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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상의탈의' 태권도 선수…"내 꿈은 통가와 금메달"

"하룻밤 만에 뜬 스타가 아닙니다."

[취재파일] '상의탈의' 태권도 선수…"내 꿈은 통가와 금메달"
리우올림픽 개막식의 선수단 입장 순서. 206개 나라 1만 여명의 선수들이 관중의 환호와 함께 등장했다. 내로라하는 수퍼스타들의 등장에 개막식이 열린 마라카낭 경기장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포르투갈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2백 개가 넘는 선수단이 한 팀 한 팀 등장하다보니, 시간도 어마어마하게 소요됐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까지 선수단 입장이 이어지면서 관중들도 슬슬 지쳐갔다. 환호 소리도 볼륨을 확 줄인 듯 낮아졌다. 서른여섯 생애 첫 올림픽 개막식을 현장에서 목격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기자도 눈이 반쯤 감긴 상태에서 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휘파람과 박수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화들짝 놀라 전광판을 쳐다보니, 생전 처음 보는 나라, 통가의 입장 순서였다.

관중들의 관심은 온통 통가의 기수에게 쏠렸다. 훤칠한 키에 근육질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남자 선수, 근육이 잘 잡힌 상체에 보디빌딩 선수처럼 기름까지 발라 ‘자체발광’하고 있었다. 무명의 이 선수는 중계 카메라를 지긋이 응시하며 여유 있는 미소도 지어 보였다. 세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일까, 전 세계 네티즌들의 ‘신상 털기’가 시작되었다.

통가의 기수로 등장한 이 선수는 태권도 대표 피타 타우파타푸아이다. 올해 32살, 통가의 선수단 7명 가운데 최연장자이다. 개막식 이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에서 나온 근육질 선수, 게다가 태권도 선수라니...... 세계 언론은 이미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의 SNS에서 발췌해 낸 정보로 쓴 인터넷 기사가 넘쳐 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서 태권도를 시작했는지, 타우파토푸아가 직접 이야기한 건 없었다.
통가 태권도 선수 '피타 타우파타푸아'와의 인터뷰
그래서 무작정 찾아갔다. 선수들은 경기 때까지 훈련장에서 나라별로 시간을 정해 훈련을 한다. 마침 공개 훈련이 있었고, 30분 정도 먼저 찾아가 그를 기다렸다. 그런데 훈련 시간을 훌쩍 넘긴 이후에도 그는 훈련하러 오지 않았다. 30분 쯤 뒤 문이 열리며 한 선수가 들어오긴 했지만, 훈련장을 함께 쓰는 파푸아뉴기니 선수였다. 1시간 반, 정해진 훈련 시간이 다 지나갈 때까지 타우파타푸아는 훈련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스타’가 되어서 ‘경기’는 포기한 건가. 첫 날 취재는 불발이었다.

다음날 아침, 인터넷 기사를 훑어보다 타우파토푸아가 훈련에 나오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미국 NBC의 간판 아침프로인 ‘투데이쇼’에 출연하느라 훈련을 빼먹은 것이었다. 코파카바나 해변 스튜디오에 개막식 복장을 입고 출연하고 있었다. 여자 앵커들이 우루루 몰려 개막식 때 화제가 되었던 ‘기름’을 그의 상체에 발라주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연예인이 된 거구나... 하루 빼먹었으니 오늘은 나오겠지. 다시 훈련장으로 향하였다.

정해진 훈련시간은 가까워오고, 10분 정도 지나자 ‘또 방송 출연 하러 갔나’ 실망감이 몰려왔다. 바로 그 때, 큰 가방을 들고 선수가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우리 말 인사가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어라, 이 선수 우리말로 답을 한다. 일단 선수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훈련이 끝난 뒤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하고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타우파타푸아는 최신 팝송을 틀어 놓고 힘찬 기합 소리를 내며 훈련을 했다. 코치와 함께 막기, 차기를 집중적으로 한 시간 정도 훈련을 한 뒤,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선수, 카메라 앞에 상의를 탈의한 채 나타났다. 경기를 막 마친 수영선수도 아니고... 그렇게 통가 ‘근육남’과 ‘상의 탈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개막식 의상이 많은 화제가 되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어머니는 호주, 아버지가 통가 출신이다. 통가 대표로 선발된 뒤 기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을 했다. 첫 올림픽 출전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옷을 입고 싶었다. 모두가 입고 나오는 서양식 재킷을 입고 싶지는 않았다. 200년 전 선조들이 입었던 옷,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옷을 입고 싶었다.

-태권도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5살 때 엄마의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했다.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내가 개구쟁이여서 좀 반듯해 지라고 가르치신 듯하다(웃음). 바르고 성실한 아이가 되라며 태권도 클럽에 보냈다.

-태권도 선수가 된 이유는?

=11살 때부터 선수가 되어 올림픽에 출전해야겠다는 꿈을 키웠다. 1996년 당시 통가에서 복싱선수 파에아 볼프그램(Paea Wolfgramm)이 통가 사상 첫 은메달을 땄다. 모든 통가 사람들이 흥분했다. 그 때 나도 태권도 통가 대표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리우가 생애 첫 올림픽 무대이다. 올림픽 출전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매우 긴 여정이었다.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부터 도전이 시작되었다.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오세아니아 대표 선발전을 거쳐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포기해야만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는 뉴칼레도니아에서 열린 대표 선발전에 나갔다. 당시 결승까지 올랐지만, 경기 도중 킥을 하다가 발이 부러졌다. 발 뼈가 부러지고 발목도 삐었다.

태권도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나. 그래서 발목에 테니스볼을 대고 2라운드를 더 뛰었다. 그때 발목이 아예 나가버렸다. 이후 6달 동안 걷지 못했다. 귀국을 할 때도 휠체어를 타야만 했다. 이후 2012년까지 4년을 더 기다렸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유럽선수권대회에 나갔다가 무릎을 다쳤다.

8주 뒤가 오세아니아 대표 선발전이었는데, 한 다리로 버텼다. 첫 경기에서 만난 상대가 아주 강했다. 3라운드에서 떨어져 버렸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4년 뒤에는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한다고 마음먹었고, 드디어 해냈다.


-부상도 많이 겪고, 힘든 시기를 보냈을 텐데, 시련을 어떻게 견뎌 냈나?

=태권도는 항상 강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는 18살 때부터 노숙자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들과 생활하면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나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뼈는 부러져도 다시 붙고, 몸이 다쳐도 다시 회복된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게 되면 잘 낫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견디게 했다.

-태권도는 한국에 뿌리가 있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나?

=물론이다. 2012년에 수원에서 6달 동안 살았었다. 경희대, 용인대에서 훈련을 했다. 기량을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당시 교회 부설 유치원에서 숙식을 해결했었다. 아이들이 쓰는 작은 책상을 치우고 잠을 자고, 아이들이 등원하기 전에 짐을 싸서 나오기를 반복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꿈을 쫓던 시기였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한국 정말 좋아한다. 일단 음식이 너무 맛있다. 김치, 불고기를 좋아한다. 사람들도 참 친절하다. 그리고 늦은 밤에도 어린 학생들이 학교나 학원이 끝난 뒤 걸어서 귀가할 수 있을 정도로 치안이 잘 되어 있는 점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종목(+80kg)에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차동민이 있다. 대결해본 적 있나?

=차동민을 아나?(반가워하며..) 차동민은 몇 년 전 만난 적이 있다. 한 번도 대결해본 적은 없다. 서로 잘 모르지만, 서로 존중하고 있다. 언젠가는 한 번 겨뤄보고 싶다. 이번 대회에서 어쩌면 차동민과 만날 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림픽 전에도 모델 제의, 방송 출연이 가끔 있었지만 지금은 넘쳐난다. 경기를 마친 뒤 어떤 걸 선택할 지 고민해 보겠다. 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런 역할을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걸 선택하겠다. 스케일이 큰 일을 하고 싶다.

-‘자고 일어나니 인생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하나?

=많은 사람들이 하룻밤 만에 인생이 변했다고 말한다. 인터넷 깜짝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룻밤에 이뤄진 게 아니다. 이 자리까지 오는 데 20년이 걸렸다.

-앞으로 인생이 많이 변할 거라고 생각하나?

=나의 인생은 변하겠지만, 나의 가치와 인생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항상 태권도와 함께 할 것이고, 나의 종교적인 신념도 이어질 것이다(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나의 의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 이타적으로 살 수 있는 나의 능력이 더욱 커질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출전한 첫 올림픽이다. 목표가 남다를 것 같다.

=나의 목표는 2가지이다. 하나는 물론 금메달이다. 선수로서 금, 금, 금만 바라보고 있다. 두 번째는,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전 세계에 통가를 알리는 것이다. 태평양에 있는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에 널리 알릴 것이 많은 나라이다. 지켜봐주시라.

타우파토푸아는 오는 20일 생애 첫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있다. 남다른 외모로 알려졌지만,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도 당당히 세상에 알리겠다는 각오이다. 이번 올림픽의 목표 2가지 가운데 ‘통가를 알리는 일’은 이미 너무나 ‘성공적’인 듯하다.

이제 남은 건, 금메달. 알려진 메달 기대주는 아니지만, 누가 또 알겠나. 올림픽은 각본 없는 드라마인걸...... 타우파토푸아의 경기도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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