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와 건설용 기둥 등 콘크리트 제품을 만드는 중소기업들로 구성된 조합이 납품단가를 올리려 한국전력 직원에게 금품을 건넨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이준식 부장검사)는 한국원심력콘크리트협동조합 측에서 각각 수천만원대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한국전력 전 물가조사과장 구모(51)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한국전력 전 물가조사부장 배모(59)씨는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구씨는 2008년 4월 협동조합의 전략기획실장인 박모(55)씨에게서 전봇대의 연간 계약 단가를 높게 책정해주는 대가로 7천5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배씨는 같은해 5월 같은 명목으로 3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원심력콘크리트협동조합은 전봇대, 연약 지반을 보강하는 데 쓰는 건설용 콘크리트 기둥(PHC 파일) 등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모임이다.
전봇대 생산업체 16곳, PHC 파일 생산업체 17곳이 가입했다.
조합 내 전봇대 생산업체들은 납품단가를 올리려 구매처인 한국전력의 물가담당 직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
그 결과 2008년 전봇대 납품단가는 20% 뛰어올랐다.
통상의 단가 인상률 2∼8%를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당시 한 해 납품된 전봇대 가격은 총 580억원 규모로, 업체들이 뇌물을 건네고 챙긴 이득은 1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납품단가가 이후에 도로 내려가지 않은 만큼 업체들의 수익은 계속 이어졌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조합 내 PHC 파일 생산업체들이 공공기관 발주공사의 구매 입찰 과정에서 '들러리 입찰' 등의 방법으로 담합해 6천500억원대의 이득을 본 혐의(입찰방해)로 업체 관계자 23명(6명은 구속)을 재판에 넘긴 바 있다.
PHC 파일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모두 조합에 가입돼있다.
정부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PHC 파일을 '중소기업자 간 경쟁' 제품으로 지정하자 한 건의 예외도 없이 관급입찰에서 담합이 이뤄졌다.
검찰 관계자는 "업체들이 '경쟁' 제도를 '담합'으로 변질시킨 셈"이라면서 "조합은 설립 이후 전무이사에 공무원 출신만 앉혀 공무원 상대 로비도 하는 등 조직적으로 담합을 실행했다"고 설명했다.
가격 담합 외에도 매달 생산·판매·재고량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 감산' 원칙을 세워 생산·출고량도 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 현장에서는 물량이 부족해 지연 등 차질이 빚어지는 사례도 나타났다.
업체들은 입찰 담합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서고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이후에도 담합을 계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조달청이 답합업체의 입찰참가를 제한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인 걸로 안다"면서 "공공입찰 담합은 국민 혈세를 축내는 중대 범죄인만큼 조달청의 담합 통계 분석시스템을 공유하는 등 제도 개선도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