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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체육행정 왜 이러나① 문체부, IOC까지 속인 슈퍼 갑질

지난 3월 통합 대한체육회 출범 과정과 최근 수영스타 ‘박태환 파동’을 거치면서 대한체육회의 ‘3무’ 즉 무능, 무소신, 무원칙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종합 5위를 차지한 세계적 수준의 경기력과는 대조적으로 스포츠행정이란 면에서는 완전한 후진국이라는 게 증명된 셈입니다.

국내 체육계 인사들은 대한체육회도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체육회를 올바르게 관리 감독해야 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오히려 한국 스포츠를 망쳤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SBS 취재파일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는 기획기사를 3회에 나눠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국민생활체육회와의 통합 작업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2월 4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통합체육회 정관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사전 협의해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체육회 발기인 총회를 여는 것은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당시 발기인 총회를 밀어붙이고 있었던 문화체육관광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체육회는 또 통합체육회 정관에 문체부 승인 보고 사항이 기존 10개에서 22개로 늘어나 지나치게 많고, 규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 반드시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습니다.

각국 올림픽위원회의 자율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IOC도 대한체육회의 입장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정관에 문체부장관 승인 사항이 너무 많다며 시정을 요구한 것입니다. 결국 문체부가 한발 물러나 정관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4월 5일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정관 개정을 의결했습니다.

정관 개정 주요 내용은 체육회 부회장, 이사, 사무총장, 선수촌장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승인 사항을 삭제하고 예산 편성과 결산, 정관과 제·규정 변경에 대한 장관 승인사항을 협의 사항으로 각각 개정한 것입니다. 이날 정관 개정은 총 23개 조항에 걸쳐 이뤄졌으며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부분을 삭제하거나 협의사항으로 변경하면서 대한체육회의 자율성이 크게 강화됐습니다.

그런데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대한체육회는 4월 28일 이사회를 열어 각종 규정을 변경했고, 이것도 부족했던지 6월16일에 또다시 규정에 손을 댔습니다. 재개정된 규정에는 문체부장관의 승인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곳곳에서 부활했습니다. 쉽게 말해 지난 2월로 다시 원위치한 것입니다.

IOC에는 대한체육회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한 정관을 보내 ‘OK’ 사인을 받은 뒤 한 달도 안 돼 슬그머니 규정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IOC를 사실상 기만한 꼴이 된 셈입니다. 이로써 대한체육회 정관의 내용과 제반 규정이 서로 맞지 않는 문제점이 드러났고, 문체부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고는 대한체육회가 할 수 있는 중요 업무는 거의 없게 됐습니다.


정부 간섭을 배제한 ‘자율성’을 그토록 강조해온 대한체육회로서는 스스로 자기 부정을 한 것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일종의 ‘자해 행위’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대한체육회는 왜 이런 치욕적인 결정을 내렸을까요? 체육회 직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시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문체부의 지시 여부가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문체부 여러 관계자들에게 전화 통화 시도와 문자 메시지 전송을 수없이 했지만 끝내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른바 ‘슈퍼 갑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이 단행한 직원 승진 인사를 넉 달 만에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횡포까지 저질렀습니다. 문체부의 위세에 눌린 김 회장은 자신이 한 인사를 스스로 철회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체육회 고위간부들은 직급 강등과 함께 인상된 월급까지 도로 반납하는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대한체육회와 각 경기단체가 문체부의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유는 바로 돈과 권력 때문입니다. 국내 경기단체의 한 관계자는 “그들은 국민 세금을 마치 자신의 돈으로 착각한 듯 마음대로 쓰고 있다.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면 예산을 잘 주지만 한 번 찍히면 끝이다. 어떤 때는 10만원까지 어디에 썼느냐며 따진다. 이러니 누가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겠는가?”라고 울분을 털어놓았습니다.

권력도 공포의 대상입니다. 문체부 체육정책관은 대한체육회 이사 가운데 한 명입니다. 명목상으로는 23명의 집행부 가운데 1명이지만 실제로는 대한체육회장을 능가하는 파워를 갖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지난해 6월 이사회에서 대한체육회의 강경 입장을 대변해오던 이기흥 수석부회장 겸 대한수영연맹 회장이 문체부 체육정책관과 격렬한 논쟁을 펼쳤습니다.

이 회장은 이후 문체부의 ‘눈엣가시’가 됐고 대한수영연맹은 지난 3월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끝에 전무이사가 구속되는 등 ‘된 서리’를 맞았습니다. 이후 문체부의 입장과 반대되는 목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영연맹이 초토화되는 과정을 지켜본 대한체육회와 각 경기단체가 문체부에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를 절감하게 된 것입니다. 

문체부의 ‘갑질’ 가운데 하나가 ‘자기 사람 심기’입니다. 최근 국내 한 언론은 ‘스포츠 황태자’로 불리는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이 체육계 인사를 좌지우지한다고 폭로했습니다. 이번 리우올림픽 한국선수단 임원 구성에서도 결정권을 갖고 있는 김정행 회장이 반대한 인사를 끝내 부단장에 선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밖에도 문체부의 ‘갑질’은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정도로 많습니다. 국내 체육계에서 50년 가까이 스포츠기자로 활동한 한 언론인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보다 더 심한 것 같다. 문체부가 대한체육회장을 면전에서 직접 혼내는 등 이렇게 노골적으로 또 무자비하게 관치(官治)를 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습니다.
대한체육회 노조 시위
지난 2월 대한체육회 노동조합은 대의원총회가 열리는 장소에서 문체부의 ‘갑질’을 규탄하는 시위를 펼쳤습니다. 이로부터 5개월이 지난 14일에는 원로 체육인들로 구성된 <한국체육인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체부의 ‘갑질’을 비판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올해 99살의 한상원 옹(전 대한테니스협회장)까지 참석했습니다. 한국 스포츠를 망치는 문체부의 행태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체육인회 문체부 갑질 규탄 기자회견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민국의 문화, 체육, 관광 행정을 총괄하는 정부 기관입니다. 오직 한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맹목적인 충성보다는 국민 모두를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런 점에서 문체부는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게 국내 체육계의 지배적인 의견입니다. 내일(21일)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아집이  부른 혈세 낭비를 집중 조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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