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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백서' 내고 책임자 찾겠다더니…'과거는 덮어 두자'는 새누리당

[취재파일] '백서' 내고 책임자 찾겠다더니…'과거는 덮어 두자'는 새누리당
180석도 가능할 거라던 기대 속에 치러진 4.13 총선, 새누리당은 122석이라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123석에 밀려 제1당의 자리까지 내줘야하는 그야말로 참패였습니다.

이길 수밖에 없다’고 믿었던 총선에서 패배한 만큼, 왜 졌는지, 누가 잘못을 했는지, 무엇을 반성하고 고쳐 나가야 하는지 따져 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총선 패배의 원인을 담은 ‘백서’를 발간하기로 했습니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하고, 당 사무처, 전문가, 총선에서 탈락한 후보자, 출입 기자에게 ‘새누리당이 왜 졌는가’를 물었습니다. 혁신비대위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고 약속했고, 철저히 보안을 지켰습니다. 당 내에서는 ‘오히려 분란이 커지는 거 아니냐’며 계파 책임론이 담길지도 모른다는 백서에 대한 두려움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만큼 이번 백서에는 ‘무언가’가 담길 것이란 관측이 컸습니다.

지난 17일 새누리당의 ‘국민백서’가 발간됐습니다. 총선 패배 이후 석 달여 만, 291쪽의 책 형태로 국민들에게 공개됐습니다. 면접조사에 참여한 국민들의 목소리도 문자 그대로 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서를 처음 접한 기자들의 반응은 ‘특별할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 '국민 목소리' 담긴 했지만…아쉬운 '나열식', '백화점식' 인용

백서는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공천 과정에서의 계파 갈등과 국민과의 불통, 자만, 무능, 공감 부재, 진정성 부재, 선거 구도 등 7가지를 꼽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총선 패배 이후 모두 언론에서 나왔던 내용들입니다. 새로울 게 없었습니다.

당 사무처 관계자들 가운데는 ‘돈을 들여 만들 이유가 있었나’라는 얘기도 돌았습니다. 단순한 계파 갈등이 아니라, 계파 갈등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을 빌려 당이 모르고 있던 ‘근본적 원인’을 찾고자 시작한 백서 발간이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쓴 소리가 나왔습니다.

7가지 이유를 거의 같은 비율로 다루면서 패배 원인을 나열식, 백화점식으로 제시했다는 비판도 쏟아졌습니다. 국민들이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지적하고 어떤 부분에 실망했는지 설명하기 보단,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다.’는 겁니다. 백서에서는 ‘계파 갈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고 한 줄 얘기할 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계파 갈등을 원인으로 지목했는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책임자 찾을 줄 알았던 '백서'…'누구의 책임'도 아닌 '모두의 책임'으로 결론

‘백서’를 기다리며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누구’의 잘못인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총선이 끝나고 계파 간의 책임론이 나왔지만, 누구하나 ‘우리 잘못이오’라고 외치는 곳은 없었습니다. 모두 국민께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정작 서로에게 책임을 미룰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 사무처 내에서는 ‘지고도 정신 못 차린다’는 자기비판이 쏟아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백서’가 의원들의 개입 없이, 오로지 외부의 사람들만이 참여해 가감 없이 총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한다고 했을 때. 기자들 사이에선 ‘이번에는 누구의 잘못인지 가려지겠구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그래서 ‘백서’가 나오기 전부터 당내 계파간의 신경전도 벌어졌고, ‘백서’가 나오면 전당대회에 영향을 주지 않겠냐는 얘기도 나온 겁니다. 하지만 ‘백서’가 내린 답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잘못’이었습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을 뽑아 달라" 그랬는데, 그 부분이 사실 진박 마케팅’, ‘대통령이 친박 비박을 갈랐다.’ 면접에 참여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계파 갈등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쏟아냈습니다. 한나라당 당시 윤리위원장을 지냈던 인명진 목사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붙잡고 엉켜있는 한 다음 대선은 어렵다”며, “대통령은 결국 탈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김무성 대표의 도장런은 추태의 절정이었다’, ‘이한구 그 양반이 주도해서 자기들끼리 밀실공천 되어버린 거 아니냐’는 등 김무성 전 대표의 ‘옥새 파동’과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의 ‘밀실 공천’에 실망감도 표현했습니다. 특히 진박 마케팅과 관련해서는 ‘진박, 친박, 비박, 원박, 뭔 박이 이렇게 많아. 흥부전이냐’라며 비꼬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듣고 내린 결론은 ‘계파 갈등’ 이었습니다. 친박계도 비박계도 잘못했고, 새누리당도 청와대도 잘못했고, 서로서로 밥그릇 싸움만 했다는 원론적인 답을 내렸습니다. ‘친박 전횡’이 드러날 거라던 일반적인 예상조차 담기지 않은 겁니다. 백서를 발간해 ‘혁신’이 뭔지 보여주겠다던 새누리당이었지만, 결국 계파의 눈치만 본 어정쩡한 ‘백서’를 내놓았다는 평갑니다.

● "패권주의 책임 빠진 백서…재발간 하겠다" vs "우리 모두의 책임…반성하겠다"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비박계 5선의 정병국 의원은 ‘백서’가 공개되자마자 ‘백서 재발간’을 내세웠습니다. 정 의원은 ‘반성조차 제대로 못하는 비겁한 당의 현실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면서 계파 패권주의가 빠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백서는 참회록이 돼야 한다면서 당 대표가 되면 진실을 담은 ‘백서’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겁니다.

비박계 3선의 김용태 의원은 백서가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했지만, 역시 패권주의에 대한 지적이 빠졌다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단순히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혼자서 잘못한 것처럼 백서에서 얘기하고 있지만, 이 위원장이 독단적이고 오만적인 ‘밀실 공천’을 할 수 있었던 건, 이 위원장 뒤에 ‘친박 패권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친박계 출마자들은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5선의 이주영 의원은 지난 총선 패배가 ‘어느 특정한 사람만의 책임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라며 자신도 책임감을 느끼고 뼈저리게 반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3선의 이정현 의원은 자신이 당 대표가 되면 이번 백서를 자료로써 정리하고, 당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을 내리겠다고 얘기했습니다.

● 공천 개입 '녹취록' 파문…'국민백서' 무용론에 백지화 주장까지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은 ‘국민백서’에 대해 ‘새누리당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냉정하게 우리 현실을 파악해서 미래로 전진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당이 어려워 진 것이 모두의 책임이라며 백서와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상욱 대변인도 “‘국민백서’를 통해 국민의 분노지점과 국민의 바람이 분명히 드러난 만큼 백서는 향후 새누리당의 변화를 위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백서 공개 하루 만에 친박 핵심 의원들과 청와대 인사의 공천 개입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경기 화성 갑에서 서청원 의원과 맞섰던 김성회 전 의원이 화성 병으로 지역구를 옮긴 정황이 담긴 통화 녹취록으로, 친박 좌장격인 최경환 의원과 윤상현 의원, 총선 당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의 녹취록이 그것입니다.

최경환 의원은 지역구를 바꾸는 게 대통령의 뜻이냐는 김 전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 자신들이 도와주겠다’고 답했고, 윤상현 의원은 더 나아가 ‘대통령의 뜻을 알려주는 것’이라며, 친박 브랜드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김 전 의원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듯 협박성 발언까지 했습니다. 현기환 전 수석도 지역구를 옮기겠다던 약속을 지키라며, 자신과의 약속은 대통령과의 약속과 같은 것이라고 압박했습니다.

논란 속 당 대표 출마를 고심하던 8선의 서청원 의원은 불출마를 택했습니다. 서 의원은 김 전 의원이 먼저 화성 병으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가 갑자기 화성 갑에 출마하겠다고 알려와 조정을 한 것이지, 먼저 전화를 걸어 이래라, 저래라 한 것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공천 개입이 아니라 교통정리를 한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당 내에서는 ‘공천 개입이다’, ‘아니다. 교통정리에 불과하다’며 또 다시 분란이 일고 있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해 진상조사를 벌여야할 판이지만, 정진석 원내대표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시점에 과거의 일을 들추기 보다는 정치력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공천 과정을 지적한 ‘백서’를 발간한 새누리당이 ‘공천 개입 의혹’을 과거의 일로 규정한 건 아닐까요. 총선 참패를 교훈 삼아 모든 걸 바꾸겠다던 말이 공허하게 들립니다. 혁신비대위의 바람처럼 ‘국민백서’가 당의 혁신과 화합을 이끌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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