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3시 뉴스브리핑] 권병현 전 주중 대사 "한중 관계 가까워지려면 시간 필요"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3시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3시 뉴스브리핑> 월~금 (03:00~04:3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권병현 전 주중대사


-1992년 한중 수교 극비 추진…아내에게도 말 못 해. 미국에도 수교 3일 전 통보
-한중 수교, 우리 정부가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추진 
-한중 수교 당시 비난 많이 받아
-한중 관계 변화 위해선 중국에 인내심 갖고 시간 줘야
-중국의 사막화 현상, 우리나라의 문제…한중 미래 위해 중국 사막에 나무 심기 활동

---------------------------------------------------------------------

Q. 대사님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Q. 대사님께서 중국에 대사로 가신 게 1998년입니까?

맞습니다.

Q. 그러면 김대중 정부 시절인데요.

그렇죠.

Q. 그때와 지금의 한중관계 평가해보면 어떻습니까?

네. 그때도 그렇지마는 1992년 한중 수교 그 당시부터 시작을 해서 지금까지를 보면 아마 차이가 상전벽해, 소위 천지개벽이라고 할 정도의 변화가 많이 생겼죠.

Q. 상전벽해, 천지개벽이다? 네. 그런데 그럼 92년에 당시 한중수교가 이루어질 때 말이죠. 그때는 노태우 정부 때일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네.

Q. 그때 물밑협상의 대표로 참석을 하셨다. 뭐 어떤 숱한 고비들이 있었겠네요?

그렇죠. 그게 극비 비밀 교섭이었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당시 김일성이 살아있고 대만하고 우리하고 정식 수교가 돼 있는 상태. 또 중국은 북한하고의 혈맹관계에 있는 상태하에서 김일성 모르게 우리는 대만 모르게 이걸 단기간 내에 해내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전혀 체제가 다르고 우리가 한국전쟁에서 맞붙었던, 그때만 해도 서로 적대관계에 있던 관계를 완전 반전시키는 작업이었기 때문에요. 쉽지 않았습니다.

Q. 그렇게 그런 협상이었다고 한다면 당시에 가족 분들한테도 내가 중국과의 수교협상을 맡아서 바쁠 것 같아, 이런 얘기도 못하셨겠네요?

네. 당시 이상옥 장관님이 저를 이제 불러가지고 이거는 극비외교 교섭인데 집사람한테도 얘기하지 말아 달라. 이제 저는 당신은 내일부터는 시골에 아버지가 병환이 나셔서 시골에 가있는 걸로 돼 있으니 그리고 당신을 도울 사람은 이게 극비교섭이기 때문에 극히 제한된 인원만 하기 때문에 당시 신정승 대사는 내일부터 병원에 입원이 되는 걸로 두 사람이 말하자면 숨은 장소에서 이것을 해내야 됩니다, 하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Q. 역시 대사님 말씀 듣다보니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대단한 사건들의 이면에는 항상 저희가 모르는 그런 뒷이야기들이 꼭 있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네.

Q. 근데 당시에 북한이 어쨌든 낌새를 챘다면서요? 마지막 부분에는.

그렇죠.

Q. 그래서 수교를 늦춰 달라, 중국에 이렇게 애걸하기도 했다고 하던데?

당시에 등소평옹이 살아있을 때에 등소평옹은 김일성하고의 아주 특별한 관계에 있었고 91년에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그게 이제 거의 마지막 방문입니다. 1년에 몇 번씩 방문해서 등소평부터 모든 지도자들 만나서 다 교류를 한 그 시기였기 때문에. 한중수교를 늦춰 달라. 우리가 미국하고 수교를 할 때까지는 일방적으로 하지 말라, 하는 것을 했고 등소평옹이 그걸 거절하지 않았던 걸로 아마 본인은 알았을 거예요. 근데 그런 상황 하에서 등소평은 여러 가지 정세 특히 국내적으로는 경제 개발을 서둘러야 되고 또 국제적인 정세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상황 하에서 우리하고의 수교를 하기로 이제 결단을 내려요. 이제 내리고 나서는 이게 알려지면 이게 오늘 알려지면 그냥 그 자리에서 깨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걸 극비교섭으로 하라고 했던 거죠.

Q. 당시 미국 정부도 이걸 사전에 알고 또 동의하거나 그런 절차가 있었습니까? 전혀 통보하지 않았습니까? 미국 정부에.

없었어요.

Q. 우리 정부가 순전히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했다?

우리가 이게 제가 이제 안 게 1992년 4월 말인데요. 교섭이 1992년 5월 달에 시작이 돼가지고 8월 24일에 수교가 완성이 되지 않습니까, 미국에게는 3,4일 전에 사전통보를 합니다.

Q. 우여곡절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한다, 이거 사실 그 당시 많은 국민들이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건데요. 이루어진 건데 당시에 노태우 대통령의 발표를 듣고 나서야 우리나라 국민들은 중국과 수교하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발표 장면을 저희가 영상으로 준비를 해봤습니다.

Q. 어쨌든 이렇게 중국과 수교는 됐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의 혈맹국가 아닙니까, 이런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는 사실. 그게 어떤 저희에게는 외교적, 역사적 의미가 있었던 사안일까요?  

아마 우리 한국외교사에서 한중수교는 가장 큰 사건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마는 가장 극적인 반전. 우리 그 당시에 한중수교가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겁니다. 심지어는 그 당시 상황에서 중국이 그런 결심을 하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웠고 물론 우리는 그 당시에 북방외교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마는 아마 아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먼저 왔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한테 큰 충격이 있었지 않나 또 저는 당시에 수교를 마치고 와서 심야방송에 나가서 아마 많은 패널리스트들한테 왜 이렇게 서둘렀느냐 또 대만을 이렇게 빨리 져버렸느냐. 하는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 참 이 세상 교섭이라는 것은 교섭도 어렵지마는 국민을 납득시키고 또 같이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참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Q. 그러니까 등소평이 당시의 국제 정세를 감안해서 김일성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한중수교를 결단한 것처럼 우리 정부도 중국과의 수교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고요.

네.

Q. 근데 여기서 제가 대사님께 꼭 여쭤보고 싶은 게요. 중국은 이제 수교 이후에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 됐습니다. 이제 우리나라한테 중국은 정말 중요한 국가가 됐는데요. 문제는 북한 문제가 불거지면 이거 하나하고요. 최근에 사드 문제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또 하나는 서해상에서의 불법 조업 문제. 이 2가지 사안이 불거지면 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라는 사실을 자꾸 우리 국민들이 잊게 돼요. 중국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자신들의 국가 이익만 생각하는 것 아니냐.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 정부는 어떤 외교를 해야 될까요?

네. 참 어렵기는 하지마는 정부는 국민들에게 끈질기게 이해를 시켜야 됩니다. 중국은 엄연한 외국이다. 지금부터 24년 전에는 우리 적대국이었고 북한하고의 혈맹관계에 있고 우리하고는 한국전쟁까지 겪은 나라인데 중국이 우리한테 다가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24년 전에요. 제가 메모를 보니까 1991년에 우리 교역이요. 불과 얼마였냐 하면 58억불이었어요. 작년에 2,200억 불이 넘었거든요. 이렇게 빨리 다가오는데도 또 중국은 북한하고 혈맹관계를 사실상 끊었습니다. 한중수교 교섭의 핵심 중에 하나가 북한하고 혈맹 끊어라. 우리가 대만하고 단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혈맹 끊어라, 하는 게 들어가 있는데 끊는다고 해서 그게 하루아침에 다 완전히 결속이 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다가오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 변화에 적응하는 그 과정을 국민들이 이해를 해야 된다고 나는 봅니다. 또 사실 서해 중국 어선들이 많이 쳐들어오고 있지만 사실 어부들 입장에서는 못 견딜 일이죠. 그러나 그 당시에 제가 있을 동안에 1999년, 2000년에 외교부장하고 한중어업협정을 체결했습니다. 그나마도 그게 어업협정이 있기 때문에 많이 지금 통제가 된 거예요. 근데 그 다음 단계는 이제 질서 있는 조업이 되겠죠. 이 단계를 국민들은 참고 하나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나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Q. 그러니까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 이런. 한때 적대국이었던 나라가 우리와 외교관계를 맺기까지도 그렇게 힘이 들었는데 앞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고요.

맞습니다.

Q. 대사님께서 은퇴하신 뒤에 중국에다가 지금 숲 심기 활동을 16년 동안 하고 계시다고 하는데요. 어떤 활동입니까? 이게.

네. 우리한테 가장 가까이 다가와 있는 쿠부치사막에 가서 보니까 황사가 우리한테 오는 주발원지에요. 결국 황사가 오면 이거는 내 문제고 우리 가족 문제고 국경이 없는 문제인데 중국의 사막화하고 우리 황사 문제는 같은 문제에요. 또 우리가 근 100년 간의 서로의 단절 기간이 있었는데 그 동안에 불신도 있었고 서로 간 소원한 관계도 있었는데 이 잃어버린 100년을 회복하는 길이 무엇이겠느냐. 한 번 생각을 해보니까 아 그래 사막에 같이 나무를 심고 황사도 막고 사막화도 막으면서 우리가 역시 같은 운명이지, 이것을 느끼게 하고 특히 거기에다가 양국의 미래 세대들을 같이 해서 나무를 심고 땀도 같이 흘리고 교류도 하고 춤도 추고 이렇게 할 때 앞으로의 우리 미래가 서로 공동의 미래가 길이 열리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네. 저희가 알아보니까 대사님이 그렇게 시작하셔서 지금까지 840만 그루. 16km 길이의 푸른 사막의 숲을 세우셨다, 이런 기록을 확인을 했습니다. 대사님의 민관 외교. 대중국 민관 외교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기를 저희도 기원을 하겠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