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9일 나가사키(長崎) 평화기념식에 참석한 뒤 여름휴가에 들어갔다.
이번 휴가는 7·10 참의원 선거 승리로 중·참의원 모두에서 개헌 발의 선인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둔 가운데 갖게 된 것이어서 의미가 컸다.
아베 총리는 이번 휴가를 통해 그가 당면 목표로 생각해 온 개헌 전략과 중의원 해산 문제 등에 대한 전략을 가다듬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난 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영상메시지를 통해 생전퇴위 의사를 밝히면서 계획이 어긋나게 됐다.
여권 내에서는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 의사 표명 당시에만 해도 부정적인 입장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생전퇴위를 위한 후속 조치와 개헌 논의를 함께 진행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생전퇴위 찬성 의견이 82%(교도통신)에서 84%(아사히)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여권 내 기류도 급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이 일왕의 입장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상황에서 생전퇴위를 위한 후속 조치에 착수하지 않을 경우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론이 고조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아베 총리의 고민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 여론을 고려하면 생전퇴위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고, 이를 위해서는 조만간 한시법 제정 또는 현행 왕위 계승 등의 내용이 담긴 '황실전범(皇室典範)'의 종신제 규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왕의 중도 퇴위에 따른 후속조치 마련에는 시간이 상당하게 소요된다는 것이 문제다.
퇴위한 아키히토 일왕에 대한 대우, 호칭, 거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태다.
아베 총리로서는 생전퇴위 후속조치와 개헌 추진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이 최선이지만, 국민의 시선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과거 두차례 진행됐던 왕실 제도 관련 정부 논의가 짧게는 7개월, 길게는 10개월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에서는 여성 및 여계 일왕 인정 여부를 놓고 전문가회의를 설치해 10개월간 논의를 벌였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했다.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에서도 여성 미야케(宮家·왕족 여성이 분가한 후에도 왕족 신분을 유지하게 하는 것) 인정 여부를 중심으로 7개월간 논의를 했지만 역시 흐지부지 끝났다.
과거를 기준으로 해도 아무리 서둘러도 10개월 안팎은 걸린다는 얘기다.
아베 총리는 당초 다음달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국회 헌법심사회를 재가동해 개헌 논의에 탄력을 붙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왕의 생전퇴위에 따른 후속조치 검토에 착수하고,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이에 집중될 경우 개헌을 위한 당초 일정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질 수 있는상황이다.
이미 제1야당인 민진당 고위 관계자는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헌법심사회의 논의 대상에 대해 "우선 개헌보다도 생전퇴위를 우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왕의 지위 등이 헌법에 규정된 만큼 국회 헌법심사회가 재가동될 경우 생전퇴위 문제를 최우선해서 논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자민당 고위 관계자는 "생전퇴위 문제와 개헌 문제는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만큼, 생전퇴위 논의를 위한 별도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전퇴위와 개헌 논의가 뒤섞일 경우 긴급사태 조항 등 아베 총리와 여권이 추진하는 개헌 항목에 대한 검토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또 생전퇴위 입장 표명은 아베 총리가 개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중의원 해산 카드의 시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7·10 참의원 선거 이전에 거론됐던 중의원 해산 카드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내 가능성도 제기돼왔다.
개헌 정국에서 분위기 쇄신을 위한 승부수로 던질 수 있는 카드지만 생전퇴위 변수로 인해 정치권의 유동성이 커지면서 아베 총리로서도 복잡한 퍼즐을 풀어야 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번 여름 휴가 이후 아베 총리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런 점들 때문이다.
한편 아베 총리는 9일밤 야마나시(山梨)현 나루사와(鳴澤村)에 있는 별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그는 오는 20일까지 휴식을 취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0일과 11일 이틀 연속 인근 골프장을 찾아 지인들과 라운딩을 하는 등 휴식을 취하면서 정국 구상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휴가를 마친 뒤에는 오는 2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하고, 27일부터는 제6회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에 참석하기 위해 케냐를 방문한다.
이어 다음달 초순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과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담에 잇따라 참석하는 등 정상외교에 힘을 쏟는다.
(연합뉴스)
아베, 일왕 생전퇴위 정국서 휴가…개헌 전략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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