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터키의 전격적인 관계 정상화는 서방을 압박해 교착상태에 빠진 다수 현안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터키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스탄틴 궁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터키에 대한 경제 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해 나가겠다고 밝혔으며 에르도안 대통령은 에너지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 프로젝트를 조속히 이행하겠다고 화답했다.
양국 관계의 이런 급격한 복원은 지난달 중순 터키의 군부 쿠데타 시도 이전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리아 내전이 5년간 꼬여 있는 상황에서 양국이 정반대 방향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터키는 서방의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협조하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데도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푸틴은 알아사드 정권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다.
러시아가 테러조직 소탕을 명분으로 알아사드 정권에 반하는 시리아 북부 반군 지역에 대한 공습을 이어가면서 터키가 '형제 민족'으로 여기는 투르크멘족 반군이 피해를 보자 터키는 러시아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런 갈등은 작년 11월 터키 전투기가 시리아 접경지에서 터키 영공으로 진입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푸틴은 격추 직후 에르도안이 "러시아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격한 표현을 쓰면서 사과를 요구했고 터키는 잘못한 것이 없다며 버티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돼 단절되다시피 했다.
그랬던 두 정상이 느닷없이 손을 맞잡고 우애를 과시한 것은 각각 자국이 서방에 의해 궁지에 몰리자 반격을 위해 전략적 화해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터키는 군부 쿠데타를 진압하고 나서 에르도안의 정적인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 지지세력을 터키에서 근절하려는 의지로 대대적인 숙청을 벌였으며 사형제 부활을 선언하는 등 철권통치 강화에 나섰다.
자연히 터키는 귈렌 송환 문제로 미국과, 인권 문제로 유럽연합(EU)과 대립각을 세우게 됐다.
러시아는 이미 '신냉전'을 벌이고 있다는 말이 나돌 만큼 서방과 대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더해 시리아 내전으로 서방과의 관계가 꼬일 만큼 꼬였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이 전면적 협력을 선언하면서 서방에 대한 압박 수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러시아는 동유럽을 두고 사사건건 부딪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회원국인 터키를 제 편으로 돌리는 것이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영향력 유지에 유리하다.
격추기 사건 때도 나토는 회원국 터키의 편을 드는 모습을 보였고 이에 러시아와 나토가 공방을 벌이는 모양새가 됐다.
또한 터키와의 경제적 관계를 정상화하면 러시아에는 아시아로 시장을 넓히는 전략에도 도움이 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유럽 난민사태 해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터키는 나토 회원국으로서 러시아와의 관계 재설정을 운운하면 EU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런 행보가 실제로 바로 이날 목격되기도 했다.
에르도안이 푸틴과 만나고 있는 동안 당장 오메르 첼리크 터키 EU담당 장관은 터키 매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과 인터뷰를 통해 EU 압박에 나섰다.
그는 EU-터키 난민 송환협정 때 약속한 터키인의 EU 무비자 혜택 일정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으면 난민들을 받기로 한 협정을 터키도 지킬 수 없다고 EU에 경고했다.
그는 이어 "터키에 테러 관련법을 바꾸라는 EU의 요구는 유럽의 안보부터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EU가 무비자 혜택을 위해서는 터키의 관련법이 EU 법과 어긋나서는 안 된다며 개선을 권고한 것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베키르 보즈다 터키 법무장관도 이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쿠데타 배후로 지목한 재미학자 귈렌을 송환하라고 미국 정부를 압박했다.
보즈다 장관은 "미국이 귈렌을 송환하지 않는다면, 테러범을 위해 터키를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위협에 가까운 경고를 날렸다.
물론 터키와 러시아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인 시리아 사태가 그대로 남은 상태에서 전략적으로 택한 관계복원인 만큼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이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우리가 시리아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에서 한참 멀리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에게는 공동의 목적이 있다. 이 위기는 해결돼야만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터키·러시아 관계복원 실제 목적은 '미국·EU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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