다 온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습도가 높아 몸을 움찔거리기만 해도 땀이 났던 겁니다. 
● ‘무더위 쉼터’있는데 왜 안가냐고 물었더니…“그림의 떡”

쪽방에 사는 70대 노인에게 이렇게 더운데 어떻게 사느냐고 여쭤봤습니다. 인근 무더위 쉼터에서 좀 쉬다 오면 좀 낫지 않겠냐고 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고혈압에 심장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서 끼니때마다 먹는 약이 수십 알인데 이것저것 챙겨가기도 번거롭고, 무엇보다 쉼터까지 걸어서 가야하기 때문에 거동하기 불편한 나로서는 차라리 움직이지 않고 쪽방에 있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올해 여름은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옷이 흥건히 젖을 정도이고 열대야로 밤에도 잠을 못자 일어나면 픽 쓰러지기 일쑤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쪽방촌 주민에게 폭염은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쪽방촌이 다른 주변 지역보다 더 무더운 이유가 있습니다.

시민단체인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볼트시뮬레이션이 서울지역 쪽방촌 5곳의 위치를 분석한 결과 서울에서도 가장 무더운 지역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7~8월 두달 동안의 1일 최고 기온자료를 평균해서 일 최고 기온분포도를 작성해봤더니 5곳 모두 한낮의 열기가 가장 뜨거울때 서울에서 최고의 기온분포를 보이는 지역에 쪽방촌이 다 들어가 있던 겁니다.

또 쪽방촌 5곳중 4곳은 일 최저 기온이 서울에서 최고로 높은 지역에, 1곳은 두 번째로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열대야에 더 취약했습니다. 쪽방촌에 들어서면 찜통 같은 더위를 더 느낀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입니다.
● 쪽방촌 주민 70% 건강 이상 호소…평균 수면시간 3.9시간

이렇게 폭염에 취약한 주거환경에 위치마저 가장 무더운 지역에 있다 보니 주민의 건강이 좋을 리 없습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돈의동 사랑의쉼터,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이 주민 20명의 건강을 설문조사한 결과 70%가 폭염으로 건강이상을 호소했습니다.

어지럼증, 두통, 땀을 많이 흘림, 극심한 무력감과 피로, 호흡곤란 등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특히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조사대상자의 85%가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고 답했는데 수면 시간이 평소 때보다 2시간 이상 줄어든 3.9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스마트 밴드를 이용한 수면시간 측정에서는 숙면시간도 평균 2시간 정도로 평소보다 짧았습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낮에 무기력감이나 피곤함을 느끼게 됩니다.

연구에 참여한 김영민 삼성서울병원 선임연구원은 “숙면을 못 취하고 밤새 깨어있는 경우도 봤다. 당시 밤의 온도가 32~33도 정도로 계속 유지되고 있어 폭염 더위 때문에 수면에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상황이 심각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수면장애로 인해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상태가 발생하고 특히 저혈압 주민은 혈압이 더 떨어지는 모습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쪽방촌은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곳입니다. 그동안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지원도 늘긴 했지만 올해처럼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철에는 오히려 겨울보다 더 혹독한 환경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쪽방촌은 아니지만 40년 넘은 서울 마포의 다세대 빌라에서 혼자 살고 있는 80대 할머니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겨울이 차라리 더 낫다.  추우면 옷이라도 하나 떠 끼어 입으면 되지만 더우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낮에는 폐지라도 주우러 다녀서 그나마 더위를 잊어보지만 밤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바깥만 들락날락하며 밤을 지새우곤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습니다.

8월 중순이 지나면 맹위를 떨치던 폭염도 차츰 수그러들 전망입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쪽방촌의 무더위도 물러가겠죠. 정부와 지자체는 에너지빈곤층 대책에 허점은 없는지 되짚어보고 실질적인 폭염 지원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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