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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마라카낭 엘리베이터에 갇히다'…외신 뉴스메이커 된 사연

[취재파일] '마라카낭 엘리베이터에 갇히다'…외신 뉴스메이커 된 사연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6.08.09 10:58 수정 2016.08.11 15:4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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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마라카낭 엘리베이터에 갇히다…외신 뉴스메이커 된 사연
브라질 리우 마라카낭 경기장은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8만7천석 규모는 한 때 세계 최대 규모 경기장이었고, 2년 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던 브라질 축구의 성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어린 시절 브라질 축구를 재미있게 보던 당시 지금의 모습이 아닌 리모델링 이전 마라카낭의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올림픽 취재단으로 브라질 리우에 온 지 열흘이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며칠 지난 일이 됐지만, 리우 올림픽 개회식이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렸고, SBS 취재진 중에서 개막식 취재를 맡는 행운을 얻게 됐습니다.

개회식은 저녁 8시부터지만, 오후 6시까지는 입장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국제방송센터(IBC)에서 마라카낭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므로 넉넉하게 3시쯤 출발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마라카낭 경기장 주변에서 올림픽 반대 집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조금 더 일찍 출발했습니다.

개회식 당일 마라카낭 경기장 주변은 경비가 삼엄했습니다. 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가득했고, 경기장 주변엔 차량도 들어오지 못하게 통제했습니다. 뙤약볕에 집회 찾아다니느라 애를 먹었지만 끝내 시위 현장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입장 시각이 다가와 마라카낭 경기장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들어가는 절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각국의 취재진들이 너무 많아 한참 줄을 서야 했습니다. 거기에 개막식 입장 취재진들의 숫자가 각 사마다 정해져 있어서 그때까지 동행한 통역 김규원 씨도 경기장 입구에서 헤어졌습니다.

카메라 기자 선배와 둘이 남아서 우리에게 배정된 경기장 ENG 포인트(카메라 설치 위치)를 찾아가야 하는데, 마라카낭 경기장 미디어 게이트(취재진들이 통과하는 문)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있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아 그런데, 그때까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뉴스를 제작하던 사람이 뉴스의 당사자가 될지를요.

엘리베이터안으로 들어가니 제복을 입은 브라질 안내 여성이 있었습니다. 저와 카메라 기자 선배가 들어서자 중국 기자 2명, 독일인이 한 명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미국인이 급하게 뛰어들어와 엘리베이터 안에는 총 7명이 탔습니다.

지상에서 5층으로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였던 터라 5층 버튼만 눌러져 있었고, 바로 엘리베이터가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한 2초, 3초쯤 올라갔을까? 갑자기 쿠궁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섰습니다. 엘리베이터안에 5층을 표시하던 숫자는 꺼지고, 빨간 색깔로 '-'표시로 변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정전인 줄 알았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들도 서로를 쳐다보며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던 상황. 다행히 엘리베이터 출입문 반대쪽은 두꺼운 투명 유리로 돼 있던 상황이라 바깥에서 빛이 들어올 수 있어 내부가 컴컴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밖으로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였고,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더 침착함을 유지해야 할 브라질 안내원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그때서야 상황 파악이 됐습니다. 마라카낭 경기장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선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제가 갇힌 겁니다. 말로만 듣던, 영화에서만 보던, 단 한번도 겪어본 적 없던 그런 일이,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나에게 벌어지다니... 사진=비디오머그 캡쳐현재 어떤 상황인지 파악한 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가 지금 몇 층쯤에 서 있는 걸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상 1층에서 올라선 지 2-3초 남짓이니까 한 3층 정도될까? 3층 정도라면 높이는 얼마나 될까?' 만에 하나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경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찌될까를 가늠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드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먼저 동요한 건 미국인이었습니다. 미국인은 브라질 안내원에게 '경찰이나 911로 연락을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911 비슷한 번호라도 말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브라질 안내원의 대응이 좀 웃겼습니다. 대회 조직위 관계자 누구에게라도 이 상황을 알려야 할텐데, 브라질 안내원은 자신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미국인은 더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911에 연락하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상황은 장난이 아니라고 소리지르며(It's not a joke) 브라질 안내원을 몰아부치는가 하면, 엘리베이터 투명 유리를 자신이 들고 있던 등산용 스틱으로 때리고,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help'를 계속 외쳐댔습니다.

사람이 갇혔다고(trapped in the elevator) 외쳐봤지만, 웬일인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내밀었습니다.(브라질에선 '엄지 척'이 오케이나 인삿말 등으로 쓰입니다).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우리가 갇혀 있다고 생각하기 보단 자신들에게 인사를 하는 걸로 알았나봅니다. 이 모습에 미국인의 흥분지수는 더욱 놓아졌고, 결국 F자 욕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중국인들도 덩달아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덤덤하게 있던 중국인 2명 중 한 명이 미국인의 F자 욕에 자신도 마음이 급해졌나봅니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들더니, 뭔가 글자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뭘 적는걸까 궁금했는데...SOS라고 써 있더군요. A4 용지에 검정색 볼펜으로 가늘게 써놓은 걸 바깥에 있는 사람이 볼 수나 있을까요? 함께 있던 다른 중국인 한 명은 자신들의 동료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 동료에게 빨리 이 곳으로 오라고(快來) 말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중국인들의 흥분은 분노로 변했습니다. 그러면서 질러낸 한마디 욕설은 FXXX, 외국에 나오면 욕도 외국어로 나오나봅니다.

엘리베이터엔 독일인도 한 명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시종 일관 시니컬한 태도입니다. 밖에 있는 동료에게 전화를 할 생각도, 그렇다고 흥분할 기색도 없습니다. 다만 브라질 안내원의 어처구니 없는 대처(엄마에게 전화하고, 서툰 영어로 이 상황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에 썩소를 날리며 비아냥대기만 했습니다. 시종일관 삐딱하게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고 서서 가끔 한마디씩 던지는 정도만 했습니다.

그럼 엘리베이터 안 한국인들은 뭘했을까요? 핸드폰을 꺼내들고 현장을 찍어댔습니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고..제가 찍고, 카메라 기자 선배가 찍고...엘리베이터에 공간이 부족해 그냥 제자리에 서서 찍어댔습니다. 개인적으론 당시 상황이 잘못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보다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잘 돼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흥분해서 해결할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경기장 입구에서 헤어진 통역 김규원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차피 규원씨는 마라카낭 경기장 입구를 통과할 수 없는 상황이라 미디어 게이트에 있는 브라질 사람에게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김규원씨한테 몇차례 전화하고 기다리는 거 외엔 별로 할 게 없더라구요. 그래서 또 휴대폰을 들고 찍었습니다.

그렇게 30분 정도 있었나 봅니다. 엘리베이터 안이 컴컴하진 않았지만 더웠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미국인과 몇 마디, 중국인과 몇마디 대화를 주고 받은 게 한 일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잠시 뒤 엘리베이터 밖에 사람들이 와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역시나 미국인은 그걸 듣고 자신이 힘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말렸습니다. 흥분하지 말라고(take it easy), 밖에 있는 사람이 알아서 할거라고(let them do it). 엘리베이터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밑으로 내려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 시도를 하다가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밖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마침내 문이 열렸습니다.  문이 열린 곳은 처음 엘리베이터를 탔던 1층었습니다. 사진=비디오머그 캡쳐문이 열리기 직전 왠지 바깥에 취재진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자랑스러운 일이라고...그래서 먼저 문밖으로 나가기가 싫었습니다. 미국인이 제일 먼저 나갔고, 중국인들이 나가고, 독일인이 나가고, 한국인들이 제일 늦게 나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사진을 찍더군요. 뭘 이런 걸 찍어...

그날 저녁 통역 김규원씨가 카톡으로 브라질 현지 기사에 링크를 걸어줬습니다. 그 기사엔 엘리베이터 갇힌 취재진들의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기사화했더군요. 중국인들이 개선장군처럼 엘리베이터를 빠져 나오는 사진과 그들이 'SOS'를 적은 종이와 함께 말입니다.

연합뉴스도 그 외신을 받아서 기사를 썼습니다. 하지만 기사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중국기자 5명이 갇혀 있었다는 부분 말입니다. 졸지에 중국 기자가 됐습니다. 중국 기자와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였는데.. 마라카낭 경기장 승강기 고장 (사진=에스타당 홈페이지 캡처/연합)리우 올림픽 개막식은 아마존 열대우림의 나라답게 브라질 생성의 역사와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드라마같은 구성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색적인 성화도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베이징, 런던 올림픽에 비해 큰 돈 들이지 않고 나름 훌륭한 공연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의 마라카낭에서의 기억은 올림픽 개막식보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기억이 더 강렬하니, 이걸 어떡하면 좋을까요? 

마라카낭 엘리베이터 사건은 단순 헤프닝에 불과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리우 올림픽의 준비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뜩이나 리우 올림픽은 최악의 정치, 경제적 상황 속에 브라질 정부가 많은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분위깁니다. 그렇다보니 겉으로 보이는 준비는 구색을 맞추고 있다 하더라도, 이런 디테일한 준비는 구멍이 뚫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까지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치안 상황은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고 있지만, 어쩌면 의외의 안전 사고가 복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 [비디오머그] '덜커덩' 멈춘 엘리베이터…30분간 갇힌 한국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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