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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체육행정 왜 이러나② 문체부 아집이 부른 혈세 낭비

[취재파일] 체육행정 왜 이러나② 문체부 아집이 부른 혈세 낭비
2014년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새로 만든 건강 체조인 이른바 ‘늘품 체조’ 시연회에 참석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3분 동안 ‘늘품 체조’의 각 동작을 일일이 따라 배운 뒤 “100세 시대를 맞아서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며, “정성껏 만든 늘품 체조가 동영상이나 문화센터, 학교를 통해 많이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억울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명 ‘코리아 체조’를 만든 주역들이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 봄부터 새로운 건강 체조 개발에 나섰습니다. 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스포츠개발원(전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 소속된 체육학 박사, 운동발달 전문가, 운동생리학자, 운동역학 전문가, 무용학자, 음악 전문가, 사회학자, 교육부와 체육 담당자, 현장 교사, 대학교수 등이 총동원된 국가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이름도 ‘코리아 체조’로 정했고, 국가 예산 2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1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리아 체조’는 결국 ‘늘품 체조’에 밀렸습니다. ‘코리아 체조’가 정부, 즉 문화체육관광부의 주도 아래 개발된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정작 시범을 보인 체조는 ‘늘품 체조’이었기 때문입니다. ‘늘품 체조’는 1명의 피트니스 강사와 일부 안무가 등 민간인들이 만든 체조로 개발기간이 ‘코리아 체조’에 비해 훨씬 짧고, 투입 인력도 훨씬 적었습니다. 

건강 체조 선정을 둘러싸고 권력 실세 개입 의혹이 일자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관계자는 “‘코리아 체조’가 어느 정도 완성됐을 때 중간 점검을 해보니 ‘Fun' 즉 재미가 없었다. 스트레칭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국군도수체조처럼 너무 딱딱하다. 체조는 온 국민이 즐겁게 따라해야 한다. 그래서 또 다른 체조를 급히 만든 것이다. ‘늘품 체조‘는 에어로빅이 가미돼 빠르고 경쾌하다.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둘 중의 하나를 시연해야 하는데 TV 뉴스를 생각할 때 아무래도 흥겨운 ’늘품 체조‘를 선택한 것이다. 앞으로 ‘코리아 체조’는 학교를 통해, ‘늘품 체조’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각각 보급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문체부 관계자의 약속은 결국 ‘헛된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재 ‘코리아 체조’는 물론 박 대통령이 정성껏 만들었다는 ‘늘품 체조’도 기억하는 국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수억 원의 국민 세금이 허비된 것입니다. 당연히(?) 책임지는 문체부 공무원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문체부가 건강 체조로 아까운 예산을 날려버린 것은 분명 잘못됐지만, 최근 ‘박태환 사태’로 혈세를 낭비한 것에 비교하면 한 마디로 약과입니다.

한국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반도핑기구(WADA) 이사국으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은 현재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WADA의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2017년 11월에는 강원도 평창에서 WADA 집행위원회와 이사회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반도핑기구(WADA) 이사국이기 때문에 세계반도핑규약(WADC)을 준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금지약물 복용 선수는 징계 만료 이후에도 올림픽 출전을 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오사카 룰’은  2011년 10월 국제스포츠계의 ‘대법원’으로 불리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의해 무효가 됐습니다. 당시 CAS는  “그런 징벌적 제재는 세계반도핑규약(WADC)과 일치(부합)하지 않는다”(Such disciplinary  sanction does not comply with World Anti-Doping Code)고 판결했습니다. 이와 아울러 CAS는 ‘오사카 룰’이 <올림픽 헌장> 위반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박태환의 발목을 잡고 있는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5조 6항> 즉 “금지약물 복용으로 징계처분을 받고 징계가 만료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조항은  <세계반도핑규약(WADC)>과 <올림픽 헌장>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삼척동자도 알 만한 빤한 이치였습니다.
그런데도 대한체육회는 마지막 순간까지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막으려 했습니다. 대한체육회를 관리 감독해야 할 문체부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체육회의 ‘막무가내’식 행태를 저지했어야 하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문체부는 전혀 그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박태환 문제에 대해 문체부가 체육회보다 더 강경했다”는 게 체육회 관계자들의 일치된 증언입니다. 제가 만난 문체부 고위 관계자도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아무리 아집을 부린다 해도 이 싸움은 이미 패배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CAS가 이미 5년 전에 도핑 선수의 ‘이중 처벌’은 무효라고 명쾌한 판결을 내렸고, 세계반도핑기구(WADA)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이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에게 ‘이중 처벌’을 하는 나라는 IOC 회원국 206개 가운데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그런데도 문체부와 체육회는 무모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다 박태환 1명에게 완패를 당했습니다. 복싱에 비유하면 ‘1회 KO패’를 당한 셈입니다. 국내 법원과 CAS 모두 박태환의 주장을 100%, 그것도 매우 신속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안이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누가 옳은지가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규정상 패소한 대한체육회는 국내 법원 소송비용은 물론 CAS 중재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지불해야 합니다. 박태환 측의 변호사 비용도 당연히 체육회의 몫입니다. 이 돈은 국민세금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대한체육회는 싱가포르에 있는 외국 로펌 변호사 3명에게 거액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에서는 체육회가 국민 세금으로 물게 될 소송비용을 전부 다 합치면 수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문체부는 쓸 필요가 없는 곳에 아까운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아집으로 국내외적으로 모두 망신을 당했지만, 아직까지 반성문 한 줄을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일(22일)은 문체부의 무능과 비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겠습니다. 

(1편 바로가기) ▶ [취재파일] 체육행정 왜 이러나① 문체부, IOC까지 속인 슈퍼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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