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다음 달 5일(현지시간) 개막하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전 종목 출전이 금지될 위기에 놓이면서 서방과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21일 러시아 육상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손을 들어준 데 이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4일 집행위원회에서 러시아의 리우 출전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러시아는 '정치적 결정'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으며 서방 언론은 러시아가 국가 차원의 조직적인 도핑(금지약물 복용)을 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로 반기는 분위기다.
타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육상의 간판스타인 장대높이뛰기 선수 옐레나 이신바예바는 21일(현지시간) CAS의 판결에 대해 "육상 장례식을 열어줘서 고맙다"며 "속 보이는 정치적 결정"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는 "힘센 사람을 두려워하는 법"이라며 "'깨끗한' 외국 선수들이 안도하고 우리가 없는 동안 가짜 금메달을 따도록 내버려두라"고 비꼬기도 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높이뛰기 우승자인 마리야 쿠치나도 두려워하던 소식을 들은 자신의 첫 반응은 "어떻게 그럴 수가,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였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국제유도연맹(IJF)은 이날 성명을 내 "러시아 육상선수들에게 출전을 허용함으로써 '냉전'이 아닌 친선의 메시지를 모든 젊은이들에게 보내기를 바란다"고 촉구하며 이번 사태를 '냉전'으로 규정했다.
이 연맹은 앞서 2012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8단을 수여한 바 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지난 18일 러시아가 소치 올림픽에서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모든 러시아 선수들의 리우 올림픽 출전 금지를 촉구했다.
보고서가 공개되기 직전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알렉산드르 쥬코프 위원장은 WADA 회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미국과 캐나다 반도핑기구가 러시아 선수들의 리우 올림픽 출전을 막기 위해 국제 동맹을 만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도 보고서 공개 이후 성명을 통해 "정치가 스포츠에 관여하는 위험한 회귀를 목도하고 있다"며 냉전의 절정이었던 1980년대와 비슷한 방법으로 스포츠가 '지정학적 압력'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고 반발했다.
미국은 1979년 러시아(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했으며, 러시아 역시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이 보고서가 '명성에 문제가 있는 인사'의 증언에 기초해 작성됐다며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인사는 러시아반도핑기구 산하 모스크바 실험실 소장이었던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로, 미국에 망명해 러시아 체육계의 조직적 도핑 문제를 폭로했다.
로드첸코프는 지난 5월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소치 올림픽 당시 정부가 약물 제조부터 소변 샘플 바꿔치기까지 전 과정에 조직적으로 개입해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제공했고 그 결과 최소 15명의 선수가 메달을 땄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로드첸코프의 증언에 신뢰성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출전 금지를 스포츠 강국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견제 시도로 몰아가고 있지만, 서구 언론은 "정치적 함의보다는 국제 대회의 신뢰도를 높이는 결정으로 봐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NYT는 지난 19일 리우 올림픽 기획기사를 통해 러시아의 조직적 도핑 실태를 고발한 로드첸코프를 '오늘날 올림픽 운동의 영웅'이라고 지목하면서 "리우 올림픽의 첫 번째 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추어올렸다.
영국 일간 가디언 역시 '리우 올림픽에서 속임수는 허용될 수 없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러시아가 배제되지 않는다면, 다음 달 올림픽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이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단을 압박했다.
러시아 전체 선수의 리우 올림픽 출전 여부는 24일 IOC 집행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